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호 2004년 4월] 기고 감상평
서울대인으로 살아온 내 인생의 소회
金 銀 姬(85년 人文大卒)한우리공인중개사무소대표
최근 10여 년 동안 3명의 대학동창들과의 교류 말고는 내 거처를 알 턱이 없는 처지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어떤 경로에서든지 동창회보의 기고 부탁은 뜻밖이다. 선천적으로 앞줄에 나서는 타입도 아니지만 주어진 일이라면 거절도 안 하는 내 식대로 청탁을 받고 보니 난감하다. 그동안 본 코너의 글을 읽어보니 회보에 대한 비판과 칭찬은 많은 분들이 해 주신 듯 하다. 그에 더해 중언부언하는 것보다는 회보를 받는 순간 느꼈던 「서울대인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 관한 소회를 밝히는 게 쓰는 필자도, 읽는 동문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된 전직 대통령이 있었듯이 필자 역시 여덟 살 적부터 준비된 서울대생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졸업생으로서 인생의 중간 결산 손익 대차대조표를 따져본다면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인 면에서 이득보다는 손해 쪽으로 기우는 것도 사실이다. 세간의 말처럼 사회로 나간 서울대 졸업생의 확실한 이점은 서울대 콤플렉스가 없는 것 말고는 별것이 없었다. 서울대생이라서 입사동기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일 잘한다고해서 인정받기 무섭게 치사하고 아니꼬운 현실에는 적응이 힘들어 박차고 나오기 일쑤였다. 꿈이 큰 만큼 좌절도 잦고 실망도 많아 공부나 학문의 길 말고는 밥벌이에서는 가난뱅이를 면키 힘든 것이 서울대 동문들의 특질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든든한 배경 없이 공부만 잘하는 여자대접이 대한민국에서 어떤가는 작금의 서울대 여교수 비율만 보아도 확실한 반증이 아닌가. 필자 역시 시골의 한 농사꾼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여타의 활자중독증 환자처럼 원하던 서울대에 입학하기는 과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과외금지조치로 몸담을 곳이 없고 용돈도 없는 처지에 친척집의 방 한구석의 기생생활로 시작한 서울생활은 신림동과 봉천동으로 거처가 바뀌어도 생존조차 버거운 극빈의 처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필자의 처지를 비관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학내에서, 시가지에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부르짖는 데모와 최루탄, 화염병만이 내 청춘을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서울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서울대는 대한민국 지성인의 요람이자 전당이라 믿었고 또한 지성인은 이 사회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필요 충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성인의 표상인 직업을 손꼽으라면 작가 이상은 없었다. 한마디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국문과에 입학했고 필자의 이 신념은 열살 이전부터 스무살 때까지 무모하리만큼 강했다. 신념이 내 삶의 기대치를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는 괄호로 묶어두자.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필자는 작가로서 문명을 얻기는커녕 신춘문예 응모조차도 못해본(혹은 안 해 본)채 두 딸을 가진 엄마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고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과외교사로서 밥을 먹었고 지금은 과거 달동네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공인중개사로 살면서도 가슴의 한편에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흠모하고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실험적 삶을 동경하면서 언젠가는 대자유의 삶을 누리다가 가리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생을 꿈꾸는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 왜 서울대에 가려 하고, 보내시고 싶습니까? 다음에서 고르세요.(중복응답 가능) 「1.출세하고 싶어서 2.돈을 벌고 싶어서 3.명예 때문에 4.학문의 길을 걷고 싶어서 5.사회지도층이 되고 싶어서 6.뜻이 통하는 벗들을 만나려고 7.차원 높은 삶을 살고파서 8.서울대 콤플렉스 안 가지려고 9.학비가 싸고 장학금이 많아서 10.기타」 그리고 필자는 아직 초등학생인 두 딸들에게도 항상 말한다. 『엄마는 앞으로도 돈 많이 벌 재주도 없고 너희에게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너희들 대학을 보내는 것은 엄마의 의무가 아니다. 나라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고 나는 고등학교까지 너희를 가르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빨리 돈을 벌고 대신 대학공부하고 싶다면 너희 힘과 실력으로 가고 그 중에서 서울대의 학비가 가장 싸고 친구할 만한 사람도 많으니까 거기 한번 가볼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두 딸은 엄마의 경제력을 아는 모양인지 눈만 뜨면 학교에 놀러 가고, 하교하면 소리쳐서 잠들라고 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밖에서도 집에서도 잘 논다. 필자의 어린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두 딸의 놀이정신이 신기하면서도 그들이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 거라는 소망 어린 확신이 든다.
