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호 2008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서울대의 봄은 오는가

春來不似春. 하도 진부한 표현이라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모두 이 말을 즐겨 쓰는 것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봄다운 봄이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현실을 너무나도 적확하게 그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는 그래도 5년마다 봄이 오건만 서울대에는 진정 봄이 온 기억이 없다.
눈 들어 관악을 보라 했지만 눈을 들기는커녕 언제나 눈을 내리 깔고 살아온 인고의 세월이 서울대의 역사였다. 국민의 정부 때도 그랬지만 참여정부 시절 서울대는 늘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런 날만 계속됐다. 작두 위를 걷는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폐교론이 시대의 당위인양 위세를 떨치니 숨을 쉬는 것조차 고마워해야 했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가 과장법만은 아니었다. 다만 그 어둠의 시절에도 서울대가 한복판에 있었던 것은 참 신기했다.
李明博정권이 출범하고 처음 맞는 봄이다. 올해 봄은 서울대와 서울대인에게 어떤 봄일까를 물어본다. 일전에 모교 출신의 한 인사를 만났더니 "세상은 별반 변한 게 없지만 그래도 코 평수는 넓어졌다"고 말해 서로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휴 하고 막힌 숨을 내뱉는다는 것만으로도 서울대인이 죄수였던 시절은 일단 지나갔나 보다 하고 안도는 한다. 그렇다면 서울대에 봄은 왔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들 봄이 왔다고 야단들인데 왜 서울대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까.
겨울 지나면 봄이 오듯 봄이 가면 겨울 오는 것도 자연의 순환법칙이다. 봄을 누려 보지도 못하고 겨울의 한풍을 맞게 되는 비운의 서울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봄을 자연의 은총이나 신의 섭리에 맡겨 뒀다간 겨울은 봄의 뒷덜미를 움켜 채가기 마련이다.
서울대와 서울대인의 봄은 서울대와 서울대인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서울대는 봄의 창조주가 돼야 한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대가 곤경에 처할 때 외면하지 않으면 된다. 눈총까지 받아 가며 도와주라는 뜻이 아니다. 서울대인의 단점은 단합력의 부족이라고 했을 때 비서울대인 한 분이 "아니다. 그게 진정 서울대의 장점이다"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머리 좋은 서울대인이 깡패처럼 패거리로 달려든다면 여타 대학은 설 자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저 서울대가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 서울대가 누명을 썼을 때, 서울대가 외로울 때 변호하고 따뜻한 눈길 한번 주면 된다. 모른 체하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