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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2008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故 宋鍾旭 前호남비료 상무




 "첫째야! 둘째야! 셋째야! 넷째야! 막내야! 얼굴 좀 보게 잠깐 나오너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 한 터라 宋鍾旭(경성법전38­42 前호남비료 상무․국민은행 초대 영업부장)동문은 기분이 좋다. 그는 자녀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홍조 띤 얼굴로 집에 들어서자 마자 한 명씩 이름을 부른다.
 곧이어 장녀 宋惠淳(가정교육62­66 美뉴욕 병원 영양사․Registered Dietician)동문, 장남 宋鐵淳(경제65­70 美뉴저지 Alxus Stakehouse 대표)동문, 차남 宋普淳(상학67­74 서울통신기술 사장)동문, 3남 宋慶淳(무역69­76 한국전문가컨설팅그룹(KECG) 대표․모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동문, 그리고 4남 宋雄淳(법학71­75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증권선물위원회 위원)동문이 약속이나 한 듯 순서대로 줄을 선다. 宋鍾旭동문의 "노래 한 곡 불러봐라!"는 말에 다섯 남매는 저마다의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날 밤도 宋동문 가족은 자그마한 추억을 만들고는 모두들 잠자리에 든다.
 손자 볼 나이가 된 다섯 남매는 10여 년 전 고인이 된 宋鍾旭동문을 떠올릴 때면 늘 자신들을 깨워 노래를 시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입을 모은다.
 宋동문 가족 중에는 다섯 자녀와 사위 趙錫萬(경제58­-64 재미 사업․前한국은행 근무)동문을 비롯해 4남 宋雄淳동문의 자녀인 손자 宋彰彬(경제96-­01 JP모건 과장)동문과 손녀 宋銀彬(심리99­-03 삼성증권 애널리스트 겸 수석연구원)동문이 모두 서울대인이다.
 졸업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장녀 宋惠淳동문은 뉴욕의 병원에서 40년 가까이 전문 영양사로서 지금까지 수만명의 환자들의 식생활을 책임져왔으며, 장남 宋鐵淳동문은 한국은행 재직 당시 습득한 경제마인드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프랜차이즈 외식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차남 宋普淳동문은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미주팀을 총괄하며 10년간 미주본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정보통신 네트워크 전문기업 대표를 맡고 있다.
 3남 宋慶淳동문 역시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던 중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15년간 美워싱턴DC 소재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며 부총재 자문역을 역임했으며, 홍콩의 노무라 프로젝트 금융사에서 운영담당 수석부사장을 거친 국제경영 및 금융 전문가이다. 지난 2002년 귀국해 국내외 민간․공기업, 로펌, 정부기관 등에 다양한 전문분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막내인 4남 宋雄淳동문은 국내 로펌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M&A 및 기업 구조조정, 장기금융시장 등을 다루고 있으며, 형제 가운데 유일한 법학도이자 한국에서 생활해온 국내파(?)이다. 宋雄淳동문을 제외한 형제들이 해외에서 생활한 관계로 그 자녀들이 외국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더라면 서울대 가족이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모교를 졸업한 두 손자 역시 30대 초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경제금융분야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공군시절 통역장교였던 宋彰彬동문은 JP모건에서 투자은행 담당업무를 맡고 있으며, 宋銀彬동문은 2007년 리서치 애널리스트 운송부문 `베스트 5'에 들 정도로 관련분야에서 인정받으며 각종 경제지 자문역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모교 국제대학원에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을 강의하고 있는 宋慶淳동문의 사무실 한 켠에는 宋鍾旭동문이 자녀들에게 써준 `訓'이라는 제목의 액자가 놓여있다.
 "세계은행 근무 당시 부친께서 저를 위해 써주신 당부의 말씀이에요. 아마 다른 형제들도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 손수 써주셨을 거예요. 어디를 가든 한국인임을 명심하고, 고국에 살아 있는 부모형제가 있음을 잊지 말고, 매사에 성실하라는 내용이죠."
 宋鍾旭동문은 법대 졸업 후 금융조합 지점장으로 시작해 오랫동안 금융분야에 몸담았으며, 이후 국영기업체에서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정신수양에 좋은 검도가 취미였던 宋동문은 늘 자녀들에게 `규율을 지키고 절도있게 행동할 것'을 당부했다고.
 "부친께서는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되 저희에게 많은 자율을 주셨어요. 각자의 색깔이 묻어나도록 서로 간섭하지 말고 무엇이든 자진해서, 자발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라고 하셨죠. `자기 인생은 자기의 판단으로 사는거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고싶은 것이 있으면 스스로 시도해보고 노력해서 성취하라'고 말이죠. 그렇다고 각자 생활한 건 아니었어요.
 어릴 적부터 형제들이 노래를 잘 불렀어요. 남자형제가 많으니까 늘 마당에서 레슬링으로 땀범벅이 되곤 했는데, 쉴 겸 피아노에 둘러앉아 신나게 합창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한 마음이 되곤 했어요."
 宋동문 가족은 매년 정기적으로 모친 尹再順여사와 큰형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가족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확고한 신념과 늘 변함이 없으신 모습을 보면서 우리 형제들도 각자의 개성대로 성실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네요. 조만간 3대가 함께 어머니댁에 놀러가서 사진도 찍고 오랜만에 노래 한번 불러야겠습니다." 〈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