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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2004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법 앞에 만인이 불평등한 나라

洪 志 旼(01년 人文大卒)서울신문 체육부 기자
형사재판에 있어서, 판사가 선고를 내릴 때 「양형의 이유」를 설명한다. 해당 범죄에 대한 법정형은 얼마인데 어떻게 오늘과 같은 형량이 결정됐는지 피고인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51조는 「刑을 정함에 있어 범인의 연령, 性行, 지능과 환경·피해자에 대한 관계·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53조는 법률에 명시된 刑의 감경사유 외에도 범죄의 情狀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판사의 재량으로 형을 줄여 가볍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酌量減輕」이라고 한다.
수많은 재판을 드나들며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조문들이 「자의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학창시절 습득한 지식에 금이 갔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인들에 대한 감경 사유 가운데는 대개 「자신의 죄를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있는 점」이 들어간다. 물론, 정치인이나 공무원도 조금이라도 형을 줄이기 위해서는 뉘우쳐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다른 조건들이 자동적으로 첨부되곤 한다. 「오랜 기간 나라에 봉사해온 점」, 「재판을 받으며 명예가 실추돼 처벌의 효과가 있는 점」 등등. 봉사할 기회가 없었던, 재판을 받으면 실추될 만한 명예가 없는 일반시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지난해 2월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은 국민의 정부 5년간의 주요 뇌물수수나 알선수재 사건 1백건에 대한 판결을 분석해본 적이 있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사건은 모두 94건. 이 가운데 무려 68명(72.3%)이 집행유예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항소심 계류 중이었던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실형이 선고됐으나 대부분 보석이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실형을 받고 복역하던 인사들에게도 사면복권이 기다리고 있었다. 『뇌물죄 처벌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고 당시 한 판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뇌물을 받고 적발되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인 현실을 감안하면 처벌의 공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솔직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논리라면 「재수없이 나만 걸렸다」고 생각하는 음주운전자들은, 혹은 사소한 법규위반자들은 어떻게 법이 심판할 수 있겠는가. 올해 3월, 서울신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6대 총선 사범 재판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봤다. 16대 당선자 가운데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55명. 18명이었던 15대 때보다 3배정도 늘었다. 그런데 15대에서는 38.8%인 7명이 의원직을 잃은 반면 16대에서는 12명(21.8%)이 당선무효 또는 선거무효형을 선고받아 그 비율이 오히려 낮아졌다. 특히 1심에서는 당선무효형이 38.3%선이었으나 항소심에서는 17.7%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법원 온정주의에 대한 비판은 사법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거론됐지만 실효가 없었다. 요즘은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대법원에서는 부패전담 재판부를 설치하는 등 여러 면에서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려고 하고 있다. 최근 한창 주가를 올렸던 불법정치자금 사건과 관련, 상당히 높은 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검찰도 검찰 나름대로, 좌우를 둘러보는 일없이 부패 척결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상태다. 법이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엄한 것이 아니라, 강자나 약자 모두에게 공정한, 나아가서는 강자에게는 엄하고 약자는 배려하는, 그런 얼굴을 가졌으면 한다. 그 단초가 이제 서서히 보이는 것 같다. P.S. 『너, TV에 나왔더라』 지난 2년 가량, 최규선 게이트부터 대북송금 특검을 거쳐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이르기까지, 소원했던 친구들에게서 그런 안부전화가 불쑥, 많이도 걸려왔다. 방송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말쑥한 차림도 아니고 머리를 감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세수도 안하고 쾡한 눈에 단벌 양복인, 그런 모습으로 TV 화면에 부단히 등장했다. 화면 속에서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앞에서, 옆에서 혹은 뒤에서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표정은 일그러질 때가 많다. 멘트는 없다. 다른 기자들에게 밀리고 채이고 하는 과정에서 질렀던 비명과 고함만이 전파를 탔을 것이다. 서초동을 떠난 지 3개월째. 안부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하지는 않다. 잔잔한 기쁨이나 성취감보다는 거대한 실망과 좌절을 많이 느꼈던 곳이었다. 이제 나는 체육부로 둥지를 옮겨 기자생활 「제2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