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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2008년 3월] 문화 꽁트

타이밍



 우리들의 기억창고에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들이 들어있다. 이따금씩 그 창고는 소리 없이 열려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는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기억창고가 열리는 타이밍은 신의 영역으로, 신이 인간의 운명에 관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대천을 지나 진도로 향하던 밤길이었다. 빗살이 내리꽂히는 모습이 헤드라이트에 선명했다. 참 황당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 엄두가 안 났다. 진도에서의 퍼포먼스가 끝나면, 서울에서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었다. 이럴 수가! 별 일 다 보겠다. 그 안전장치 하나가 사람을 고속도로 상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가둬버린 꼴이었다. 그야말로 외제차 타는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서울의 아들도 안달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자동차회사 측 말대로라면 이 자리에다 차를 보름 동안은 세워놓아야 할 판이었다.
 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CD를 제작하고, 그 수필집의 표지그림을 직접 하나하나 그려서 책과 함께 기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 중이었다. 서울지역에서 만났던 시각장애인들은 자기들에게까지 배려를 해서 책을 낸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보일 수 없는 눈빛 대신 표정으로.
 밤이 깊어지면서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고 바람도 기세를 올렸다. 빗발이 내리치는 윈도에는 진도에서의 일정이 하나하나 스케치되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던 윈도 브러시가 순간적으로 비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흔들렸다. 붉은색 스포츠카가 내 차를 부딪칠 것처럼 스치며 차선을 빼앗아 달아나는 소리였다. 그런 차 가지고 왜 그리 느리냐는 시위 같았다.
 그 때 운전대 앞쪽의 화면에 경고등이 번쩍거리며 타이어의 펑크를 알리는 그래픽이 떴다. 곧이어 즉시 차를 멈추라는 스톱 사인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으면 당연히 차를 세워야 했다. 타이어도 고가품이었을 뿐 아니라 자칫 위험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도로 상이고, 비까지 퍼부어대는 야간주행이었다. 폭이 넉넉지도 않은 갓길에 차를 세운다는 것은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우선 차의 속도를 1백킬로 이하로 낮추고 서천휴게소까지는 이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차의 속력을 늦춰서인지 휴게소가 까마득히 멀었다. 대시보드에서는 스톱 사인이 계속돼 불안을 부채질했다. 20여 킬로를 초조함 속에서 달려 서천휴게소에 차를 들이밀었으나 정비소가 없었다.
 주유소 옆에 차를 세운 뒤 보험회사에 연락부터 하고 얼른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살폈다. 조수석 쪽 타이어 휠이 이미 땅에 고개를 박고 내려앉아 있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 지나서야 긴급출동차가 도착했다. 마침 저녁식사 때가 됐으니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식사를 한 후 다시 출발할 요량이었다.
 보험회사 연락을 받고 온 정비사가 바퀴를 빼내기 위해 휠을 물고 있는 나사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휠에 붙어있는 나사 중에서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리 발을 묶어버린 이 차는 불란서에서 온 놈이었다. 연비가 좋은 디젤 엔진이라서 주로 장거리를 뛰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아주 경제적이라는 아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차에는 타이어 잠금장치가 돼있었고 그것은 해당 차에만 맞는, 한 대에 하나밖에 없는, 비상열쇠 같은 것이 유난을 떨고 있었다. 타이어 휠에는 다섯 개의 나사가 조여져 있는데 4개는 풀 수 있으나 나머지 한 개는 출고당시에 제조회사에서 준 열쇠로만 풀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장치에 대한 정보를 까맣게 잊고 운전을 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는 판매회사 담당자의 말이 실감나질 않았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묘한, 손가락 만한 쇠뭉치를 차 안에서 찾아내야만 했다.
