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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호 2008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기대한 성적 안 나온건 등급제 탓?




 입시철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에 이어 각 대학의 정시모집 일정도 시작됐다. 수험생들과 학부모, 교사 진로와 당락, 논술고사 등 진학과 관련한 고민에 빠져드는 시기다.
 언론들도 입시철 관련 보도로 분주하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수능 등급제 비판 기사들이다. 지면을 차지하는 양도 그렇고 기사 자체의 선정성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필자가 만나본 수험생들의 반응은 언론의 뜨거운 등급제 비판과는 온도차가 있었다. "구체적인 점수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등급제가 그렇게 불합리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가 대체적 반응이었다.
 물론 등급에 걸려 아쉬워하는 학생들을 찾아내 `등급제 비판' 기사를 만들어 낼 수야 있겠고 또 그것이 소위 `먹히는 기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다. 다른 기자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등급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수능 등급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첫째 논거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아이가 각 영역에서 모두 1점 차로 등급이 내려가 지원 가능 대학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등급제 도입 전엔 1점 때문에 대학에 지원 못하거나 낙방하는 사례가 없었다는 말일까? 0.1점까지 따져 수험생들을 1등부터 60만등까지 줄 세울 때는, 등급에 걸쳐 있는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나름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비판 논거는 "1점 올리기 경쟁을 막는다며 등급제를 도입했지만 현실은 1점으로 등급이 갈려 종전보다 더 점수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건 일종의 심리학이다. 본인이 부담을 더 느낀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왠지 내겐 `異狀심리학'처럼 느껴진다.
 등급제와 점수제 중 어느 쪽이 더 강의필기 노트를 안 빌려주게 하고, 동료를 경쟁자로 보게 만들까? 재수생, 삼수생까지 불러들여 총점제와 등급제를 비교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세 번째 논거는 "등급을 조합할 경우 성적 역전 등 불합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총점으로 볼 때는 A가 B보다 우수하지만, 등급을 조합하면 B가 A보다 높은 점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지만 이를 바로 `총점제는 합리적이고 등급제는 불합리하다'는 주장으로 이어가는 것은 성급하다. 한 과목은 1백점을 맞고 나머지 한 과목은 0점을 맞아 평균이 50점인 학생과, 두 과목 모두 50점을 받은 학생이 `똑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일까? 대학에서 수능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예를 들어 가산점제 적용이나 지원자격 제한(세 과목 이상 1등급을 받아야 지원 가능하다는 식으로)에 따라서, 총점에 따른 순위는 이미 뒤집혀 왔었고 또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등급제 비판은 상당부분 `사실보도'라기보다는 `신념보도'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다음은 등급제 비판 다음에 이어지는 `대안 아닌 대안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선발은 점수다. 등급제를 폐지하고, 2007학년도 수능의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경쟁을 죄악시하는 평등주의적 평준화 정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줘야 하는 이유다. 등급제 과오의 시정 없이 내년 수험생들에게 올해와 같은 혼란을 다시 줘서는 안 된다."
 속내가 나온다. `느슨한 경쟁을 용납할 수 없고, 삼불정책 등 대학입시에 대한 정부의 규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중․고교생들의 입시를 둘러싼 `경쟁'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다만 수험생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또는 사교육비 증가를 걱정해서, 등급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삼불정책도 폐지해야 할 판에 등급제 도입 웬 말이냐"라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진로 결정으로 머리가 복잡한 수험생들에게 `기대하는 성적이 안 나온 것은 네 탓이 아니라 등급제 탓'이라고 속삭이는 것은 비겁하고 위험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