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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2008년 9월] 문화 꽁트

40년후



 
20대 청춘의 그 팔팔하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둘러보는 얼굴마다 40년 세월의 풍화작용이 역력하다. 신 화백은 벌써 오늘 산행에 나온 것이 후회스러워진다. 버스에 탄 스무 명 가까운 일행 중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은 절반도 안 되는 것 같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서울대 출신들치고는 이 정도의 인원이나마 매달 모여진다는 것이 대견한 일이라 했다. 같은 학번 단과대 동창들 중에서 비교적 팔자 좋은 축들이 모여 낙산클럽이라는 것을 만든 것이 10년 전인데, 매년 네 차례 정기모임을 갖는데다 월례행사로 전국의 명산을 순례하고 있으며 해마다 늦가을에는 해외여행까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 화백은 이 클럽 모임에 나올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때마침 인사동 화랑가에서 있었던 한 동료 화가의 개인전을 축하하러 온다는 타이밍의 일치가 그의 결심을 도와줬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오늘 낙산클럽의 용문산 산행에 참가하도록 이끌었던 동인은 무엇보다도 첫사랑의 여인 박혜인이었다. 그의 대학생활 4년 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고 그냥 바라보기만해도 가슴이 울렁거렸던 그녀였다. 1백50명 가량 되는 클럽 회원들 중 홍일점인 박혜인이가 석 달 전에 駐佛 대사직을 끝으로 외교관 생활에서 물러난 후 낙산클럽 산행에 열성적인 참가의지를 밝혔다는 인터넷 뉴스레터가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신 화백의 부풀었던 기대는 오늘 아침 청량리역에서 일행을 만나는 순간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인사소개 시간에 자기가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말로 대강 끝내려고 했는데 (한때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는) 클럽 회장이 󰡒엘리트대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로맨틱 아티스트 신 화백󰡓이라고 토를 달았다.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시골의 무명화가를 떳떳한 동창으로 인정이나 해줄지 약간 꿀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박혜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실마리는 될 것 같았다.

 대학시절에 박혜인의 동정을 숨어 살피던 그는 그녀의 남다른 미술취미까지 탐지했었던 것이다. 그녀를 멀리서 훔쳐보고 엉거주춤 맴돌다가 어설프게 끝장낸 씁쓸한 추억의 4년이었다. 메아리 없는 러브레터 일곱 번의 행적은 그 씁쓸찝찔한 추억들의 결정판이었다. 그 어설픈 러브레터 전력만 없었어도 감연히 대학동창 주불 대사를 찾아보고 파리 화랑가 방문을 결행했을 것이라는 것이 신 화백의 생각이다.

 신 화백은 끼리끼리 히히덕거리는 동료들과 겉돌고 있는 자신이 영 거북스럽다. 그런 가운데 소설가 동창을 한 사람 알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일행이 30인승 대절버스에 올라타려 할 때 한 친구가 다가와서 "우린 엘리트대학 이단자여, 화가나 소설가나 오십보 백보니께"하며 색다른 우정을 토로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왕년의 유명인사 치고는 꽤 소탈한 인상이다. 뉴스 주인공으로 나올 때의 무게 잡는 모습과는 달리 마냥 헐렁하고 털털한 표정들인 것이다. 학창시절의 분위기와도 다르다. 무슨 장엄비극의 주인공처럼 양미간에 힘을 주고 세상을 노려보던 그 준엄한 얼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는지 의아스러워진다.

 천연스럽도록 자유분방한 박혜인의 언동도 신 화백의 눈을 의심케 한다. 박혜인 옆자리에 앉아있던 클럽 회장이 자리를 뜨는 잠시 사이에 어떤 친구 하나가 그 자리로 얼른 가서 앉았는데, 가까이 앉았던 이들에게서 "왜 노상 박 여사의 옆자리에 눈독을 들이느냐"는 핀잔이 날아왔을 때 (옛날 웬만한 남자들 거들떠도 안 볼 만큼 도도하던) 그녀의 응수가 걸작이었으니, "과부 옆자리는 엉덩이 들이밀고 먼저 차지하는 남자가 임자외다." 이에 못지 않게 동석자의 입담도 걸찍했으니, "유휴공간 점유의 선취득권은 대한민국 민법이 보장한다네." 

 이들의 산행 일정은 갑작스러운 우천 날씨로 인해 용문산 코스에서부터 청평호상의 남이섬 코스로 바뀌었다. 원래는 어린이 놀이터 정도로 알려졌던 남이섬이지만 근래에 다양한 실내 오락시설이나 공연장과 전시장들이 갖추어져 있는데다가 비올 때 산책할 수 있는 경관 좋은 숲길도 많이 있다는 인솔자의 설명을 듣고는 이에 대한 반대자가 나오지 않았다.

 비내리는 가운데 도착한 남이섬에는 그런대로 구경할 곳이 많았다. 점심 식사 후 들른 현대미술 전시장도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는 것이 신 화백의 생각이었으나 대부분 회원들의 취향은 이와 달랐다. 누군가의 입에서 남이섬의 노래방 수준이 국가대표급이라는 말이 나오자 즉석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스무 명 가까운 일행이 우루루 몰려간 노래방은 서울 유흥가의 고급 단란주점 못지않게 화려한 곳이었다.

