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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2008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강원도 영월 산골서 `悠悠自適'



 서울을 떠나 젊은 시절 접었던 조각가의 꿈을 되살리며 목각 공예에 전념하고 있는 공대 건축학과 58학번 黃大錫동문을 만나러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산골에 사는 그를 찾아갔다.

 黃동문은 1996년 강원도 영월로 낙향을 해 치악산 기슭에서 야생화를 키우고 나무판에 마음을 새기면서 산다.

 3년 전부터 영월에 사는 이름난 목공예가 박장배 씨로부터 배운 書畵刻 솜씨는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과 손재주 때문인지 10년을 배운 어느 篆刻 예술가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70을 넘긴 나이에 서화각 공예가로 다시 태어났다.

 黃동문은 요즈음 틈만 나면 집 뒤에 딸린 공방에서 나무 향을 맡으며 나무 결을 따라 칼을 놀린다. 칼끝에서 십장생이 그려지고 만고의 진리를 담은 서예가들의 작품들이 크고 작은 돌배나무, 산벗나무, 느티나무 판에 음양각으로, 어떤 때는 평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姜燦均명예교수가 디자인한

관악캠퍼스 정문 철골 만들어


 詩․書․畵를 먼저 알고 나서 각을 알아야 서화각을 할 수 있다. 서화각은 평면 예술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조각에 가까운 입체 예술일 수도 있다. 서예가들이 붓으로 전해주는 시의 감흥을 공예의 한 부문인 전각 예술가들은 칼끝으로 나무나 돌, 유리, 상아 등에 새겨 넣는다. 글씨만 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파낸다.

 그가 손가락 마디가 아프도록 칼끝에 기를 모아 파고 다듬은 작품들은 매년 봄 영월 단종문화제나 제천의 옥소예술제 때 서화각 동호인 모임인 刻心會 회원들과 같이 회원전에서 선을 보여왔다. 현재 그는 제천, 영월에서 서화각을 하는 향토 예술가이지만 "계기가 마련되면 언젠가 개인전을 할 날이 올 테지 뭐…"라고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머지않아 서울 한복판에서 그의 서화각 개인전이 열릴 날이 곧 오리라.

 영월 동강 강변에는 천연기념물인 동강 할미꽃이 서식한다. 黃동문은 영월자원식물연구회를 만들어 회원들과 동강 할미꽃 씨를 받아 이를 발아시켜 자생 군락지 복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영월자원식물연구회장과 각심회 회장을 맡고 있는 黃동문은 대우건설 아프리카 현지 사장과 삼익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현업에서 물러났다.

 현재 그는 12년째 손수 지은 산중의 통나무집 自閑齋에 살고 있다. 서울서 2시간 거리인 치악산 기슭에 있는 그의 집과 공방을 자주 찾는 이들이 많다. 오랜 친구인 安東壹(법학59­63 홍익법무법인 변호사)․李載厚(법학58­62 김&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동문과 鮮于仲皓(토목공학59­63 광주과학기술원장)․李鍾憲(경제59­65 덕인양행 사장)․安聖哲(행정58­63 유니온테크 회장)동문 등이 자주 서화각 공방과 그가 전국을 다니며 채집해 키우고 있는 야생화 꽃밭을 둘러보고, 색다른 삶을 사는 그를 격려하며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은퇴 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제2의 고향인 영월과 제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지역 유지들과 자주 만나 교분을 두텁게 쌓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배우고 닦은 서화각의 운도법을 이 고장 장애인들에게 가르쳐 생업에 도움이 되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공방을 차렸으면 하는데, 개인 힘으로는 힘들 것 같아. 이런 사업은 아마도 지자체가 앞장서 해야 할 사업일지도 몰라."

 黃동문은 모교와 남다른 인연을 많이 맺고 있다. 모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나서 디자인학부 姜燦均(응용미술57­63)명예교수가 정문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이때 세워진 철골 정문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黃동문이 직접 설립해 운영했던 철골제작 전문업체였던 `鋼構社'에서 만들어 세운 작품이다.



치악산 기슭서 야생화 키우며

鋼구조학회․색채학회 활동도


 黃동문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 모두 아버지가 세운, 화염병에도 끄덕 없는 鐵구조물로 만들어진 서울대 정문을 드나들었다.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장남 黃周善(조소89­93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동문과 아버지의 대를 이어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黃周明(건축91­95 대우건설 과장)동문은 아버지가 설치한 서울대 철 대문을 지나다녔다. 그때마다 이들은 늘 건축가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고 한다.

 1978년 3월에 세워진 서울대 정문은 우리나라에서 리베이트 공법으로 만들어 세운 최후의 철구조물이다. 보통 철구조물은 하이텐션 볼트 공법이나 용접 공법으로 제작되는데 서울대 정문은 리베이트 공법으로 제작해 세웠다. 당시 정문 공사를 할 때만 해도 리베이트 공법 기술자들이 일선에서 다 떠난 후여서 멀리 전남 완도까지 가서 옛날에 같이 일했던 기술자들을 데려와 공사를 했다고 한다. 黃동문은 1993년 대전엑스포 정부관 건립을 한 공로로 동탑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야생화 키우랴, 작품에 매달리랴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시골생활에서도 黃동문은 한국鋼구조학회와 색채학회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졸업한 경기고 54회 동기생들로서 모교 공대를 졸업한 `540會' 모임이 있는 날이면 친구들을 만나러 영월 주천골을 떠나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다.

〈본보 李五峰논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