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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2008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金明俙 KBS 첫 여성 음악PD




 

 음악이 흐른다. 이어 KBS 초대 여성 음악PD를 지낸 金明俙(성악51­55)동문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표정이 굳은 환자들에게 노래로 인사한다. 처음엔 입을 꼭 다물고 있던 환자들도 金동문이 󰡒따라하실래요?󰡓하며 분위기를 유도하자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한 시간 뒤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들이 풀리고 얼굴엔 화색이 돈다.

 "지난 1955년 우리나라 최초 신경정신과의원을 개원해 국내 정신의학과 군정신과를 개척한 남편 兪碩鎭(경성의학44졸 前베드로정신과의원장)박사가 개발한 음악요법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성악을 하니 음악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같이 했죠. 국내외 학회를 개최할 때도, 지역봉사회 모임을 만들 때도 저에게 이러한 중책을 맡겼어요. 兪박사께서 정신의학계의 태두로 불리우는 것도 이러한 음악․미술․댄스․사이코드라마 요법을 통해 환자들이 정서적으로 회복되고 온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전인격적 진료를 했기 때문이죠."

 무공훈장을 받은 兪碩鎭동문은 지난 6월  88세에 숙환으로 별세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兪동문은 국내 정신의학․로타리클럽․가톨릭 선교와 문화․예술 발전 등에 공헌했으며, 여든의 나이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 늘 배우는 자세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개척정신을 지녀야 한다"는 철학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사회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덕업을 `日新又日新'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30년간 서울대총동창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金明俙동문 역시 한국성악회 부회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영화방송부 위원장, 한국여학사협회 문화교류부장, 방송인동호회 창립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방송 및 여성분야에 헌신했다.

 兪碩鎭․金明?동문 부부가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활약했듯이 가족 중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인이 20여 명에 이른다.

 장남 兪泰赫(심리학66­71 베드로신경정신과의원장)동문과 맏사위 李棕性(의학64졸 前뉴욕주립대 임상교수)동문을 포함해 차녀․3남․막내사위․외손자 등 7명이 정신과 전문의로 활약하고 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마취과 전문의) 그리고 외손녀(이비인후과 전문의)까지 합치면 가족 중 의사가 10명에 이른다.

 7남매 중 4남인 남편 兪碩鎭동문의 가족 중에는 맏형 故 兪興鎭(경성의전29졸 前산부인과학회장)동문의 장남․맏사위․차녀․차남․셋째 사위가 서울대 가족을 이룬다. 또 兪碩鎭동문의 둘째 형의 아들 둘과 셋째 형 故 兪南鎭(농학37졸)동문의 아들 셋, 큰며느리, 둘째 사위가 모교를 졸업했다. 특히 兪南鎭동문의 손녀가 아나운서 출신인 兪靜雅(사회85­89)동문으로, 최근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을 펴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다. 兪碩鎭동문 누나의 아들 2명과 남동생 故 兪億鎭(불문48­56)동문, 그리고 매제 白燦玉(경제48­55)동문과 그의 장남․장녀가 모두 모교 출신이다.

 金明俙동문은 兪碩鎭동문과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1957년 남편이 `프로이트 탄생 101주년 기념 강연회'를 열어 프로이트이론을 소개해 국내 정신의학계 발전에 신호탄 역할을 했어요. 그 무렵 어린이들의 정신건강 및 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아동상담소도 운영했는데, 兪박사의 소원이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사회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자녀들을 모아 종합클리닉센터를 세우는 것이었죠.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 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녀와 손자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兪碩鎭동문은 한국임상예술학회 창립회장으로 예술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폐관위기에 놓인 소극장을 부활시켜 당시 큰 화제가 됐었다고.

 "1975년 재정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소극장에 거금을 출연해 `삼일로창고극장'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개관을 했습니다. 개관 2주년 때는 번역물 `마음의 심층'을 공연하기도 했고요.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소극장들에게 활력소가 됐고, 관객이 늘면서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죠."

 兪碩鎭동문이 정신의학계 다음으로 열정을 바쳤던 곳이 로타리클럽 활동이다. 국제로타리 3650지구 총재를 역임한 그는 30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로타리클럽 모임에 참석해 출석상을 받을 정도로 지역봉사활동에 헌신적이었다. 모교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던 兪동문은 지난 2002년 모교 의학박물관에 50~60년대 발간된 정신의학서적과 학회 간행물 등 초창기 국내 정신의학계를 엿볼 수 있는 사료 2만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金明俙동문은 "兪박사께선 남을 배려하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저 역시 마지막까지 모교와 사회를 위해 일조할 수 있는 동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9월엔 흩어졌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떡도 빚고, 윷놀이도 하며, 3대가 어울리는 추석 명절이 있다. 兪碩鎭동문의 유지를 받들어 생전에 강조했던 `우리가족 하나되어'를 오래도록 실천하는 서울대 가족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