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2008년 11월] 뉴스 본회소식
'모교 개교 원년 찾기' 지상토론

지난 9월호부터 모교 개교 원년 찾기와 관련해서 모교 법학부 曺 國교수, 교육학과 韓基彦명예교수, 李相赫변호사 등의 기고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朴衡圭동문의 옥고를 싣습니다. 이 밖에도 이와 관련된 동문 여러분의 다양한 고견과 기고를 기다립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혹은 개인의 경우 그 씨족이나 家系가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되면 될수록 그에 대해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어떤 조직체나 사회적 結社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 서울대학교의 경우 이제까지 1946년 미군정의 법령에 의해 국립서울대학교로 새 출발한 때를 개교 연도로 삼아옴으로써 그 역사와 전통이 매우 일천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각 단과대학별 연혁을 살펴보면 각각 차이는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그 淵源이 가장 오래된 대학은 법과대학으로서 일찍이 1895년 4월 25일(음력 4월 1일)에 고종의 칙령으로 설립된 `법관양성소'야말로 법과대학의 연원이 되는 원뿌리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법관양성소는 그 후 다소의 변천을 거치면서 상당 기간 계속됐다가 안타깝게도 일제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1911년도에 폐쇄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일제는 1922년도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다시 설립했고, 그 후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면서 그 곳의 법학부와 통합됐다가 다시 독립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1946년 8월 미군정에 의해 국립서울대학교의 한 단과대학인 법과대학으로 통합됐다. 법과대학이 국립서울대학교의 중심이 된 모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서울대학교의 일부인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전신격인 `법관양성소'는 서울대학교 전체로 봐서도 그 연원이 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大河의 강물은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이뤄지지만 그 원천은 가장 먼데서 발원한 작은 한 줄기의 물줄기에서 시작된다. 이때 그 물줄기가 어디서 발원됐든 그것은 그 강물의 원천임에는 틀림없다. 혹자는 서울대학교는 경성제국대학이 모체가 되어 여러 고등전문학교를 흡수통합해서 이뤄진 종합대학교인 만큼 일제가 경성제대를 설립한 1926년을 개교 연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국립서울대학교가 오늘날과 같은 종합대학교로 출발한 것은 1946년도이기 때문에 그때를 개교 연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론을 내세운다.(이제까지는 이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돼 현재까지 1946년을 개교 연도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해 다같이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첫째 서울대학교는 경성제대가 모체가 되어 여타 단과대학을 흡수통합해서 설립한 종합대학교는 아니다. 미군정이 1946년 8월 22일 공포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 제5조에는 오늘날 단과대학으로 돼있는 기존 각 고등교육기관을 열거한 다음 `이 모든 학교는 폐지되며 국립서울대학교에 흡수된다'고만 명시돼 있다. 이것은 곧 서울대학교를 설립하는 데 모체가 되는 대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과대학이 똑같은 자격과 비중으로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통합돼 그 체제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동 미군정 법령을 보면 서울대학교는 그때까지 없었던 대학교를 새로 신설하면서 거기에 기존 고등교육기관들을 흡수통합시킨 신설 대학교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그것은 새로운 대학교의 신설이 아니라 종합대학교를 만들기 위해 기존 고등교육기관을 하나로 통합해서 새로운 체제로 개편하고, 거기에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을 뿐 신설 대학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 대학교에는 그 이전의 역사나 전통이란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각 단과대학들은 장단의 차이는 있지만 1946년 이전에 이미 상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 역사와 전통을 전부 휴지처럼 저버리면서 이름과 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시점을 개교 연도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파기하는 우거라 아니 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고려대학교나 연세대학교 등 다른 여러 대학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고려대학교는 보성전문학교를 발전적으로 개편하고 명칭을 바꾼 대학교지만 그 대학교의 개교 연도는 보성전문학교의 개교 연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지, 고려대학교로 개편하고 개명한 때를 개교 연도로 삼고 있지 않다. 우리 서울대학교의 경우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만일 1946년을 서울대학교의 개교 연도로 규정한다면 이들 각 단과대학이 그 이전에 배출한 졸업자들은 물론, 그 역사와 전통은 동일 대학의 후신인 서울대학교와는 그 學脈이 완전히 단절되고 마는 모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어떤 사실이 이름이나 체제가 바뀐다고 해서 그 이전의 역사를 無로 돌린다면 이 세상엔 어떤 사실도 역사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서울대학교의 개교 연도를 각 대학이 통합돼 종합대학교로 출발한 1946년으로 삼는 것은 그 역사성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대학교의 개교는 각 단과대학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 된 最古의 연원을 찾아 그것을 개교 연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1946년 이전의 각 단과대학 출신자들이나 또는 그 역사와 전통 등이 서울대학교의 동문으로서, 또한 서울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포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서울대학교의 개교는 일제가 경성제대를 설립한 1926년도 아니요, 미군정이 종합대학교로 새로 발족시킨 1946년도 아니라 우리 민족의 주권하에 우리나라 국왕의 칙령에 의해 국립으로 법관양성소를 설립한 1895년 4월 25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옳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서울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그만큼 유구함을 입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주권하에 설립된 최초의 국립고등교육기관이라는 民族自尊의 높은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데도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