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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2008년 3월] 기고 감상평

국제화는 외국인 동문 찾기부터



 최근 들어 서울대는 국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그 목적 중의 하나는 대학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 있을 것이나 그 특성상 효과는 단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이전에 졸업한 외국인 동문을 찾아 네트워크를 연결한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목표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공대 토목공학과의 동문명부를 보면 1986년부터 1999년까지 낯선 이름들이 보이지만 그들의 소속이나 세부사항은 빈칸으로 남아 있다. 같이 배우던 학우들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잊혀진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들은 1983년부터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파견돼 서울대에 학사 편입해 졸업한 동문들로 1986년부터 매년 1~9명의 학생이 13년간 24명이 졸업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 코스와 2년간의 전공과정을 거쳤다.
 이들의 연령은 현재 40~50대이며 말레이시아에서는 관계, 학계, 재계에서 가장 활발한 중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서울대는 물론 국가간의 이익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착안했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舊토목공학과)의 SIR사업단에서는 Global Human Network 프로그램의 하나로 모교 출신 외국인 졸업생을 찾아내 가능한 인적자원을 구축해 활용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정했다.
 그러나 어떻게 연결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현지인 친구에게 부탁해 5번의 릴레이를 거쳐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사람은 쿠알라룸푸르 시청의 교통국에 근무하는 Dan Kim Bock국장이었다.
 1월 25일 시청에 있는 사무실에 찾아가니 한국말로 반가이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책상서랍에 소중하게 간직한 파일을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받은 수료증과 우등상장, 그리고 토목공학과를 다니면서 받은 성적표, 졸업장 등이 있었다. 집에는 학교 다닐 때 한국 학생들과 찍은 사진첩도 있다고 했다. 파견장학생 제1기로 9명이 시작했고, 한국말을 잘해서 그 기의 회장역할을 했으나 업무에 바쁘다 보니 그 이후에는 잘 안 만난다고. 말레이시아인들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나라처럼 동문관계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고 했다.

 그 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었다. 어학연구소에 와서 있는 동안에 한국인 처녀를 만나 결혼해서 봉천동에 살았다는 이야기, 기혼인 것을 아는 토목공학과 학우들이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나도 시켜주지 않아서 섭섭했다는 이야기, 한국인 동급생들보다는 나이가 세살 위이고 정부 장학금을 받아 약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형 소리를 들으면서 가끔씩 술도 사주곤 했다는 이야기, 그때 철없던 어린 학우들이 이제는 어엿한 우리나라 토목분야의 중진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당장 그 자리에서 지금은 모교 교수로 있는 朴埈範(토목공학81-­85)교수에게 전화연락을 하니 금방 기억을 하고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대화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쿠알라룸푸르에는 한국 사람이 3천명 정도 있는데, 가끔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 서울대 졸업생이라고 하면 모두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들어가기 힘든 서울대에 들어갔느냐 물어본다고 한다. 그때 "저는 서울대를 뒷문으로 다녔어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고. 마치 부정입학과 관련된 듯한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봉천동에 집이 있어서 매일 낙성대쪽 후문으로 다녔거든요"라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해 웃음을 안겨준다고 했다. Dan국장이 어학연구소에서 우등상을 받을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요새도 부인은 한국에 자주 다니며,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본다고 했다. 아들도 대를 이어 토목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 유학을 보냈으면 한다고. 본인은 시청 교통국의 담당업무를 하면서도 한국인과 한국기업에 우호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날 점심약속도 한국의 기업인과 미리 잡혀있다고 해서 일어났다.
 앞으로 토목공학과동창회와 BK SIR사업단이 공동으로 옛 말레이시아 동창생들과의 윈-윈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것을 발판으로 동남아에 진출한 기업체들과 학문․기술적인 교류를 증진시킬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동문과 모교의 학생들을 서로 연결시켜 해외인턴십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가족이나 자녀들끼리의 교류도 생각해 볼 일이다.
 SIR사업단에서는 4월 중에 Dan국장을 한국에 초청해 쿠알라룸푸르시의 교통정책과 신행정도시의 개발경험에 대한 세미나를 요청할 예정이다. 특히 춘계 토목공학과동창회 행사에 참석토록 해서 학우들을 만나 학창시절의 추억도 돌이켜 보고, 은사님들과 만나게 할 것이다. 앞으로 옛 외국인 동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울대가 국제화를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국제화를 위해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래된 친구를 놓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들은 서울대의 국제화 전략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이미 검증된 서울대의 중요한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서울대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정을 붙이고 돌아갈 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와 우리 학교를 도와줄 수 있도록 서울대 차원의 여러 가지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