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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2008년 4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李承奎 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아름답다. 서울대인 중에 그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李承奎(의학67­-73)교수야말로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서울대 의대를 나왔지만 서울대 병원 스태프로 남지 못한 좌절을 겪었고 그 좌절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한 李교수는 "서울대인들은 통상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도전정신이 약하고 쉽게 꺾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李교수는 "다른 병원이나 변방에서 고립돼 본 경험 덕분에 머리를 숙일 줄 알게 됐고 이것이 새로운 분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원동력이 됐다"면서 "일본 도쿄의대의 경우 자기대학 출신을 바로 뽑지 않고 반드시 다른 대학에 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는데 서울대도 그런 방식으로 스태프들을 뽑고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딸이 최근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 의사의 길을 가게 돼 기쁘다는 李교수는 "대학갈 때만 해도 의사될 생각이 없다고 하더니 막상 4년 동안 대학생활 하고 나더니 의과대학원을 택했다"면서 "의사가 되라 마라 한 적은 없었지만 의사가 되겠다고 하니 솔직히 기분이 좋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최근 의과대학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과도하게 몰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李교수는 "의과대학은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성실이 최고의 덕목이 되는 분야"라면서 "머리가 좋은 사람은 과학계로 가야하는데 다들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면허가 있는 직업을 선호하다보니 의대로 쏠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내년이면 환갑이지만 아직도 8~10시간 수술은 거뜬히 할 만큼 체력은 40대 이상이다. 李교수는 "외과의사는 머리에 든 게 아무리 많아도 다리에 힘 빠지면 끝장"이라면서 "일주일에 3~4번 이상 조깅을 해서 체력을 유지하는 게 밥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투자"라고 말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던 지난 3월 17일 서울아산병원 10층 교수실에서 李교수와 만났다.

 -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화, 수, 목, 금 수술이 잡혀 있어요. 하루에 한 번씩은 하는 셈이죠."

 - 수술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짧게 걸리면 4시간, 복잡한 이식이나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 같은 경우는 20시간도 걸려요. 외과의사들한테는 수술이 마약 같아요. 며칠 수술 없으면 허전하고 근질근질해요."

 - 최근 방영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중에 `그레이스 아나토미'라고 아시죠? 그거 보면서 외과의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과 실제와는 어떤가요.

 "비슷해요. 외과가 제일 드라마틱하고, 승부가 가장 확실하거든요. 살리냐 못 살리냐. 그런 면에서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데, 장래성이 별로 안 좋아요. 우리나라는 의료수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져 있잖아요. 예를 들어 맹장수술할 때 20년 경험의 대학병원 교수가 하나, 전문의 따고 1년 된 신참 의사가 하나 쥐꼬리만한 특진료를 빼고는 수가가 똑같아요. 그리고 외과수술 수가가 안과나 이비인후과보다도 낮게 돼 있어요. 그러니 누가 외과 전공을 하려고 하겠어요.
 외과의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병원이나 최소한 5백 병상 이상 되는 준 종합병원에 스태프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라는 게 굉장히 한정돼 있죠. 그래서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실제 외과의사 생활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병원에서는 드라마틱하고 정말 재미있어요."

 - 요즘 의대생들이 응급상황 없고 돈 많이 버는 분야만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사회가 그런 식으로 가니까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죠. 젊은 친구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데, 지금 제일 구인난이 심한 곳이 흉부외과입니다. 흉부외과는 오로지 대학병원에만 자리가 있으니까 다들 기피하죠. 마취과도 준 종합병원 이상 아니면 힘들어요. 산부인과는 의료사고가 많고 요즘 아이를 많이 낳지 않다보니 기피대상이 됐죠.
 레지던트 4년이 끝나면 펠로우라고 해서 전임의 트레이닝 제도가 있어요. 서울아산병원 같으면 간담도 및 간이식 전문, 위장 전문 등으로 갈라지는데 간이식 간담도 부분은 대개 들어오면 첫 1년은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 집에 갈 수 있어요. 나머지는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거죠. 펠로우 2년 차가 되면 일주일에 하루 반은 집에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제일 힘든데 이쪽으로 오는 애들은 분명한 뭔가가 있는 거죠."

 - 요즘 의대에 여학생들이 많잖아요. 외과의 경우 체력적으로 여자들이 불리할 것 같은데요.

 "요즘 의과대학의 50%가 여학생입니다. 지금 저희 병원만 하더라도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일반외과에 여선생이 없는 곳이 없어요. 대개 30% 정도가 여자에요. 잘 하고 체력도 괜찮아요.
 그런데 문제는 남자동료들이 싫어해요. 결혼해서 임신하면 출산휴가가 있잖아요. 그때 쉬게 되면 남자동료들이 부담이 커지고 일이 많아지니까요. 여의사가 출산만 안 하면 남자와 거의 동등하게 하는데 출산 안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고. 우리 간이식 쪽은 아직 여의사가 없어요."

