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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2008년 12월] 문화 꽁트

간통, 불륜의 해결사



실험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라고 대답을 하자마자 한 젊은 여자가 어린 아기를 멜빵에 받쳐 안고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젊은 사내와 형사 한 분이 들어왔다.

 "이 아기는 저 남자의 아기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우기니 박사님께서 사실을 밝혀 주십시오."

 "그 아기가 어째서 내 아기란 말이냐? 박사님, 내 아기가 아닙니다.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두 젊은 남녀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했다. 같은 내용의 말싸움이 큰소리로 계속 되풀이됐다.

 "이제 그만들 하시고 돌아가십시오. 실험실에 와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안됩니다. 그러한 말싸움으로는 어느 분의 주장이 옳은지 판가름이 날 수 없습니다. 일단 돌아가시고 실험결과를 기다리세요."

 함께 온 형사에게 친생자 감정(親生子 鑑定)에 의한 실험과정을 대충 이야기해 주고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도록 했다. 친생자 감정이란 문제의 자식이 과연 지목된 부모에게서 출생한 자식인지, 또는 문제의 아버지가 사실상 지목된 자식의 진짜 아버지인지를 생물학적 방법으로 검사해 판정하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 위 사건 감정결과가 분석됐다. 혈액형과 유전자(DNA) 분석법을 적용한 실험결과, 그 문제의 아기는 남자의 자식으로 판정됐다. 그러니까 남자가 뻔뻔스럽게 거짓 주장을 한 것이다. 결국 과학적 증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남자는 여자의 옛날 상관으로 이들은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 유부녀였다. 남자가 전화를 걸어 만난 두 남녀는 성관계를 가졌다고 자백을 했다. 여하간 양쪽 가정의 파탄은 물론 두 가정은 모두 공중분해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결국은 사회적인 손실과 그들의 불행은 물론 또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 위헌여부를 헌재에서 최종 결정했다. 건전한 성 풍속을 유지하고 가정을 보호하며, 혼인질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아직 대다수의 국민이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하듯 위헌판정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성의과학' 강좌를 수강하는 신세대 학생들의 간통, 불륜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다. 그래서 간통제 폐지 찬반여부를 물었다. 그들은 아직 순수하고 젊은 신세대 남녀 대학생들이다. 그들 역시 간통제 폐지를 반대하는 쪽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젊은 신세대 학생들 역시 성의 인식이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도 놓이고 미래가 밝아지는 느낌을 가져본다.

 나는 20여 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부인의 불륜 내지는 바람기를 문제삼아 찾아 오는 사건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경험해 왔다. 강좌의 일환으로 내가 겪은 성에 관한 사건사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어떤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박사님이시죠? 저는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박사님께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요. 정액 검사를 해주십시오."

 "뮈요! 누구신데… 정액이라뇨! 검사는 왜 하려고 하십니까?"

 "실은 제 처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그 증거물을 가져왔습니다. 정액이 묻어 있는지를 제발 검사해 주십시오."

 나는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정상적인 감정 의뢰도 아니고 또 자칫 한 가정을 파경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박사님, 저희들은 밤차를 타고 지금 연구소 근처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박사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리겠다는 말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사람들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들어 보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그럼 와보시오. 얘기를 들어 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봅시다."

 잠시 후 이들 부부가 실험실에 들이닥쳤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였다. 남자는 피로에 지쳐 초췌한 모습이었다. 부인은 그와는 반대로 혈색이 좋고 피로한 기색은커녕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S라고 이름을 밝혔다. 나는 S씨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실은 제 처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조그만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 물론 자식도 있습니다. 지금은 처의 부정한 행위로 인해 사업도 팽개치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식어 버려 저의 가정은 파탄 직전에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빨리 가려서 제가 취해야 할 태도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벌써 3개월이란 세월을 고통스럽게 보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가 하루종일 일하고 밤 늦게 귀가합니다. 제 처는 제가 없는 낮시간을 이용해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여기 그 증거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S씨가 내민 증거물을 검사하기 전에 그에게 물어봤다.


"만일 그 증거가 부인의 부정으로 입증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오직 처의 부정한 행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처의 부정한 행위가 증명되더라고 절대로 헤어지지는 않겠습니다. 용서하고 새로운 각오로 새 삶을 시작하듯 살겠습니다."

 나는 S씨의 각오와 결심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옆에 앉아 있는 부인은 남편의 말대로 부정한 행위를 한 것이 사실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편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부정한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도 남편이 가져온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증명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부인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이것은 제 처가 사용하는 이불과 요의 천조각이고, 저것은 아내의 밤색코트 조각을 잘라 왔습니다. 여기에 묻어 있는 백색 얼룩진 흔적은 정액이 틀림없습니다. 박사님, 잘 좀 봐주세요. 정액이 묻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천조각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희고 불그스레한 물질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얼핏 이 증거물이 정액이 아닐 것이라는 감이 가슴에 전해졌다. 물론 오랫동안 정액 감정을 해왔던 경험에서 얻은 판단이었다. 나는 은근히 이 증거물을 검사해 줘도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만약 정액으로 증명될 것이 분명한 증거물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검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당신 부부가 사용해 온 이불과 요에서 정액이 검출된다면 그건 S씨 당신의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는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한 지 3개월이 넘었습니다. 부정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해 놓고, 슬그머니 이불과 요의 천조각 일부를 실험실로 옮겨 정액 반응 예비시험을 실시해 봤다. 반복 확인도 해 보았지만 정액이 검출되지 않았다.

 내가 예측했던 대로였다.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S씨 부부를 불러 실험을 실시하며 결과를 직접 관찰토록 했다. 물론 정액일 경우 시약을 떨구면 서로 화학반응이 일어나 색깔이 푸른 보라색으로 변하는 정액에 들어있는 효소 검출법이었다. 실험 원리까지 설명해 주고, 대조 시험으로 진짜 정액일 경우 나타나는 현상도 보여줬다.

 S씨 부부는 자신들이 가져온 증거물에 대한 실험 진행과정을 자세히 관찰했다. 특히 S씨는 두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는 색깔이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바로 이것이 색깔이 변하는 게 아닙니까?"

 S씨는 조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색깔이 변해가는 듯 느끼는 착각일 뿐이었다.

 "계속 더 보십시오. 색깔이 변하는지를…. 스스로 확신이 설 때까지 계속 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관찰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한참 후에 S씨는 증거물에서 눈을 떼고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S씨의 처는 그저 한결같이 덤덤한 표정이었다. 어떤 부정도 없었으므로 증거물의 과학적인 실험 결과도 당연히 무죄를 입증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듯했다.

 나는 S씨 부부의 표정을 살폈다. 두사람의 얼굴 표정은 금새 환하게 바뀌어 갔다. 처음 실험실에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난 3개월 동안의 고통과 긴장, 그리고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듯 허탈해 하는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환하고 밝은 표정으로 다정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실험실을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고 아름다웠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중요한 사건을 해결한 것보다 더 큰 의미와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 왜 이러한 의처증 내지는 의부증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기분이 씁쓸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