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호 2007년 1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세 정치인의 `마크맨'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들은 많은 정치인 가운데 유력 인사 한두 명을 택해 그의 하루 동정은 물론 향후 일정 및 정치 행보를 챙긴다. 흔히 `마크맨'이라고 불린다.
정당 출입 2년이 갓 넘은 필자는 그동안 세 정치인의 마크맨이었다. 金槿泰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鄭雲燦 前서울대 총장, 그리고 孫鶴圭 前경기지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KS출신'이고, 대권을 꿈꿨지만 좌절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KS출신'이라는 칭호 속에 숨어있는 약간의 모자람을 느낀다. `다 갖춘 것 같지만 중요한 하나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金槿泰〉
金槿泰의원은 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다 극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과 원칙을 접지 않은 뜨거운 사나이다.
정치부 생활을 꽤 했던 한 회사 선배는 술자리에서 金槿泰라는 정치인은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가식적이지 않은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의 말에서는 진정성이 배어 나왔다.
그런 金槿泰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엘리트의식을 주목한다. 그는 평생을 현장에서 압도적인 권력에 맞서 싸웠지만 어쩔 수 없는 엘리트였다고 본다.
서울 도봉구 창동 자택에서 그는 수더분한 아저씨다. 기자정신을 발휘해 뭔가 물을라치면 閔기자, 그냥 가라고 슬쩍 눙친다. 새벽 같이 찾아간 어떤 기자에게는 아침을 같이 먹자면서 된장찌개에 총각김치 그리고 찬밥이 놓인 밥상을 내놓았다.
삶 자체는 서민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그의 말은 서민적이지 않았다. 서민의 말을 쓰지 못했다.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한 측근은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6월 12일 대선 불출마선언을 한 뒤에 金槿泰는 변했다. 대중연설을 할 때면 경직됐던 그가 이제는 웃음을 머금으며 농담까지 한다. 지상에 발을 디딜 준비가 된 것 같다.
〈권력의지가 잘 보이지 않은 鄭雲燦〉
鄭雲燦 前서울대 총장이 이른바 범여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된 것은 지난해 7월 무렵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개인적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鄭 前총장의 마크맨이 됐다. 鄭 前총장은 사람을 알고 사귀고 만나는 것을 천성적으로 즐기는 듯했다. 전혀 모르는 기자가 전화를 하거나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실로 찾아가도 매정하게 끊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속성상 鄭 前총장의 발언을 이러저리 해석해 `鄭 前총장 대선 나설 듯' 류의 기사를 쓰곤 했다. 그때마다 鄭 前총장은 "나는 정치 안 해"라고 말했다.
鄭 前총장은 4월 30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할 때까지도 자신이 정치를 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과 지방 대학을 돌며 `강연정치'를 하면서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기는 했지만 기자들은 "하겠다는 거야, 하지 않겠다는 거야"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그의 행보를 보며 한 정치부 기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자신을 내건 승부다. 대통령이라는 직이 어떤 자리이며 어떤 무게를 갖는지 확고한 판단이 서고 이를 토대로 국가를 어떻게 끌어가야겠다는 단단한 각오 없이는 힘들다. 그런 면이 鄭 前총장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평가가 鄭 前총장에게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속에 어떤 칼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鄭 前총장에게서 이런 결연함을 찾아보기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
〈흡인력은 최고지만 순진했던 孫鶴圭〉
孫鶴圭 前경기지사는 처음 만난 사람도 쉽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손을 덥석 잡고 훤한 얼굴에 하나 가득 웃음을 지으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네형처럼 이야기한다. 많은 정치인이 기자들을 만나면 일일이 악수를 하지만 孫 前지사처럼 따뜻한 사람은 드물다.
孫 前지사는 또한 결기도 있었다. 경선 불복이라는 오명을 쓸 가능성이 농후했음에도 과감히 3월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자칫 기존 대선주자들이 먹이가 될 수 있었음에도 범여권 합류를 결정했다. 대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욕망이 없다면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孫 前지사의 태도는 이런 권력의지를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선 초반 지역 4연전에서 모두 패하고 위기에 몰렸을 때 이틀동안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고 현장을 떠난 모습은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 의원은 이런 孫지사를 두고 "권력의지는 강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내공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孫 前지사는 이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본다.
당내 경선에서 패한 뒤 孫 前지사는 서울 모 음식점에서 자신의 마크맨 기자들과 저녁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孫 前지사는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오락가락 했다"고 쓴소리를 하자 孫 前지사는 그 기자를 껴안고 "고맙네, 고마워"를 연발했다.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한 요즘 孫 前지사는 다른 정치인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5년 뒤 권력의지에 걸맞은 정치인으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