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호 2008년 4월] 기고 감상평
모교,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

며칠 전 지인과 모처럼 일상사를 추슬러 보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심경에 잡혔던 적이 있다. 그것은 서울대 출신이면서 매월 간행되는 서울대 동창회보에 관해 전혀 까맣게 잊고 지내왔다는 사실이었다.
부지런히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 사실 확인을 하고나서는 내친김에 회보를 받아보기 위해 총동창회 사무실로 연락을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간행돼 동문들에게 매월 보내지고 있었나 보다. 필자의 무관심의 소치로 27년 전의 주소가 그대로인 채 총동창회 홈페이지도 모르고 지내왔으니 회보가 반송됐던 것은 자명한 일.
성경에 처신과 경세의 일깨움으로 많이 예시되는 `탕자의 비유'가 있다. 아비의 재산에 대해 아들로서의 당연한 몫을 달라하여 집을 떠나서는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모든 것을 잃고 결국에는 아비 집에 돌아온 탕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는 모든 허물을 덮고 아들을 반갑게 맞아들여 잔치를 벌인다.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는 모교, 그래서 모교라고 하는 그 자체의 어의가 어버이 품인가 보다.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능력으로 당연한 인정을 받고 살아왔다지만 탕자가 가지고 떠난 아비의 유산처럼 이미 나도 서울대 출신이라는 유산을 모교로부터 받고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반갑게 응대하는 동창회 사무실 직원과 통화하며 27년만에 주소 변경을 하고 서둘러 동창회 회원 가입도 했다. 그러고 나니 큰 과오 하나를 바로잡은 듯 기분이 홀가분하다. 회비도 온라인으로 납부하고, 서울대 패스카드도 만들었다. 장학빌딩 건립에 작은 정성으로라도 참여하고자 한다. 선후배 동문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제 구실을 다해 보려 했다. 그런데 홈페이지의 동창회 현황을 보니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음에 또 한 번 놀라고, 그리고 한편으로 부끄럽다.
얼마 전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이 발표됐다. 우리 모교가 2025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초일류 대학으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대인으로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와 국제교류 등에 힘입어 세계 51위 대학으로 부상했고 그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멀지않은 미래에 세계의 대학은 초일류대학 10여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종속되거나 폐교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교 서울대가 향후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독립해 존속하지 못한다면,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도 세계화 속에서의 보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유지시키는 분명한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다. 철저하고 실현 가능한 계획, 정부의 제도적 지원, 대학 스스로의 자율성, 그리고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과 자구적 노력이 이뤄질 때 모교 서울대는 우리가 염원하는 세계 10위권의 초일류 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재정이다. 외국의 경우와 같이 정부로부터의 엄청난 재정 확충을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설상가상 서울대의 존재 이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 평준화 우민 지향적인 부류들에 의해 서울대 폐지 논의까지 나오는 현실은 실로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혜안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는 서울대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바로 동문이다. 외국의 유수한 대학들의 경우 그들은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동문으로부터 모금하고 그 기금을 운용해 각종 수익사업 등으로 기금을 효율적으로 키워나가며 모교를 지원․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지난 1월 서울대총동창회 2008년 신년교례회에서 林光洙회장님이 밝힌 바와 같이 장학빌딩 건립기금 3백억원 모금이 무난히 이뤄졌지만 이에 참여한 동문이 1월 기준으로 2천7백여 명에 불과하다고 아쉬움을 피력한 일이다. 또 동창회보를 매월 발행하는데 그 부수가 미주 포함 10만여 부 밖에 안 되는 것이 우리 동창회의 현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30만 동문의 구성원 중 불과 1백분의 1도 채 안되는 약 1%만이 관심을 갖고 장학빌딩 건립사업에 참여한 것이고, 늘 동창회와 연결돼 있는 동문의 숫자는 동창회보 발송 기준 10만여 명이라는 이야기다. 30만 동문 대비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은 너무도 모교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동문의 관심과 참여가 너무 빈약하다. 나부터 할 말은 없지만 바로 그것이다. 외국의 일류대학 동문의 활동에 비교돼 서울대 동문의 모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우리 동문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선결 과제인 것이다.
얼마 전 L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자신의 모교 K대학 동문회에 참석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여기 모인 여러분의 지원 덕입니다"라고 연설하는 것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 공인으로서 특정 집단에 가서 여러분 공이라 칭송하는 것은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 그러한 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그랬을까? 나름의 계산이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러한 행보를 통해 K대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더 큰 동문세력으로 연합해 모교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우리에게는 서울대인이라는 자긍심이 있다. 능력도 탁월하다. 문제는 연합하는 힘이다. 우리에게 연합하고자 하는 의지와 모교의 발전에 대한 관심이 고양돼 30만 동문의 힘이 뭉쳐지면 그 폭발적인 힘은 세계 무대에서 초일류 대학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드높이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최근 모교 발전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 간 것으로 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행보에, 또한 가시적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학교 당국과 총동창회가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고 모교 발전을 위해서 고민해야 한다. 우리 총동창회도 30만 동문이 하나돼 협력하기 위해 동문들의 잠자고 있는 모교 사랑을 일깨우고 적극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학술․연구․장학사업 지원과 수익사업의 모델을 부단히 개발하고 기금 확충을 위한 백방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모교의 미래인 젊은 후배들의 벤처사업에도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고 동창회와 모교를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동문들이 모교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이제는 배가시켜 돌려줘야 한다. 세계 속에 우뚝 선 서울대를 위하여, 그리고 선진 복지 대한민국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