 - 교수님이 외과를 선택하시게 된 동기는 뭔가요. 당시에는 성적도 상위권이고 존경받는 과였지요.

 "저희 때는 외과가 인기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대형병원이 많지 않아서 개업해도 돈도 잘 벌고 그랬거든요. 제가 2학년 말에 실습을 나왔는데, 지금은 레지던트 파워가 많이 줄었지만 저희 때는 레지던트 파워가 대단했어요. 레지던트 4년 차를 치프(chief)라고 하는데 치프가 밤에는 병동장 다음이었어요. 4년 차가 밑에 졸개들 1, 2, 3년 차를 끌고 회진을 하는데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흉부외과와 일반외과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흉부외과는 멤버가 작았고 일반외과는 15명 정도 됐어요. 그땐 끌고 다니는 애들이 많을 수록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일반외과를 택했죠."

 - 일반외과를 선택해서 다시 간담도로 전공을 바꾼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대장항문 외과를 전공했어요. 서울대 교수, 고대 구로병원장, 아산병원장을 역임하신 閔丙哲(의학48-­52)선생님의 개인병원(신영병원)에 5년 정도 있었는데 원래 그 병원이 간담도 전문병원이었거든요. 86년도에 미국 장기 연수를 떠나게 됐는데, 閔丙哲선생님이 대장항문 해서 뭐 하냐, 간담도로 전공을 바꾸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고대 구로병원에 있다보니 서울대가 마이너리티 그룹에 속하잖아요. 마이너리티 그룹인데 거기서 대장항문처럼 쉬운 수술을 해서는 살아 남기가 힘들겠더라구요.
 그때 마침 외국서 나오는 대학 저널을 봤는데 동경대 의대 주임교수가 간 자르는 논문을 썼는데 제가 그걸 보고 너무 반했어요. 간도 이렇게 자를 수 있으면 한 번 해 볼 만 하겠다 싶더라고요. 미국 장기 연수를 간담도 외과로 바꿔 신청하고 연수가 끝날 때쯤 일본 외과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요. 당신에게 가서 배우고 싶은데, 내가 돈이 없으니 숙식만 해결해 달라 했더니 허락하는 답신이 왔어요. 1년 동안 미국 가서 간담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서 두 달간 그 양반 수술을 보고 배웠지요. 그렇게 해서 간담도로 전공이 바뀐 거예요."

 - 처음 간을 잘라 봤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첫사랑, 첫 데이트가 기억에 남는 것처럼 첫 수술은 항상 인상에 남죠. 83년인가, 큰 혹과 간경화가 있는 간을 처음 잘랐는데 지금은 3시간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수술을 그때는 14시간 걸렸어요. 수술 앞두고 3~4일은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우리 병원에서는 처음 간이식을 92년 8월에 했는데 그때는 간을 적출해서 운송하고 수술하기까지 30시간, 수술 자체만 20시간 걸렸죠. 94년 12월에 소아 생체이식을 하고 어른 생체 간이식을 97년 2월, 2 대 1 생체 간이식은 2000년 3월에 했어요. 남들은 세계 최초라고 하니까 힘들지 않았느냐 하는데, 저는 성공할거라는 확신을 갖고 했으니깐 두렵지는 않더라구요.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93년 간암, 간경화 환자 수술이죠. 98년 8월 21일에 수술을 하고 일주일 뒤인 27일에 또 했어요. 세 번째 수술은 10월 9일에 했죠. 첫 번째 환자가 수술하고 두 달만에 돌아가셨는데 만약 두 번째 환자가 없었다면 첫 번째 환자가 죽는 걸 봐야했겠죠. 그랬다면 도전을 못했을 거예요. 운이 좋았죠. 16년간 수술을 1천8백건 정도 한 것 같아요."


 - 처음이나 지금이나 환자가 잘못됐을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집사람도 그렇고 간호사도 그렇고 제 인상을 척 보면 `신경질이 극도로 나 있구나' 알아차려요. 수술이 잘못됐을 때는 항상 그렇대요. 이식이 제일 어려운 외과 학문이라 생각드는 게, 일반 수술은 환자 운명의 95%를 수술이 결정해요. 수술 후 관리는 5% 미만이에요. 간이식은 달라요. 수술하기 전부터 간이식 환자들은 체력이 급도로 떨어진 환자들이 대부분이죠.
 또 일반 환자와 다른 게 이식 후에 면역기능을 마비시켜야 해요. 거부반응을 막아주기 위해 면역기능을 마비시켜야 하는데 환자가 체력이 떨어지다 보면 세균 감염이 기승을 부리거든요. 그래서 수술 후에 엄청 신경을 써야 해요. 간담도 외과 펠로우들이 일주일에 반나절 밖에 집에 못 가는 이유가 수술이 많은 것도 있지만 환자를 계속 지켜봐야 되거든요. 결국은 아무리 잘해도 사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식 받고 사망하는 확률이 4%쯤 돼요."

