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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호 2004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돈을 쫓아 다녀서는 안 되더라구,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이 말은 그대로 기자한테도 통한다. 『특종을 쫓아다닌다고 나오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백 퍼센트 진실은 아니다.  진실 하나  YTN에 「진드기」 혹은 「진돗개」라고 불리는 후배가 있다. 별명에서도 짐작하겠지만 고집이 대단한 기자다. YTN 기동취재부의 金承在기자다.
 지난해 8월 金기자는 적십자사의 관리 부실로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 병원에 공급돼 60대 2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보도를 했다. 믿었던 혈액관리가 한마디로 엉터리라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그 뒤 金기자는 8개월 동안 무려 20회가 넘는 수혈 관련 보도를 했다. 「적십자사, 수혈 감염자 축소 의혹」 「신생아, 수혈로 B형 간염 감염」 등 연달아 굵직한 특종을 터트렸다.  한번 특종하고 나면 후속보도에 소홀한 것이 기자들의 일반적인 모습. 金기자의 연속보도는 선배들이 볼 때도 부러울 정도로 집요하다. 피만 보면 달려드는 「흡혈귀」. 金기자의 새로운 별명이다.  진실 둘  지난해 7월 9일이다. 의정부시에 있는 아파트 옥상에서 모 부대 金모 일병이 몸을 던졌다. 경기침체 때문인지 세태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살은 별로 기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이 사건도 그냥 그런 자살중의 하나로 지나가는 듯 했다.  사건 다음날, 평소처럼 출입처인 경기도 2청사로 갔다. 언제나 그렇듯 조용했다. 누구하나 어제 자살사건을 입에 담지 않았다. 벌써 잊혀진 사건이 된 것이다. 그때 고등학교 후배인 한겨레신문의 金東勳기자가 말을 꺼냈다. 『형 어제 자살 있잖아요, 그거 원인이 밝혀졌어요?』 『아니 모르겠는데, 그거 어디서 수사하지?』 『글쎄요. 영안실이 바로 요 옆이라고 하는데… 심심한데 한번 가보죠?』 출발은 이랬다.  金기자는 어제 사건 직후 경찰이 金일병의 친구들 몇 명을 조사했는데 친구들이 영안실에 있을 것 같으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만 알아보자고 했다. 병원 영안실은 썰렁했다. 유족들 몇 명과 군 관계자들만이 서성거렸다.  영안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20살 안팎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침울한 표정이었다. 먼저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친구들은 얼굴부터 찡그렸다. 어제 경찰서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뿐이었다. 친구가 이미 숨졌는데 이제 말을 해서 뭐 달라질 게 있냐는 말이었다.  대뜸 후배 金기자가 화를 냈다. 『야, 우리가 여기 놀러 온 줄 알아!』 「놀러 온 것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 온 것도 아닌데…」 속으로 생각했다. 계속된 설득에 그제야 친구들이 입을 열었다. 자살 전날 휴가를 나온 金일병과 밤새 술을 마셨는데 부대 고참들 몇 명이 자꾸 성기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해서 부대로 들어가기가 싫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 말대로라면 金일병은 고참들의 성추행을 피해 자살을 한 것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만 믿을 수는 없는 일.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의정부경찰서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친구 애들이 뭐라고 했어요? 뭐 나온 거 있어요?』 『없어! 그냥 자살사건이지 뭐』 예상대로다. 군대내 성추행 사건을 경찰이 알려 줄 리가 만무했다.  이렇게 해서 『내무반서 집단 성추행 충격…자살』이라는 보도가 나갔다. 리포트가 나가자 먼저 전화를 해 온 것은 국방부였다. 『군대 내에서 무슨 성추행이 있었다는 거요?』 『또 성추행이 있다 하더라도 군의 위상을 그렇게 무참히 뭉개야 하겠소!』 그러나 해당 부대의 말은 달랐다. 『집단은 아니예요, 성추행을 한 상병 한 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집단이 아니라 한 명이라니깐요!』 보도 다음 날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군대내 성추행 통계를 발표하고, 중령이 사병을 성추행 했다는 사실을 국방부가 발표하는 등 감추어져 있던 군대내 성문제가 공론화 되었다.  앞서의 예가 끈질긴 후속 보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면 뒤의 예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언젠가는 보답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는지… 『꺼진 불도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