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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2008년 5월] 문화 꽁트

콩트 릴레이


콩트 릴레이

 
오늘 저녁은 뭘 끓여먹을지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아내가 모처럼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기에, 낮에 아파트 앞마당에서 열린 알뜰장에서 우럭매운탕 거리를 꽤 비싼 돈을 주고 장만해뒀던 까닭이다.
 오후 6시 30분. 아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 30∼40분 전이다. 나는 얼른 컴퓨터 앞을 떠나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고 저녁상 차리기에 착수한다. 불과 30여 분 만에 밥 하고 탕 끓여서 한상 그득하니 차려 내려면 손이 여간 재발라선 안된다. 한꺼번에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그야말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다.
 우선 압력밥솥의 전원을 연결하고 압력취사 버튼을 눌렀다. 낮에 혼자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저녁쌀을 미리 씻어놓았던 것이다. 이제 매운탕을 끓일 차례. 조리법을 인터넷에서 출력해 뒀으니 그 순서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 불을 켠 다음에 국물용 멸치 일곱여덟 마리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얼른 무를 썰어 멸치와 함께 끓였다. 매운탕용 육수 준비는 그걸로 끝. 우럭은 생선장수가 이미 잘 다듬어 놓았기에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기만 해서 한쪽에 놔두고 얼른 두부를 썰고 야채를 준비했다. 보글보글 매운탕 끓는 소리가 얼큰한 냄새와 함께 식욕을 돋울 때 양송이를 프라이팬에 볶고, 쌈장에 찍어먹을 오이도 다듬었다. 이제 냉장고를 열어 김치랑 밑반찬들을 꺼내 상에 올려놓을 차례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집으로 출발한다는 전화인가 보다. 급히 달려가서 받았다.
 "여보, 난데 재현이 들어왔어?"
 "아니, 아직 안 왔네. 당신 언제 출발할 거야?"
 "참, 나 어떡하지? 갑자기 밤에 회의 일정이 잡혀서…."
 "괜찮아. 재현이랑 둘이 먹을 테니까. 일 잘 마치고 조심해서 들어와."
 매운탕 실력 과시 기회를 상실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아들과 겸상해서 먹으면 될 터이니 새삼 실망할 것은 없었다.
 식탁에 밑반찬들을 옹기종기 올려놓고 수저 두 쌍도 갖다 놓았다. 마침 압력밥솥에서 삐삐 소리가 났다. 밥이 다 됐다는 신호였다. 이제 아들 녀석만 들어오면 같이 밥을 먹을 참인데 이 녀석의 귀가시각이 시나브로 늦어졌다. 다시 컴퓨터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어느덧 저녁 8시가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 나, 찬양 연습하다가 인제 끝났거든. 선생님이 밥 먹고 가라시는데 그래도 돼?"
 그 순간 맥이 탁 풀리면서 식욕이 사라졌다. 강아지 `또또'가 밥 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기에 한 번 세게 걷어차 줬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내 대신 부엌살림을 도맡아 해온 2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보람도 많았지만 속이 쓰릴 때도 적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이 봉직하는 대학에서 핵심보직을 제의 받았을 때 맡을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 때 아내의 등을 떠민 건 나였다.
 "여보, 당신은 잘 할 거야. 집안일은 나한테 맡기고 한 번 해봐. 내가 도와줄게."
 "저녁에 내가 집에 없어도 재현이한테 괜찮을까?"
 "괜찮아. 내가 집에 있을 테니까."
 내 생각에 아내는 행정력이나 정치력이 남성 못지않게 뛰어나기 때문에 보직을 잘 수행할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여전사를 최전방 싸움터로 내보내고 후방에서 외조하듯 2년을 살았다. 실제로 아내는 맡은 일을 잘 해냈다. 운동권 총학생회의 등록금 동결투쟁을 이태 연속 잘 수습한 것이다.
 반면에 나는 영락없는 솥뚜껑 운전사가 되고 말았다. 날마다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고 태우고 오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학급 학부모회에도 내가 대신 나갔다. 아내는 갈수록 더 바빠졌다. 봄이면 어김없이 총장실이 점거되곤 하면서 아내의 새치는 나날이 늘어갔다. 나는 동창회를 비롯해서 내가 속한 모든 모임의 저녁자리에 나가지 못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한 마디 불평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이런 운명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는 `긍정의 힘'을 발휘하기로 작정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 학생들에게도 나 자신을 `남성 전업주부(house husband)'로 소개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남성 전업주부가 흔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색 희귀직종'에 속한다. 하지만 한겨레의 남자 기자 K모씨가 육아휴가를 신청한 데 이어 서울신문의 또 다른 남자 기자 K모씨도 육아휴가를 받은 데서도 보듯이 아빠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일이 이제 낯설지는 않게 됐다.
