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2007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철밥통 우화를 신화에서 끌어내릴 때


지난 10월 9일 서울시청 공직사회가 술렁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吳世勳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주요 개혁과제로 추진해오던 신인사시스템에 따라 지난 4월 퇴출 후보로 선정된 공무원 1백2명 가운데 24명이 정말로 옷을 벗게 된 것이다.
이른바 `철밥통'을 잃게 된 이들은 지난 6개월간 `현장시정추진단'에 배속돼 불성실하고 무능했던 공직생활을 반성하며 재교육을 받았다. 이런저런 정신교육과 함께 공원에서 잡초를 뽑고 배수로에 쌓인 쓰레기도 치우는 등 책상머리에서 펜이나 굴리던 공무원들에게는 그야말로 `형극'의 세월이었던 셈이다.
퇴출된 공무원들 가운데는 재교육의 과정에서도 심한 술버릇을 버리지 못해 말썽이 됐던 고시출신 엘리트 공무원도 있었고, 30년 이상 한글을 모른 채 근무해오면서도 한글 배우기를 끝내 거부한 기능직 공무원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년이 보장돼 있고 퇴직한 다음에는 안정적인 연금이 지급되는 것을 당연시해온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들 24명의 퇴출이 커다란 충격이자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예상했던 대로 공무원노조는 직업공무원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거라고 즉각 반발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의 이 같은 작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조직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정은 한참 달라진다. 특히 중앙정부에서는 아직도 일에 사람을 배치하기보다는 머릿수를 무작정 늘려놓고는 없는 일도 만들어 사람에 꿰맞추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참여정부 들어 늘어난 공무원 수만 6만명 가까이 된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에게는 열성적인 팬클럽으로부터 느끼는 위안 못지 않게 직제상 명령체계의 사슬에 묶여있는 관료조직이 그나마 든든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은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화두에 끌려 다니면서 과거보다 더욱 민주적인 정치권력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소득격차에 따른 양극화와 상실감이 증폭돼 나타나는 기현상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 국부를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팔아먹는 데 앞장서는 직업군이 가장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으로 떠올랐고,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1을 가뿐히 넘어선다는 뉴스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 뿐만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는 `글로벌 마인드'가 강조되면서도 전혀 `글로벌'하지 않은 후진적인 요소가 우리나라 공무원 채용제도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지만 아무도 먼저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삼성전자에서 대졸 신입사원을 9급․7급․5급으로 나눠 뽑는다는 말을 아직은 듣지 못했다. 바로 지난 세기 초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전근대적인 공무원 채용제도가 정말 문제다.
간혹 일상대화나 TV드라마, 심지어 신문이나 방송 기사에서조차 변호사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인 사법시험을 사법고시라고 표현하는 것을 접하곤 한다. 합격자 전부를 공무원인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하던 시절에는 맞는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물론 다르다. '고시'를 정의하자면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고급공무원을 선발하는 제도가 아닌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적어도 `상고' 출신 대통령이라면 공무원의 귀천을 시작부터 가려 뽑는 후진국형 제도에 메스를 제대로 댈 줄 알았다. 사법고시가 아닌 사법시험을 거쳐 서울대 법대 출신이 즐비한 법조계에서 나름대로 성공신화를 이룬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면 조선시대 과거시험 같은 고시제도를 과감하게 없애줄 줄 알았다.
어찌 삼성전자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유수한 대기업에서는 대부분의 직원을 대졸 신입사원 공채로 충당한다. 능력을 인정받고 의욕적인 신입사원은 동기들보다 더 먼저 대리도 되고 과장도 되고 업계의 별이라는 이사 자리도 차지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경우 말단직원은 말단직원대로 대리는 대리대로 과장은 과장대로 서열을 구분해 따로 뽑는 식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히 여겨온 것들도 살짝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렇게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제도도 없다.
다시 철밥통. 이제는 사전에도 나올 법한 `철밥통'이라는 말은 직업의 안정성에 기대어 무사 안일한 공무원들의 자세를 빗댄 말이다. 자질 측면에서 관이 민에 우선하던 시절에는 관행쯤으로 치부됐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민이 웬만한 관보다 더욱 뛰어날 뿐더러 급여를 포함한 관의 근로조건은 오히려 민을 넘어서기도 한다.
참여정부 들어 `장군의 계급장을 떼고 병과도 모두 없앤다'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군대식으로 병사와 부사관, 장교를 따로 뽑는 공무원 채용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경쟁을 통한 진정한 체질 개선을 이루기 힘들다. 1백m 경주도 마라톤도 출발점이 다르다면 의미가 없다.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경쟁의 대열에 서게 만드는 동기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채용제도의 개혁, 이제는 철밥통의 우화를 신화에서 끌어내려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