 노래에 굶주렸던 사람들처럼 자진해 열창을 불러제낀 세 사람의 뒤를 이어 박혜인이가 성큼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는다. 좌중의 박수가 끝나자 그녀는 걸걸한 인사말부터 시작한다. 금년 가을 낙산클럽 해외여행지인 프랑스에 가면 자기가 직접 여행 가이드를 할 계획으로 있으니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기 바란다는 선언에 또 한번 열띤 박수가 나온다.

 이어서 박혜인의 입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임 아 라무르'가 흘러나오자 모두들 숨을 죽이는 듯하다. 떨림이 풍부한 목소리가 정감어린 프랑스어의 참맛을 실어내는 것 같고 그녀의 화사한 미모에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옛날의 싱싱함은 가셨지만 거기에는 젊은 시절에 없던 잔잔한 미소와 넉넉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 박혜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신 화백은 그녀가 이 같은 걸물인 줄을 더 일찍 알았다면 그 유치한 러브레터를 일곱 번이나 보내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 남자가 박혜인 같은 여자 앞에 떳떳이 서기 위해 갖춰야 할 것에 대해 자기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생각이다.

 박혜인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받아쥐는 이가 있어서 보았더니 아침에 신 화백에게 소설가라고 자기소개했던 친구이다. 고복수의 `짝사랑'을 부르는데 원래 구슬픈 곡조인 노래가 더욱 처량한 가락으로 흘러나온다. 노래를 마친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비감이 어려있으면서도 연극배우 같은 과장끼를 띤 어조이다.

 "낙산클럽 동지 여러부운, 제가 지금 `짝사랑' 노래를 애절하게 목놓아 부른 것은 우리 낙산클럽 법정에 호소할 애절한 사연이 있다는 겁니다. 옛날 우리는 엘리트대학 분수대 앞 정의의 여신상을 우러러 보면서 정의사회 구현의 꿈을 불태웠습니다. 여러부운, 무릇 정의란 무엇입니까아. 저는요 정의사회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무엇을 받았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되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에에또, 아무도 모르는 옛날 일을 고백하려니까 제가 정말 목이 다 막히는 것 같습니다. 제가요, 꿈많던 우리 대학시절에 여기 앉아있는 박혜인 여사에게 러브레터를 무려 열다섯 번이나 보냈지만 답장은 단 한번도 못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저는 오늘 엄숙한 정의구현의 이름으로 저의 억울한 청춘에 응분의 보상을 호소하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나온다. 민사소송 시효가 벌써 지났다, 아들 손자 줄줄이 딸린 과부를 데려갈테냐, 소설 쓰려거든 집에 가서 써라 등등. 소설가의 연설이 다시 시작된다.

 "여러부운, 진정하시라니깐요. 제가 아무리 소설가이지만 현실을 무시한 상상 공상 망상을 논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시절 공부벌레가 됨으로써 판․검사되고 장관되고 하는 보상을 받았지만, 연애편지 써보내는 데 바친 저의 청춘에 대해 제가 요구하는 보상은요 아주 작고 간단한 것입니다. 두 달 후에 가게 될 낙산클럽 해외여행 중에 프랑스행 항공기 좌석 배정에서 박혜인 여사의 옆자리를 저에게 배려해 달라는 겁니다." 
이번에도 야유가 쏟아진다. 러브레터 열다섯 번 낸 걸 어떻게 증명하겠느냐, 연애소설 쓰는 연습을 했던 것 아니냐, 박혜인 옆자리는 내가 벌써 받아놓았다 등등. 좌중의 소란은 클럽 회장이 일어서서 입을 엶으로써 진정된다. 이 문제는 사건 당사자의 판결에 맡기자는 것이다. 박혜인이가 성큼 일어선다.

 "오늘 초가을비 맞으며 찾아든 남이섬 노래방에서 꿈많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오는군요. 우리 시절에는 러브레터야말로 청춘남녀의 알싸한 마음속 이야기를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책과 씨름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우리 엘리트대학 동지들에게는 강 건너 잔치였지요. 저는 제가 그 시절에 받았던 많지 않은 러브레터들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머리 싸매고 고시준비하던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것도 돈키호테처럼 혈기차고 로맨틱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되는군요.

 어어, 뭐랄까요, 저는 제가 받은 모든 러브레터에 대해 답장을 써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낸 답장은 펄프 종이 위에 써보낸 것이 아니라 상상의 구름 위에 써보낸 거지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이란 말도 있잖아요. 저는 오늘 집에 가서 40년 전 이 편지들을 다시 꺼내 볼 것입니다. 엄숙하고 장중하게만 느껴지던 우리 엘리트대학의 역사에도 꿈과 낭만이 있었음을 보여준 추억들이 이제와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 앞에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저의 프랑스행 항공기의 옆자리와 프랑스 여행 중의 열차 옆자리는 이 분들에게 배정해 드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열띤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신 화백은 콧등이 찡하고 아파옴을 느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