 차에는 봉사 퍼포먼스에 쓸 책과 며칠간 타지에서 유숙할 짐으로 가득했다. 빗살은 더욱 거셌다.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일을 위하여 보험사에서 온 정비사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그것을 찾느라 차를 온통 헤집어 놓았고, 짐들은 빗물에 노출돼야 했다. 그러나 손가락 비슷한 어떤 모양의 쇠뭉치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아들과는 수시로 손 전화로 대책을 의논했다. 자동차회사에서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불란서에서 그 키를 다시 보내줄 때까지는 차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보름은 걸린다면서.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다니! 외제차를 고집했던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차의 휠에서 그 나사부분을 파손시키는 방법이 차선책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휠 역시 비싸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설 정비소가 없다고 했다. 배까지 고파왔다. 두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지치게 한 것이다.
 보험회사 연락을 받고 득달같이 쫓아온 레커차 운전자는 함께 두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고민을 도왔다. 만약에 서울까지 견인할 경우에 50만원에 육박하는 견인료가 생길 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자 집사람은 우선 밥이나 먹자고 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레커차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판매사 담당자는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화기 저 편에서 내가 쉬어야할 한숨만 계속 내리쉴 따름이었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뾰족한 답은 없었다.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그 공황상태를 비집고 갑자기 머릿속에서 묘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으응? 그것은 은빛이 나는 둥그런 쇠뭉치였다. 언제였던가, 그것을 보았던 기억이 환영처럼 머리를 스쳤다. 혹시 그것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황당한 상황에서 내가 환상을 보는 것일까….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말이야…, 얼마 전에 조수석 바닥에서 이상한 쇠뭉치를 보았던 것 같아, 정비소 사람들이 또 연장을 챙기지 못하고 차에 놔둔 것으로 생각되서 버리려다가 무심코 내 서재 책꽂이에 올려놓은 것 같단 말이야. 그게 맞는지, 아니면 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헛것을 생각해 내는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런 일 있었던 것 같으니 헛일 삼아 사무실에 한 번 가 볼래?"
 "그럼 가장 최근에 타이어를 뺐던 것이 푸조 서비스센터가 맞군요? 그럼 그게 맞을지도 몰라요. 얼른 가 볼게요."
 퇴근해 집에서 쉬다가 내 소식에 안절부절 못하던 아들은 황급히 서재가 있는 사무실로 갔고,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전화를 해 왔다.
 "있어요. 그런 비슷한 것이."
 "그래? 어떻게 생겼어? 담당과 통화할 테니 생긴 모양 좀 말해."
 "둥그렇게 생긴 은색 쇠뭉치에요."
 "둥그레? 알았어."
 그들은 엄지손가락 만하다고 했었기 때문에 생김새로 보아서는 아닌 것 같았으나 담당자에게 전화해 그 꼴새를 이야기하니 천만 뜻밖에도 그게 맞을 것 같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영문과 아라비아 숫자가 써있냐고 확인해왔다. 그랬다! 갑자기 멍해졌다. 문제가 해결됐는데 오히려 눈앞에서 절벽을 만난 느낌은 웬일일까?
 "어떻게 할래?"
 "제가 서천까지 내려가야죠. 그냥 그대로 계세요. 시장하실 텐데 식사나 하시면서…."
 "알았다. 빗길이니 너무 서둘지 말아라."
 다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정비차를 보내달라고.
 아들은 빗길을 뚫고 믿기지 않는 빠른 시간에 들이닥쳤다. 문제의 쇠뭉치를 내 손에 쥐어줬다. 바로 그거였다. 잠시 뒤 정비차가 와서 타이어는 쉬 갈아 끼웠다. 너무 허망하게 모든 일이 마무리됐다. 이런 일은 좀 더 복잡하게 풀려야 제 맛이었다. 그래도 그 볼트 하나 때문에 4시간을 서천휴게소에서 보내야 했다. 외제차를 권한 아들을 원망도 했었다.
 아들을 올려 보내고 목적지를 향해 밟는 가속 페달이 한결 가벼웠다. 꿈같던 일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말 꿈결처럼 지나갔다. 다만 4시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었을 뿐이다. 그러나 빗속을 뚫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저녁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4시간 전, 서해안 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해 다섯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대형사고 뉴스때문이었다.
 나는 군산휴게소를 막 지난 고속도로 상에서 아직 치워지지 않은 붉은색 스포츠카의 잔해를 보면서 넌더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