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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2008년 10월] 기고 감상평

금세기 최고 테너 파바로티를 그리며



지난 9월 6일이 파바로티 서거 1주년.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더없이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금빛 찬란한 광채를 지닌 미성의 테너 파바로티는 1년 전 모데나의 성당에서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해바라기꽃 옆에서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했다.
 베르디의 아베마리아와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모차르트의 성가곡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들으면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음의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황금 목소리의 주인공 루치아노 파바로티여!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만남'이라 했거늘, 음악을 사랑하는 필자에게 있어 파바로티 당신과의 만남은 내 생애에 가장 잊지 못할 경이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오.
 즉 그 만남은 1977년 11월 29일 음악 평론가이며 KOC위원이신 故 劉漢徹선생께서 MBC방송 초청으로 한국에 처음 내한공연하게 된 루치아노 파바로티 씨의 김포공항 영접에 당시 한국성악회 공보이사를 맡고 있던 필자를 동행하게 해 첫 대면 인사를 나눌 계기가 된 것이죠. 그 날 추운 날씨 때문인지 털모자에다 목도리를 감은 거구의 40대 초반의 파바로티 당신께 劉漢徹선생은 나를 소개하면서 “의사테너로서 여러 번 독창회를 가졌다”고 하니까 독특한 밝은 미소와 함께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갑게 악수를 청하던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오.
 그리고 그 길로 조선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대 강당에서 저녁 7시 있을 본 연주회에 앞서 리허설(그 때 들은 곡 중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전율을 느낄만큼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졌다오.)을 들으며 한국을 떠날 때까지 劉漢徹선생과 더불어 지냈던 날들이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이 세상을 하직한 지 1년이 되다니 세월의 덧없음을 새삼 느끼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지난날 추억의 엽서들을 뒤적여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 가장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엽서가 있다오.
 그것은 1977년 파바로티 당신이 첫 내한공연을 끝내고 한국을 떠나면서 이 사람에게 보내준 우정 어린 엽서 한 장이라오. 그 엽서는 당신의 독창회 직후 우리나라 전설에 악귀를 쫓고 행운을 약속한다는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이라고 쓴 목각 한 쌍을 조선호텔 투숙 때 당신께 드린 데 대한 답례라고 기억합니다만, 한국의 얼이 담긴 그 목각을 받아 들고 소년처럼 매만지며 기뻐하던 당신의 無垢한 모습은 지금도 영영 잊을 수 없다오.
 또 잊지 못할 일은 이대 강당의 실제 리사이틀에서 내가 미리 청했던 앵콜곡인 푸치니의 `라 토스카' 중 아리아 `오묘한 조화'를 맨 먼저 불러 주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던 당신이었소. 타이트한 까만 연미복 정장에다 더부룩한 구레나룻 수염에 항공모함 같은 거구를 이끌고 나와 하얀 손수건을 왼손에 펴든 채 노래하는 聖者 - 그 위대한 테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오.
 당신은 아리고폴라 스승에게 사사이후 26세에 1961년 `라보엠'의 루돌프역으로 데뷔해 1965년 `라스카라좌', 1968년 `메트로폴리탄'에 등좌해 한 오페라에 9번의 고난도 하이C를 부를 수 있는 `하이C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됐으며, 맑고 확 트인 탄력성 있는 높은 음을 마음대로 구사하는 소리의 마술사가 되지 않았소?
 카루소조차 누리지 못한 전대미문의 열광적인 환호와 사랑을 받은 테너는 당신밖에 없으며 메트로폴리탄 30주년 기념 공연, 쓰리테너 공연 등 당신 노래의 후반기는 환자와 난민구호를 위한 자선음악회 공연으로 질병과 고통을 눈발처럼 털어 버리려는 당신의 노력도 잘 알고 있다오.
 “관중은 산소와 같다”고 멋진 말을 남기면서 한국의 산소를 여러 차례 호흡하고 돌아갔었던 파바로티여!
 나는 지금 당신이 부른 대표곡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오.
 신이 내린 영광의 목소리, 금세기 최고 테너 파바로티여! “거장이여 안녕히(Addio, Maestro)”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