준비된 전직 대통령이 있었듯이 필자 역시 여덟 살 적부터 준비된 서울대생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졸업생으로서 인생의 중간 결산 손익 대차대조표를 따져본다면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인 면에서 이득보다는 손해 쪽으로 기우는 것도 사실이다. 세간의 말처럼 사회로 나간 서울대 졸업생의 확실한 이점은 서울대 콤플렉스가 없는 것 말고는 별것이 없었다. 서울대생이라서 입사동기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일 잘한다고해서 인정받기 무섭게 치사하고 아니꼬운 현실에는 적응이 힘들어 박차고 나오기 일쑤였다. 꿈이 큰 만큼 좌절도 잦고 실망도 많아 공부나 학문의 길 말고는 밥벌이에서는 가난뱅이를 면키 힘든 것이 서울대 동문들의 특질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든든한 배경 없이 공부만 잘하는 여자대접이 대한민국에서 어떤가는 작금의 서울대 여교수 비율만 보아도 확실한 반증이 아닌가. 필자 역시 시골의 한 농사꾼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여타의 활자중독증 환자처럼 원하던 서울대에 입학하기는 과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과외금지조치로 몸담을 곳이 없고 용돈도 없는 처지에 친척집의 방 한구석의 기생생활로 시작한 서울생활은 신림동과 봉천동으로 거처가 바뀌어도 생존조차 버거운 극빈의 처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필자의 처지를 비관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학내에서, 시가지에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부르짖는 데모와 최루탄, 화염병만이 내 청춘을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서울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서울대는 대한민국 지성인의 요람이자 전당이라 믿었고 또한 지성인은 이 사회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필요 충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성인의 표상인 직업을 손꼽으라면 작가 이상은 없었다. 한마디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국문과에 입학했고 필자의 이 신념은 열살 이전부터 스무살 때까지 무모하리만큼 강했다. 신념이 내 삶의 기대치를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는 괄호로 묶어두자.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필자는 작가로서 문명을 얻기는커녕 신춘문예 응모조차도 못해본(혹은 안 해 본)채 두 딸을 가진 엄마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고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과외교사로서 밥을 먹었고 지금은 과거 달동네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공인중개사로 살면서도 가슴의 한편에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흠모하고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실험적 삶을 동경하면서 언젠가는 대자유의 삶을 누리다가 가리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생을 꿈꾸는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 왜 서울대에 가려 하고, 보내시고 싶습니까? 다음에서 고르세요.(중복응답 가능) 「1.출세하고 싶어서 2.돈을 벌고 싶어서 3.명예 때문에 4.학문의 길을 걷고 싶어서 5.사회지도층이 되고 싶어서 6.뜻이 통하는 벗들을 만나려고 7.차원 높은 삶을 살고파서 8.서울대 콤플렉스 안 가지려고 9.학비가 싸고 장학금이 많아서 10.기타」 그리고 필자는 아직 초등학생인 두 딸들에게도 항상 말한다. 『엄마는 앞으로도 돈 많이 벌 재주도 없고 너희에게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너희들 대학을 보내는 것은 엄마의 의무가 아니다. 나라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고 나는 고등학교까지 너희를 가르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빨리 돈을 벌고 대신 대학공부하고 싶다면 너희 힘과 실력으로 가고 그 중에서 서울대의 학비가 가장 싸고 친구할 만한 사람도 많으니까 거기 한번 가볼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두 딸은 엄마의 경제력을 아는 모양인지 눈만 뜨면 학교에 놀러 가고, 하교하면 소리쳐서 잠들라고 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밖에서도 집에서도 잘 논다. 필자의 어린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두 딸의 놀이정신이 신기하면서도 그들이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 거라는 소망 어린 확신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