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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2008년 4월] 기고 감상평

꽃을 보려거든, 술을 마시려거든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는 것, 뜻 깊은 箴言이나 죽을 때까지 외워두고 싶은 名詩, 명연설, 명문들은 언제나 나의 인생의 길잡이가 되고, 메말라가는 나의 感性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건만 꽃에는 움이 트려 한다. 다투어 먼저 피려는 자연의 지혜일까. 화분을 나르는 벌레들도 슬슬 움직거리는가보다. 화분이 날아가면 교배의 확률도 높아지리라. 하루빨리 날아오라고 DNA는 재촉하는 것일까. 몇 천, 몇 만, 몇 억년의 생명을 땅속에 묻어 왔던 컴컴한 정적의 세계가 무너지고 주변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봄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理致, 자연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일과에 따라 봄기운을 마시면서 산책길에 나섰다. 집을 나설 때까지 읽고 있던 菜根譚의 구절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걸어간다. 明(1368~1644)나라 시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 전에 쓰인 책이다. 쓴 이는 洪自誠이며 菜根이란 채소의 뿌리, 즉 변변치 못한 음식을 말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고난을 이겨 낸 사람만이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이 책은 모두 다 합쳐서 3백60개의 짧은 글로 된 잠언집이지만 유교, 불교, 도교를 융합해 그 토대 위에서 인생을 말하고 處世를 말하고 있는데 특색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말도 있다.
 ○天地는 영원하지만 인생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도 백년, 잠깐 사이에 지나간다. 다행히 이 세상에 태어날 바에는 즐겁게 살아갈 것이지만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두려움도 가져야 한다.
 ○인정은 변하기 쉽고, 인생살이는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험난한 길목에서는 한걸음 물러나 길을 비켜서고, 편하게 가는 길에서도 3할은 양보하는 마음씨가 필요하다.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은 인품이 고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은 더 고상한 사람이다.
 ○작은 過失은 모르는 척 하고, 감춰진 것은 드러내지 말고, 옛 상처는 잊고 지내라. - 즉 관용을 타이르는 말이다.
 ○더럽혀진 땅에서는 작물이 자라지만 맑은 물에서는 고기도 잘 살지 못한다. - 사람의 그릇을 말함이다.
 채근담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꽃을 보려거든 절반 피어났을 때가 좋고, 술을 마시거든 거나하게 취기가 감돌 정도에서 최고의 흥취를 맛볼 수가 있다.' 균형감각과 中庸을 중히 여기는 태도에는 통달한 달인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