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2007년 11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남북회담 有感

줄곧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남북의 문제요, 민족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남북이 다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꼭 같이 살아가야 하는가?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두 개의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민족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즉답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 물음은 개개인이 책임감을 갖고 맑은 마음으로 생각해 저마다 결론을 얻어야 할 일이다.
나의 학창시절, 그러니까 이른바 해방정국 시기의 공산당(남로당)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이른바 진보적 좌파들은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민'과 `계급'이 있을 뿐 민족이란 개념은 계급투쟁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소련을 조국이라고 서슴지 않고 불렀던 이들은, 민족을 말하면 보수 반동이라고 비난했다.
在來共産黨의 당수였던 玄俊赫이 소련 군정 하의 평양에서 赤色테러의 첫 희생자가 됐다. 남쪽 공산당을 이끌고 북한으로 넘어갔던 朴憲永 등은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죄목 하에 차례차례로 숙청당했다. 당시 민족진영에는 세 명의 領袖가 있었다. 李承晩, 金 九, 金奎植 - 공산당은 이들을 반동의 괴수,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선전했다. 이런 사실들을 지금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6․25를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한다.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이란 뜻이다. 이 전쟁에서 같은 동포에게 먼저 방아쇠를 당긴 것은 어느 편이었던가. 스탈린의 지령으로 소련을 조국으로 삼았던 金日成이 아니었던가. 같은 말을 쓴다고 해서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6․25에서 체험했다.
그 후 소련에서도 70년간의 공산주의 체험이 막을 내렸고, 중국 공산당도 일찍부터 소련과는 손을 끊고 지금은 시장경제로 눈을 돌려 우리와도 자유롭게 사람과 물자를 교류하고 있다.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도 한 나라가 됐다. 하나의 민족을 둘로 나누는 것은 처음부터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20세기의 종교라고 했던 이데올로기도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제 우리 민족에게 남은 과제는 남북이 화해하고 신뢰하는 일인데, 그 첫발은 남북이 서로 왕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장은 서로 다른 체제를 건드리지 않더라도 자주 오고 가노라면 전쟁 없이 통일의 길이 절로 열리지 않을 것인가.
어려웠던 문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 녹듯이 쉽게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