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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2007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모셔간 사람, 받아준 사람




 춘추시대의 일이다. 관중이 수레를 타고 요산을 지날 때다. 홑바지에 부서진 삿갓을 쓴 한 남자가 소를 먹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넓고 넓구나, 白水여!"
 `군후 오시와 나를 부르시니(君來召我) 내 장차 자리에 안정하리라(我將安居)'로 끝나는 시다. 벼슬을 구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관중이 불러 물어봤다. 寧戚이라는 위나라 사람으로 시국을 논하는 것이 청산유수였다. 관중은 주군인 제환공에게 추천하는 글을 써줬다.
 며칠 뒤 제환공이 그곳을 지났다. 영척은 또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에 하얀 돌은 빛나는데(滄浪之水白石爛) 그 속에 길이 척반이나 되는 잉어가 있도다(中有鯉魚長尺半)…." 자신이 큰 잉어이니 써달라는 말이다. 환공의 면접을 통과한 영척은 중용됐다.
 요즘으로 치면 영척의 쇠뿔은 훌륭한 자기광고 도구였던 셈이다. 과거제도가 없던 춘추전국시대의 구인구직은 그런 식이었다. 제자백가도 결국은 자신을 잘 알리기 위해 다닌 유세가들이다.
 그와 대조적인 모양이 三顧草廬다. 초의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초려를 찾았다. 이런 `초빙' 방식이 제갈량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제환공은 야인 동곽을 만나기 위해 다섯 번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주 무왕도 강태공을 모시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태공망'이라는 강태공의 이름도 무왕이 바라서(望) 모셔왔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쇠뿔을 두드리며 나를 써달라고 자기를 파는 건 아무래도 점잖지는 않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사정을 해서 나섰노라고 하면 폼이 난다.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데도 모셔간 사람 행세를 하려면 웃음거리가 된다. 신나라를 세운 왕망이 멀고도 어려운 길을 돌아 왕위를 `선양'받는 형식을 취한 것이나 牛意馬意까지 동원하며 대통령직을 苦辭하는 모양을 만든 李承晩 전 대통령은 모셔간 사람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크게 보면 세상에는 이렇게 `모셔간 사람'과 `받아준 사람'이 있다. 옛날에야 자기능력을 알릴 길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영척의 행동을 경망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게 다 드러나는 세상에 굳이 그런 처신을 해야 할까.
 최근 한 대선 후보 진영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 비슷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왜 저리도 많을까 의아하다. 그러나 그 후보는 모셔간 사람과 받아준 사람을 분명히 가른다고 한다. 꼭 필요한 사람은 모셔가고, 일은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받아 달라'고 안달하는 모습이 마치 한 통신회사의 '쇼'하는 광고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