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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2007년 12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기로에 선 서울대학교



 국립대학으로서의 서울대학교는 지난 60여 년간 수많은 우여곡절과 명암을 거치는 가운데 이 나라의 동량재들을 길러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 왔지만, 21세기의 초입이라는 이 시점에서는 커다란 기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국내 1위' 시절에는 국립이라는 체제가 그런대로 그 기능을 잘 수행해 왔지만 `세계 1위'를 지향해야 하는 21세기의 고등교육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실현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서울대학교가 세계 1위를 지향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외형상으로 볼 때 세계의 거의 모든 유수대학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국립'이라는 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원래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서구의 대학들이 생겨날 때 사교육 체제로 시작했다는 역사적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렇게 되었던 가장 주된 이유는 교육과 학문발전이라는 일의 특성, 그 유기체적 특성 때문이었다. 모든 유기체는 이질적인 외부의 자극이나 압력에 대해서는 저항한다. 이 말은 학문과 교육은 그 내재적 성장의 원리와 기제를 그 자체 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칙상 가만 내버려두면 저절로 발전을 지향하게 돼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서구의 선진국들은 대학에 대해서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지게 됐고, 이 규칙은 학문과 교육의 국제 경쟁시대인 지금에도 물론 유효하다. 다만,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이 학문과 교육도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부분이나 분야에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제 기능을 못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이때 국가나 사회는 성급한 대증요법에 의한 인위적 처방만으로 대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유기체 전체의 건강이 좋아지도록 함으로써 취약한 器官들도 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정부에 대해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교육부가 대학을 다루는 방식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루는 방식의 연장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 나눠주기식 대학 지원금을 통해서 대학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이른바 `채찍과 당근' 정책조차도 이 방식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채찍과 당근이라는 원리는 사안에 따라, 수준에 따라 좋은 원리가 되기도 하지만 학문과 교육의 발전이라는 일에서는 까딱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훌륭한 교육자, 양심적인 학자일수록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당근'을 멀리해온 전통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는 이제 대학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고, 서울대학교는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표면상 이 전환의 핵심에는 `국립'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외양이 아니라 본질이다.
 서울대학교라는 유기체가 세계의 유수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 滋養과 시스템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양이란 곧 대학의 재정을 말하고, 시스템이란 곧 넓은 의미에서 대학의 `거버넌스'를 말한다. 그 재정을 지금의 열 배 이상 수준으로 확보하고, 그 거버넌스가 완전자율이 되도록 하는 길, 서울대학교는 그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