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호 2008년 7월] 문화 꽁트
어찌 이런 일이
새로 산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아내가 이전 집에서 떼어 온 커튼을 달아달라고 했다. 커튼을 떼어 올 때부터 내가 가져가지 말자는 데도 아내는 새로 맞춘 지 몇 달 안 된 거라며 기어이 가져온 터라 성큼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커튼업자에게 시키라고 버티다가 괜히 고리만 끼우면 되는 일을 내쳤다가 두고두고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못이긴 체 하며 몸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젊었을 때부터 나는 집에서 쉬는 날에는 가만히 있질 못한다. 주로 목재를 가지고 무엇이나 만들기를 좋아한다.
지하방 두 칸 중 작은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고 있는데 작은방에 조그마한 작업대를 설치하고 거기서 톱질이나 대패질, 끌질도 한다. 우리 집에 있는 책꽂이나 TV대 등 어지간한 것은 대개 내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커튼은 고리만 끼우면 되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가져온 커튼이 이 집 구조보다 짧은 편이라 커튼 레일 전체를 한 치 가량 아래로 내려 달아야 했다.
전동 드라이버로 나사못을 박을 때 몇 번 못이 튀어 날아가기도 했으나 커튼 옮겨 달기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아내가 맥주를 차려 와서 맛있게 먹었다. 그 때 목구멍이 간질거려 기침을 했다. 한참 후에 또 기침이 나왔다. 마치 작은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이는 것 같아 기침을 참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십여 분에 몇 번씩 잊어버릴 만하면 기침이 났다. 그러다가 기침주기가 점점 단축됐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면서 가벼운 마른기침을 계속하다 보니 목구멍이 가렵다가 따가워지고 나중에는 목에서 쇳소리까지 났다. 갑자기 힘든 일을 해 감기가 걸렸다고 미안해하며 아내가 약국에서 물약을 사왔다. 기침이 멎지 않아 이튿날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가 쇠막대로 혀뿌리를 누르고 손전등으로 목구멍을 들여다보고는 기침감기약을 처방해 줬다. 약을 먹었으나 기침은 계속됐다.
큰 병원에 가보려고 하는데 마침 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정기 건강검진 통지서가 왔다. 건강검진을 하면서 이비인후과에서 인후를 중심으로 엑스레이도 두 장이나 찍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두 달도 더 전에 자식들이 내 칠순 기념으로 남미 효도관광을 예약해 놓았는데 그 여행 날짜가 닥쳤다.
기침이 잦아 좀 찜찜하긴 했으나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기침감기쯤이야 좋은 구경하다 보면 금방 낫는다면서 모두 권했다. 내 입장만 생각한다면 그만 주저앉고 싶었지만 남미여행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아내와 여행을 마련해준 자식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부부가 함께 여행 팀을 따라나섰다. 여행 전날 이비인후과에 가서 기침감기약 열흘치를 지어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고공으로 올라 갈수록 기침이 점점 심해졌다. 작은 기침이지만 자주 하다 보니 가까이 앉은 승객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마침 특석 몇 자리가 비어 있어 그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나 특석이 기침을 낫게 해주지는 않았다. 음식을 먹을 때나 말을 할 때도 기침이 났다. 호텔에서 잘 때도 관광버스 안에서도 마른기침이 났다. 기침 때문에 우리 둘의 여행은 완전히 망쳤다. 10박11일간 남미관광을 한 후 기억에 남은 명칭은 오직 이과수폭포뿐이다. 폭포 소리가 하도 커서 출발 후 처음으로 기침소리가 안 들렸다고 아내가 말한 덕분에 그나마 입력이 된 것이다.
거의 초죽음이 되어 집에 도착했는데 토요일 오후라 병원에도 못 갔다. 몸져눕다시피 하고 있는데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이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여행 망친 이야기를 하는데 또 기침이 났다. 그 때 쇠붙이가 튀어나와 혀에 걸렸다. 기침을 세게 해 보철한 이가 빠진 줄 알았다.
손바닥에 뱉으니 날카로운 나사못이었다. 커튼 달 때 튕겨 날아가 찾지 못했던 나사못이었다. 이십일 가까이 기침으로 그를 괴롭힌 바로 그 원흉이었다.
