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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2008년 4월] 기고 감상평

"대학교수는 중산계층 아닌 서민"


 李明博대통령이 당선돼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을 기다리며 국민들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지켜보며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너그럽게 지지했다.
 그런데 초대 내각 구성을 위한 장관 내정자들이 거론되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몽롱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내정자들의 행태는 국민의 지지를 외면하게 만든 크나큰 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의 재산이 평균 39억원이라니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미 지면이나 인터넷에서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 등의 야유성 유행어가 만연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주석은 달지 않기로 하자.
 다만 필자가 가슴 아픈 것은 "부부가 대학교수로 살아왔으니 이만한 재산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답변을 한 사람을 보면서 나도 교수생활을 했는데 왜 지지리도 못나게 재산을 축적하지 못했으며,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어떤 여성 환경운동가만큼 현명하지 못했으며 "암 선고를 받지 않아 고맙다고 오피스텔을 사주는 남편"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맞벌이 부부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지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이 다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남매 공부시키고 생활하면서 땅에 투자할 여윳돈이나 아파트 분양에 투자할 목돈을 만져 본 적이 없다. 
 3남매가 대학원까지 졸업해 제 앞가림을 모두 할 수 있게 만들고 내집 마련 위해 은행 융자 얻은 돈 갚아가며 살다 보니 빡빡한 살림에 어찌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중산층~상하층 국민들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극성스러운 아줌마 부대에 끼여 함께 어울렸더라면 `강금실'의 경지에 이르렀을지 모르겠으나 벼락부자들의 그 욕심 데글데글 붙은 얼굴을 부러워한 적이 없기에 살아오는 동안 가족간, 선후배간, 친구간에 사람이 치러야 할 도리와 인사를 가능한 한 잘 치르며 사람답게 살고자 했다.
 아이들이 다 큰 후에는 우리 집 가훈을 `웃으며 살자'라고 정하고 가능하면 웃고 살 수 있도록 가정분위기를 만들고 민주적 사고방식으로 서로 존중했다. 또 가족간에 많은 대화로 속에 앙금이 남는 일이 없도록 편안하게 지내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 없이 삶의 질을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공부 잘한 자식들이 40대 초․중반에 대학교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아온 가정이라는 평판에 수긍하며 나름대로 중․상층의 수준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李明博 내각 초대 장관 내정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열심히 살아온 중산층의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스스로의 행복지수에 크나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들 딸 네 식구가 모두 점심을 같이 하고 집에 모여 3남매간에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자식들의 허탈감은 더욱 심각했다. 나름대로 실력 있다고 인정받는 40대 초반의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였던 막내아들이 10년 교수생활을 했지만 아이들 교육비며 아파트 융자금 갚기가 힘들다며 개인병원으로 옮겨 간 심정을 토로하는 말인즉,
 "우리는 서민이야, 대학교수가 엘리트고 중․상 계층이라는 건 옛날 이야기지. 대학교수 월급 받아 아이들 공부시키고 아파트 분양가 내고 쩔쩔매는데 이게 서민이 아니고 뭐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돈 많은 저 애들 따라갈 수 없어. 공부 아무리 잘했으면 무엇해? 공부 못했어도 돈 많은 사람이 큰소리치고 한국사회를 이끄는데…. 한국에서 서민으로 살 바에 외국에 가서 서민으로 사는 게 편할지도 몰라"라며, 자조석인 말로 말문을 열자 큰아들과 딸이 합세해 소위 부모로부터 많은 돈을 상속받은 젊은이들의 행태를 낱낱이 들추며 그들로 하여금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돈의 위력(?)을 질타하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우리가 서민이구나! 엄마, 아빠가 바보처럼 성실해서 부동산 투기도 약삭빠르게 줄서기도 못해서 돈도 권력도 잡지 못했으니 아무리 최선의 노력으로 살았다 한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계층의 상향 이동은 못했을망정 중산층이었던 부모가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자식을 서민층으로 하향시키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사회구조인가?
 사회계층의 측정을 직업×7, 교육×4의 두 요인으로 분류하는 Hollingshead의 지론은 우리나라 현실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인가? 최고의 학벌과 전문직이 사회계층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없다면 우리 후대의 자손들은 어떤 가치관으로 삶의 지표를 마련할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