 - 초기에는 몇 %였어요.

 "제가 92년에 시작했는데, 98년까지 30% 정도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다가 98년 중반에 생체 간이식에서 변형우엽절제술을 개발했는데, 기증자에서 떼어낸 부분 간의 기능을 1백% 자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수술법이에요. 세계 최초로 저희가 했는데 그 이후 99년부터 성공률이 92%로 올라갔어요. 최근 3~4년 전부터는 95~96% 정도가 걸어서 퇴원을 하세요."

 - 세계 최초로 변형우엽절제 생체이식도 했는데 외국 병원, 특히 존스홉킨스나 M D앤더슨 등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병원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보세요.

 "제가 하는 간담도 간이식 분야만 말하면 존스홉킨스와 MD앤더슨은 어린애나 다름없죠. 우리나라는 인구 1백만명당 3명 정도가 뇌사 기증자이고, 미국이 뇌사 기증자가 인구 1백만명당 27명 정도예요. 우리가 생체 간이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미국도 생체 간이식에 박차를 가하고 있긴 한데, 간 자르는 기술이 발달이 안됐어요. 
 생체 간이식을 하려면 간암수술을 많이 해 봐야 돼요. 미국은 간암수술이 대장암이 간에 전이된 전이성 간암수술이에요. 전이성 간암은 정상 간에 생기기 때문에 수술이 굉장히 쉬워요. 말 그대로 파내기만 하면 되죠. 반면 우리 간암은 모두 경화가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수술하면 안되고, 해부학 구조에 기초해서 계통적으로 해야 돼요. 암튼 그래서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떨어져요.
 MD앤더슨은 생체이식에 손도 못 대고 있어요. 작년 1월 MD앤더슨에서 간암 국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가서 보고 비교해 보니 우리가 하늘이면 그쪽은 땅이에요. 저희가 2005년까지는 생체이식 건수가 일본보다 적었는데 2006년부터 생체 간이식을 일본보다 더 많이 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거죠."

 - 교수님께서 결국 이 모든 기록을 직접 세우신 거잖아요.

 "쑥스럽긴 하지만 제가 도전을 많이 했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요즘 의료사고가 굉장히 많이 나잖아요. 젊은 의사들이 도전하기를 굉장히 겁을 내거든요. 사실 젊어서 계속 도전을 해야 돼요. 젊었을 때는 어려운 케이스에 계속 도전을 해 봐야지 자기가 그 케이스를 극복할 수 있거든요."

 - 교수님께서는 서울대 병원에 왜 안 남으셨어요.

 "안 남은 게 아니라 못 남았죠.(웃음) 은사이신 閔丙哲선생님이 저를 꼬실 때 신영병원이 문 닫을 때까지만 같이 일해주면 서울대 병원 스태프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때 閔교수님 파워가 막강했거든요. 그런데 87년 7월에 신영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았어요. 閔선생님이 고대 구로병원장으로 가시면서 저더러 같이 가자는 거예요. 저를 서울대로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배신감이 컸죠.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것 같아요. 제가 서울대 병원에 있었으면 도전을 안 했을 거예요. 고대에 있으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많이 배웠고 제가 서울아산병원 와서도 서울대를 이기려고 2~3배 노력을 더 했죠. 어떻게 보면 제가 이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저도 많이 발전했고, 우리나라 간담도 외과도 많이 발전한 게 아닌가 싶어요."

 - 잠시 집안 얘기를 해볼까요. 어렸을 때 일본에 가서 수술을 받으실 정도면 집안이 부유했나봐요.

형제 중 셋째였는데 일제시대에 상고를 나오셨어요. 11형제 중에서 아버지만 성공을 했죠. 그래서 아버지가 형제들 공부를 다 시켰어요. 하지만 정작 제가 아팠을 때는 아버님이 망했을 때였어요. 다행히 작은아버님이 저희 아버님 덕분에 일본으로 가서 부동산 하고 빠찡코 해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버셨어요. 작은아버지가 형님 은혜를 갚겠다고 하셔서 모든 수술비와 체류비를 대셨어죠."

 - 살아오신 얘기를 들으면 상당히 도전적이고 매사 열심이신 것 같아요. 혹시 지칠 때는 무엇으로 위안을 삼으세요.