커튼을 달 때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대개 쳐다보고 일을 하면 입을 벌리게 되는데 이 때 튕겨진 나사못이 벌린 입을 통해 순간적으로 목구멍 깊숙이 박힌 모양인데 어찌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 기막히고 어이없어 한참동안 말문이 막혔다. 나사못으로 인한 기침인데 감기약을 잔뜩 사들고 해외여행을 했으니 창피해서 어디다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마침 건강검진 결과가 우송돼 와 있었다. 의사 소견 난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기도에 이물질 발견(볼트로 사료됨). 기도 정밀 검진 요함.'
그런데 그 후에도 기침은 계속됐다. 전과 같이 잦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기침이 났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진을 받았다. 50이 넘어 보이는 의사는 말이 없이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내시경으로 보고 조직검사를 하겠다면서 살점을 떼어갔다. 그 사이 기침은 멎어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기침 멎는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 20여 일 괴롭히던 기침이 안 나오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퇴원을 시켜주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인후에 이상이 발견돼 지금 조직검사 중인데 워낙 몸이 쇠약해 한동안 입원을 하고 있어야 한단다.
조직검사라면 암검사라는 얘긴데 그러면 그 기침이 나사못 탓이 아니라 암 때문이라는 말인가?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린 이유가 암 때문에 그런 것인가?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아내나 아이들이 곁에서 말을 걸어도 생각에 빠져 못 듣기가 일쑤였다. 그들 또한 조직검사를 한다하니 걱정이 되는 눈치가 역연하다. 아니면 나 몰래 가족들에게는 사실을 알려주고 나에게만 숨기는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몰입되다 보니 먼저 밥맛이 달아났다. 반도 먹지 않고 물리거나 아예 입에 대기조차 싫었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컷 잔 것 같은데 겨우 한 시간이고 그 후론 잠이 오지 않았다. 잠 못 자는 시간에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두서없이 재생되는 기억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남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별것 아닌 일로 지나쳐 온 것들이 진한 회한과 질책으로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병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인후암은 목구멍 쪽이라 수술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나는 담배를 오래 피웠으니 말기암이 되어 고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죽는 건데 죽으면 곁에 있어 일상으로 만나던 모든 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가족과 친구들, 내가 심은 나무와 꽃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가는 친구들이 맨 먼저 떠올랐다. 그들이 모인 자리에 내가 없고 온갖 신소리와 우스개에 내가 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이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걸린 것인가?' 하는 원망이 일어났다. 간악한 사기로 한 가정을 거덜 낸 악질도 멀쩡하게 천수를 다하는데 나는 나름대로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나만 먼저 죽어야 하는가? 내가 이렇게 쓰러지면 남들은 내가 더 큰 죄를 지은 줄 알 거야. 마치 법이나 도덕을 기준으로 죽을 병이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돼졌다.
근거도 없는 망상이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대신했다. 닷새 간에 내가 한 생각의 길이를 자로 잰다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천당과 지옥을 몇 번이나 갔다 왔을 것이다. 나중에는 몸이 지쳐 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생각은 생생했다. `암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데려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졸고 앉은 아내를 깨워 몇 개의 전화를 적어주고 내일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입원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원 없이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마주하면 눈물도 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내 병을 알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스스로 만든 올가미가 풀린 것인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늦은 아침이었다.
검사결과가 나온 날, 의사와 상담하러 나설 때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기력이 쇠해진 탓도 있겠지만 두려움 탓이 더 큰 것 같다. 약한 꼴은 추하게 보이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아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언제 왔는지 아들, 딸과 며느리, 사위들이 다 와 있었다. 그걸 보니까 일이 커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리가 더 흔들렸다.
그 무뚝뚝한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시경 사진을 펼쳤다. 연필로 나사못 상처를 가리키며 아직도 상처가 덜 아물어 기침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 옆에 좁쌀만 한 작은 점을 가리켰다. 거기서 살점을 떼내어 조직검사를 한 결과 초기 암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암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말하는 순간, 같이 서 있던 아내와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의사를 쳐다봤다. 무표정하던 분이 함박웃음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가끔 이러한 깜짝쇼로 환자를 축하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기적을 축하한다고 했다. 인후암인데 막 시작되는 초기 단계라 방사선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암은 조기에 발견하기가 어려운데 나사못이 바로 옆에 박혀 기침을 나게 하는 바람에 쉽게 발견된 것이란다.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나사못이 튀어나올 때처럼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의사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병원을 나왔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동안 빼먹었던 끼니를 다 채우겠다는 듯이 식욕이 솟구쳤다. 식당을 들어서며 아이들이 듣지 않게 귓속말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안 해도 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