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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2007년 11월] 기고 감상평

사대 영어교육과 金龍煥교수님을 기리며




 1945년 해방이 됐을 때 내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일본어는 이제 필요 없고 영어를 배워야 하니 YMCA에 가서 영어를 배우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즉시 순종했다. 부모님의 한 마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그 후에 깨닫게 됐다. 다행히 영어에 취미를 느낄 수 있었고 집에 있던 일본 Kenkyusha(硏究社)에서 낸 참고서가 도움이 됐다. 학교에서보다 YMCA에서 영어를 훨씬 더 많이 배웠다. 그러고 보니 영어에 관한 한 처음부터 과외를 통해 배운 셈이다.
 그 당시 Ono Keijiro(小野圭次郞)의 `영문법 연구', `영문해석법', `영작문연구' 등은 아주 중요한 교재였고 그런 강의에 아주 열성을 내어 배웠다. 특히 미국 선교사의 집에 가서 영어성경을 배웠던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학생들 중에 발음이 좋은 사람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드디어 `원서'라고 할 수 있는 Ave Bury의 `The Use of Life'나 Washington Irving의 `The Sketch Book'을 공부하게 돼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됐다고 생각했다.
 간혹 어떤 학자 같은 분이 Times나 Newsweek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나는 언제 저런 잡지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을까 매우 부러워했다. 조실부모한 나는 대학 1학년 때 돈을 좀 벌어볼 목적으로 `근면학관'이란 간판을 우리 집 2층에다 내걸었는데, 친지 한 분이 신문에 광고를 내주셔서 몇몇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 중 제일 도전적이었던 일은 Times지를 강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대한 사전을 활용해서 문장해석에 열중했고 신문기사 내용 등을 참작했다. 아마 1951년에 내가 살던 고을에서 Times지를 강의한 사람은 내가 효시로 기록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서 고급반으로 올라감에 따라 선생님들이 해석을 시켜준 것이 학생들의 실력을 많이 향상시킨 일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고급반에 갈수록 희망자만이 해석을 자원해서 하게 돼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수법으로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다.
 대학 3학년이 됐을 때 金龍煥교수님의 `시사영어'를 수강 신청했다. 교수님은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Times지를 교과서로 쓴다고 말씀하셨고, 일정한 페이지를 배당해 내용을 파악한 후 차례로 발표하게 하셨다. 물론 집에서 미리 공부해 자기가 맡은 부분을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읽고 해석하는 일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시사영어에 관한 강의는 한 마디도 안 하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마침 내가 읽은 것은 프랑스의 망데스 외상에 관한 기사였다. 약 두 페이지에 달하는 길고 심층적인 내용의 기사였다. 대학 1학년 때 Times지를 강의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는지 아니면 열 네 살 때 웅변대회에서 1등한 실력으로 낭랑한 웅변적인 음성과 자신감 있게 발표한 것이 주효했던지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은 "연극의 막이 내린 것 같구만!"이란 말씀을 해주셨다. 교수님이 해석을 잘했다 또는 못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으나 이 말씀을 큰 칭찬으로 여겼다.
 당시 교사나 교수가 학생을 칭찬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국어교과서를 낭독했을 때 선생님이 "네 목소리가 아주 명쾌하다"는 말씀이 최고의 칭찬으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교수님들이 직접 강의도 많이 하셨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영작문과 시사영어는 학생들의 발표력과 칠판에 쓴 문장구성력을 평가하는 시간으로 삼으신 것으로 생각된다. 작문 역시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서 집에서 써온 자유 작문을 칠판에 적어 발표하게 하고, 동료 학생들의 평가를 듣는 것으로 수업이 진행됐으며 이 때도 교수님은 한 마디도 안 하셨다. 그렇다고 학생 중 누구 하나 교수님께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학생들이라면 어떻게 나올까? "우리가 동료 학생의 영어 작문실력을 보기 위해서 이 과목을 신청한 줄 아느냐?"고 항의하지 않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학기말 시험에 시사영어나 영작문 시험이 공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발표한 것이 시험점수로 연결되는 것을 훨씬 후에 알았다. 金龍煥교수님은 내게 A를 주셨다. 그러므로 "연극의 막이 내린 것 같다"는 말씀은 요새말로 Excellent의 뜻이었던 것이다. 가장 공정하게 구두발표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