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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2008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화제의 동문

SCI 등재 학술지에 총 2백30편 실려




 최근 몇몇 일간지에 `서울대 논문왕'으로 소개된 기사가 눈에 띠어 지난 11월 17일 공대 재료공학부 黃哲盛(무기재료83­87)교수를 찾아갔다. 黃교수는 지난 3년간 과학기술 논문색인(SCI)에 수록된 학술지에 67편의 논문을 발표해 모교 교수 중 최다 발표 타이틀을 갖게 됐다. 지난해 모교 교수 평균 논문 수는 3.71편이었으니 6배 가량 많이 쓴 셈이다.

 黃교수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서울대 논문왕'이란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을 쏟아냈다. "교수가 야구선수도 아니고 논문왕이라니, 참 당황스럽더라고요. 사실 그때까지 제가 몇 편을 썼는지도 몰랐고요. 반도체 분야나 나노 사이언스 분야 등은 논문을 많이 쓰는 분야라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건데 수치상으로 1등이라고 보도가 되니까 부담이 되죠. SCI 논문을 많이 썼다고 좋은 연구를 하는 거냐, 훌륭한 학자냐 그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남들보다 많이 쓴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14년 교수 생활동안 발표한 SCI 논문이 총 2백30편. 특히 중요한 것은 SCI 학술지에서 피인용수가 3천여 회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노벨상 수상자들의 평균 논문 인용횟수가 4천8백여 회인 것을 보면 20년 이상의 연구기간이 남은 黃교수의 잠재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주요 논문 중 하나는 1백20회 이상의 피인용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1백회 이상의 피인용 논문은 `수퍼스타급'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논문 다작의 비결에 대해 黃교수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들 그걸 궁금해 하시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학생들이 열심히 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뿐이지 특별한 것은 없어요."

 黃교수는 매일 아침 8시 전에 출근해 밤 10시 쯤 퇴근한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의 연구실은 여느 교수 연구실과 다르다.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책은 서재에, 볼펜은 통 속에. 꾸준한 노력과 몸에 밴 정리습관이 다작의 비결이 아닐까.

 그의 연구 분야는 반도체 메모리 소자다. 고용량 메모리는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야 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작년 12월 컴퓨터, 게임기,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 사이즈를 기존보다 50% 이상 감소시킨 `차세대 D램 소자용 캐피시터(Capacitor)' 핵심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반도체 분야를 연구하게 된 것은 지도교수였던 金亨俊 前기획실장의 역할이 컸다.

 "金亨俊교수님이 부임한 지 얼마 안돼서 만났어요. 80년대 후반이죠. 대학원 학생 중에서는 제가 아마 두 번째 제자일거예요. 그 당시 앞으로 몇 년 후면 반도체 분야가 유망할 거란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분을 존경했고 그 분야가 재미있어서 유학도 안 가고 모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모두 받았죠."

 국내파인 黃교수는 요즘 무조건 유학 가는 풍토에 대해 걱정이 많다. 최근 모교 대학원엔 모교 출신이 5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우수 학생들이 모교보다는 해외 명문대를 선호하기 때문. 한 나라의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우수한 인재들이 넘쳐나야 한다.

 黃교수가 석ㆍ박사학위를 받을 당시에는 유학 가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당시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교수들도 `이제는 유학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공부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모교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동기들이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공부를 했다. 黃교수도 모교 대학원에 못 들어갈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고.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죠. 서울대 학부생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우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유학을 선택해요. 이공계 학문에서 획기적인 진보는 대부분 대학원생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요. 똑똑한 학생들이 남아 있어야 모교 발전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 대학이 몇몇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거든요. 오히려 유학 가서 받는 언어, 문화 스트레스 대신에 이곳에서 공부하는 데 열정을 쏟아 부으면 훨씬 나을 수 있죠."

현재 黃哲盛교수 연구실에는 24명의 학생들이 있다. 그동안 거쳐간 제자들은 45명, 그 중 박사학위자는 6명. 黃교수의 명성을 듣고 독일, 스위스에서 공부하러 온 해외 유학생도 4명이 있다. 올 겨울방학에는 박사학위를 받는 두 제자의 논문을 봐주고 정부와 관련업계에서 의뢰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 연구 목표인 테리비트 메모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 공정, 새로운 소자 구조에 대한 연구도 빠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뭐냐는 질문에 `협동심'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회사를 다녀 보니깐 서울대생들이 독립적인 일은 잘 하는데 함께 하는 일은 좀 꺼리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협동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고 성공할 수 없죠. 사수, 부사수, 조수 등의 역할분담을 시켜 청소, 연구, 실험 장비 수리 등 모든 일을 함께 해결하도록 하고 있어요. 사실 대학원에서 배운 것으로 밖에서 얼마나 써먹겠습니까. 이런 자세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죠."

 경북 후포가 고향인 黃哲盛교수는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모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했다. 2002년 11월 독일 훔볼트재단이 수여하는 `Humbolt research fellowship Award'에 선정됐으며 2004년 40세 이하 젊은 과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7회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10월에는 모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수여하는 `도연 창조상'(부상 금1백돈)을 받기도 했다. 대학원 시절 동료로 만난 부인(崔廷蕙 무기재료86­90) 역시 과학자로 KIST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장인(故 崔東圭 화학공학62졸), 장모(鄭淑澈 화학공학58­62), 처남(崔容鎭 전자공학84­88)이 모두 모교 출신이다. 연구실에 자신의 그림을 걸어놓을 정도로 잘 그리며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