 요리하는 아빠가 가장 즐거울 때는 역시 아빠가 만든 음식을 처자가 맛있게 먹어줄 때이다. 다행히 나의 단골고객인 아들 녀석은 내가 만든 요리들을 잘 먹어줬다. 한 번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가족소개를 하는데 나와 아내를 양옆에 세워놓고 이렇게 소개해서 좌중에 폭소를 자아냈다.
 "제 어머니는요. ○○대학교 ○○처장을 맡으셨고요. 아버지는 작가신데 어머니보다 요리를 더 잘 해요."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남성주부로서 겪어온 온갖 설움이 한꺼번에 가시는 듯했다. 아들 녀석은 내가 해 주는 음식 가운데 특별히 떡국과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를 좋아했다. 연신 맛있다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녀석 덕분에 나도 덩달아 요리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내는 내가 만든 음식 맛있다는 말은 안 해도 나의 외조가 고마운 듯 해외나 제주도 출장을 다녀올 때면 넥타이나 스카프, 혁대 같은 선물을 잊지 않았다. 사실 아내는 그 전까지만 해도 아들 선물만 사왔지, 내 선물은 사온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아내가 내 선물을 꼬박꼬박 챙기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의 주부 노릇에 감동한 듯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나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이라고 했던가. 남성주부의 아픔이 없을 수 없었다. 아들 녀석은 평소에 내가 만든 음식을 잘 먹다가도 한 번씩 반찬 투정을 해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빠, 밥에 웬 놈의 콩이 이렇게 많아요?"
 "아빠, 아침에는 국물이 맑은 걸로 해서 국물만 줄 수 없어요?"
 아들 녀석의 음식 투정은 거침이 없다. 아빠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자기 느낌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다.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하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싫어도 좋은 척하던 내 세대와는 판이하다. 신세대 아이들의 그런 솔직함은 오히려 미덕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식탁에서의 불평으로 날아올 때 `주부 아빠'의 가슴은 멍들었다.
 아내는 한 술 더 떴다.
 "여보, 김치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 오죽하면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고 하겠어? 그런 김치를 가지고 찌개를 자꾸 끓이면 어떻게 해?"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울 때는 쿠킹 호일을 깔고 구워야지. 그냥 그렇게 막 구우면 프라이팬이 며칠이나 가겠어?"
 단 하나뿐인 남편보다 김치가, 프라이팬이 더 소중하단 말인가? 속에서 울컥 하고 치미는 게 있었지만 당초 `전적 외조'를 서약한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보직 임기를 마치고 총장과 마지막 회식을 하고 돌아온 날 밤이었다. 아들은 1박2일 수련회에 가고 집에는 나와 아내 둘밖에 없었다. 호젓한 시간을 낭만적 분위기로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전에도 몇 번 그러더니 이번에도 "사는 것이 힘들다"며 고양이 발톱을 드러냈다. 나의 경제적 무능을 할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성격이 태평이야? 앞으로 뭘 할 건지 얘기 좀 해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신제가도 못하는 주제에 치국평천하한다고 세 번이나 공직선거에 나섰다가 실패한 주제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아내가 잠든 뒤에도 나는 컴퓨터 앞에서 아침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대구 동화구연지도사협회 모임에 특강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외출을 감행했다. 새마을 열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열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고 내일 모레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인데 감정대로 행동할 나이는 분명히 아니었다. `하늘의 뜻'에 따라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전깃불은 꺼져있고 은은한 촛불이 새어 나왔다. 아내와 아들이 한꺼번에 달려 나와 반색하기에 무슨 영문인가 하고 보았더니 나의 주부생활 2년 종료를 기념하는 깜짝 파티가 준비돼 있었다. 두 사람이 내민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보, 당신 요리 솜씨는 정말 일품이에요. 내가 보직을 대과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당신 덕분이에요. 언제나 날 지지해 주는 당신을 사랑해요!!"
 "아빠, 난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언제나 제 곁에 함께 계셔 주세요. 아빠, 사랑해요 ^_^."
 아내는 교직원들이 자신에게 퇴임 선물로 준 최고급 몽블랑 펜도 내 양복 안주머니에 꽂아 줬다. 나는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힘껏 부둥켜안았다. 나의 주부생활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그 날 다시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