 "분해서 다시 해보죠. 꼭 될 것 같은데 안 되니깐. 저는 술을 잘 못 먹거든요. 운동하고, 땀을 흘리는 조깅이 전부에요. 땀을 쭉 흘리고 자고 나면 풀리죠. 옛날엔 교회에 안 나가다 요즘 교회간 지 10여 년 되니깐 그것도 도움이 되고.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 환자가 돌아가시는거나 사시는거나 모든 면에서 우리가 모르는 큰 힘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요즘에는 의학이 발달해서 첨단장비 경쟁을 많이 하잖아요.

 "요즘은 청진기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어요. 외과, 내과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브레인이 지배하지 기계가 지배할 수는 없어요. 기계는 어느 병원이나 돈만 있으면 들여놓는 거고. 앞서 나가려면 결국은 자신의 머리, 의학적인 지식, 열정 등으로 하는 거죠."

 - 교수님 정도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으시면, 후계자를 많이 키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저희 팀이 저를 포함해서 8명인데 저희 병원에서는 환자 3명에게 생체 간이식수술을 동시에 할 수가 있어요. 전 세계에 그런 병원은 아무데도 없어요. 그만큼 후배들을 업그레이드 시켜놨어요. 이제는 `李承奎팀'이라고 불리죠. 전국에서 생체 간이식을 하는 지방병원 의사들 중 80%가 제 제자들이에요. 제자들은 많이 잘 키웠다고 자부합니다."

 - 의사사회는 규율이 엄청 세다고 하잖아요. 교수님만의 트레이닝법이 있으세요.

 "야단을 많이 치는 스타일이에요. 수술할 때 특히. 요즘에는 안 그럴려고 자제하는데, 소리를 하도 많이 질러서 간호사들이 수술 끝나고 나면 귀가 멍멍하다고 농담해요.
 야단을 치면서 그 친구들에게 일기를 적으라고 해요. 왜 야단을 맞았나, 야단맞은 이유가 뭔가. 제가 연수를 다녀오면 매일 밤 집에 와서 일기를 썼거든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그때 일기에 적어뒀던 것을 보는 게 교과서보다 훨씬 더 도움이 돼요. `아! 의사들이 이렇게 했구나, 뭐가 문제였구나.'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나중에 비슷한 수술을 할 때 일기를 펼쳐보는 게 큰 자산이 될 거예요. 그런데 내말 듣고 일기 쓰는 애들은 절반도 안될 거예요."

 - 앞으로 10년은 충분히 더 현역으로 일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10년 정도 더 생각하고 있긴 한데요. 부모님이 70세에 돌아가셨어요. 내가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인데, 대개 유전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70 정도를 인생의 골로 잡고 있어요. 그때 가서 더 살게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암튼 죽는 날까지는 뭔가 규칙적인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서울대 나온 분들이 대체로 좌절의 경험이 없잖아요. 교만하기도 쉽고. 동문 후배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굉장히 중요한 지적인데, 저희 병원 스태프 90%가 서울대 출신이거든요. 서울대에서 펠로우 끝내고 다이렉트로 온 스태프가 있고 서울대에서 레지던트 끝내고 다른 병원 가서, 저처럼 변방에서 쓴맛도 보고 왕따도 당해 본 사람들도 있어요. 고생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일 줄 알아요. 반면에 서울대에서 바로 온 젊은이들은 도전정신도 약하고 한 번 꺽이면 그대로 좌절하는 경우도 많아요. 요즘은 서울대 병원에서 30%는 타교 출신을 뽑는다면서요?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 전국의 모든 의대 밑에 서울공대가 있다고 할 만큼 우수한 아이들이 지방 의대라도 부득불 가잖아요. 현실적으로 의대간의 격차가 있나요.

 "굉장히 크죠. 왜냐하면 큰물에서 놀아야 많이 배우는데 일단 배우는 것이 한정이 돼 있어요. 병원규모가 한정돼 있으니까 다루는 환자수도 제한되고 경험하는 것도 적고. 한마디로 천재를 바보로 만드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울산의대 아이들은 복이 터졌죠. 졸업생이 30명밖에 안되는데 서울아산병원 인턴은 1백20명 뽑는단 말이에요. 인턴되고 스태프되는 게 거의 자동으로 되니까 울산의대 아이들이 조금 승부욕이 없는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간을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한 비결이 뭔지 말씀해 주세요.

 "정상적인 생활만 하면 돼요. 폭음 안 하는 것, 몸을 혹사하지 않는 것, 두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정상 리듬대로 하면 병은 안 생겨요. 암은 유전적인 게 참 많아요. 부모, 형제에 암이 있으면 적게는 5배, 많게는 20배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런 분들은 40대에 들어서면 정기검진을 무조건 매년 해야 돼요. 조기에 발견하면 70~80% 완치가 가능하죠."

〈사진 = 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