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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2008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의 `스티븐 호킹' 李尙默교수



뉴욕타임즈도 찬사를 보냈던 한국의 `스티븐 호킹' 李尙默(해양81­85)모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새로운 형태의 기부를 해 눈길을 끈다. 최근 `0.1그램의 희망'이란 책을 출간하고 인세를 전액 모교 발전기금에 출연하기로 한 것. 일종의 재능기부인 셈이다.
 지난해 발전기금에 5천만원을 출연해 `이혜정 장학금'을 운영 중인 李교수는 인세를 받아 1억5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더 출연할 예정이다. 李尙默교수는 “최소 1억원이 돼야 원금을 보존하며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들었다”며 “지난 학기에 제 이야기가 여러 신문에 소개되면서 출판을 제의해온 회사가 여럿 있었고 기금을 증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 랜덤하우스코리아와 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금 증액이 책 출간의 중요 동기였던 것이다.

랜덤하우스코리아도 李교수의 나눔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인세 비율을 높이고 여러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펼치고 있다.
 李교수의 나눔은 공대 李建雨(기계공학74­78)교수로부터 출발한다. 李建雨교수는 2006년 미국에서 지질조사 중 차량 전복으로 전신마비가 된 李尙默교수의 소식을 듣고 그 해 11월 경암교육문화재단의 학술상 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李교수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모교에 기부했다.
 “2007년 초 모교로 돌아와서 李建雨교수님을 만나 처음 건넨 말이 `저 아십니까' 였어요. 그런 큰돈을 줄 분이라면 혹시 아는 분이 아닐까 싶었던 거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도의 인연 밖에는 없더라고요. 공대 교수가 자연대 교수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자연대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같이 돕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요. 지질조사에 나섰다가 죽음을 당한 제자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혜정 장학금'은 그렇게 여러 교수님들과 함께 만든 거예요.”
 李建雨교수와의 인연은 계속돼 장애인 보조재활기계에 관심 많은 10여 명의 교수들과 함께 `보조재활공학센터'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모교 언어학과 鄭民和(제어계측80­84)교수도 참여해 음성인식 연구를 돕는다. 이 센터를 설립하는데 경암교육문화재단에서 1억원을 쾌척했다. 그러나 아직 차세대융합기술원에 간판만 건 상태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모여 센터의 연구 방향을 정하고 정부 기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에 있다.
 李尙默교수는 첨단 휠체어와 보조기계를 이용해 강의를 하고 일상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목 아래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 강의를 하고 전화를 받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첨단 기계들이 가져다 준 축복이다.
 “저 같은 사람들은 줄기세포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컴퓨터산업에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팔도 못 쓰는 심한 장애인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컴퓨터 하나만으로도 이메일, 전화, 텔레뱅킹, 쇼핑을 하는 등 삶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수적인 일이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45억년이 된 지구의 숨겨진 과거를 밝혀내는 일. 최근 2억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보존된 바다 속 지질을 연구해 그것을 토대로 지구의 변화과정을 밝히고 더 나아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의 생성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이다.
 李교수는 모교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MIT-우즈홀 공동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해 지질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우즈홀과 영국 더램대학교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한국해양연구소장의 강력한 권유로 국내로 돌아와 해양학의 불모지인 한국의 대양탐사를 진두지휘하며 한국 해양학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한국해양연구소에서 5년 동안 선임연구원으로 일한 후 2003년 모교 해양지질학전공 교수로 임용됐다. 그러던 중 200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미국 야외 지질조사 과정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오대양을 누비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쳤던 저의 삶이 이제 전동 휠체어 안에 갇히게 됐지만 늘 그래왔듯 이 역시 새로운 도전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 자연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전진하겠습니다.”
 그가 이번에 쓴 `0.1그램의 희망'도 해양과학자로 꿈을 꾸고 걸어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여타의 희망을 역설하는 장애극복기와 구별되는 점이다. 소설가 蔣正一씨는 “이 책은 장애극복기라고 볼 수가 없다.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하면 기껏해야 공무원, 판검사, 의사 등 몇 가지 틀에 박힌 사고만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사례기 같다. 생소한 전공을 공부해서도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평했다.
 `0.1그램의 희망'은 비장애인으로 산 44년의 세월과 장애인으로 지낸 2년의 삶을 담고 있다. 바다를 꿈꾸던 소년시절, 해양학자로 태평양을 누비던 순간, 사고 후 재활훈련 과정, 다시 강단에 선 소회 등을 극적으로 펼쳐보인다.
 동문들에게 책을 많이 사줄 것을 부탁하며 마지막으로 李교수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반대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제 경우도 그런 것이고요. 그래서 저의 나눔은 그리 칭찬할 일이 못됩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분은 받기 전에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똑똑한 분들이고요. 우리 동문들이 모두 그랬으면 좋겠어요.” 〈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