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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2004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갈등과 불화, 대화합으로 전환돼야

한 사회가 잘 유지되고 발전되려면 구성원간의 다양성과 갈등관계를 가장 평화적이고도 민주적으로 질서있게 해결하고 조화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을 화해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갈등구조를 화해의 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합리적 질서와 기준이 확립돼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은 독단과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나 자기 집단만의 생각과 이익을 추구하면서 사회의 법질서를 무시하는 행위까지 자행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의 붕괴와 함께 당사자들의 이익도 소실되고 말 것이다.
참다운 민주발전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도 법질서가 최대한 준수되는 가운데 공생의 관계가 유지 발전되도록 하는 구성원 모두의 인내심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민족사적으로 획기할 만한 남북의 대화합을 위해 거족적인 행사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6·25를 전후한 남북간의 원수와 같은 적대관계와 그 책임추궁을 덮어 둔 채 대화합을 이룩하고 여러 분야에 걸친 상호 교류와 협력, 통일을 향한 노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44년전 필자는 대학생으로서 적색독재와 백색독재를 다 함께 배격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바탕 위에서 4·19혁명을 주도했고, 그후 민족통일을 향한 염원과 그 노력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과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을 조직하면서 우선 「남북간의 서신교환」과 「남북한 학생회담」을 제의했다가 5·16사태 이후 「혁명재판」에서 소위 「利敵行爲」를 했다는 이유로 10년 언도를 받았지만 動機의 순수성이 인정돼 수감생활 1년만에 형면제로 석방된 바가 있다. 당시의 상황에 비한다면 남북간의 관계가 적대적 관계와 갈등에서 민족 대화합으로의 엄청난 변화를 위해 갖가지 노력과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재 국내에서 우리 국민이 처해 있는 실정은 화해와 화합은커녕 극단의 대립과 분열로 치닫고 있고 법과 질서는 극도로 문란해져 있다. 준법과 질서의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는 난장판을 보여 주었고 일반국민들도 부단한 시위와 폭력 및 자폭적 행태를 노정하고 있어 정치, 경제, 사회에 불안과 불화가 증폭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갈등과 불화는 반드시 대화합으로 과감히 전환돼야 한다. 다양하고 상반되는 이견과 갈등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절충하고 화해를 도모하여 원만한 합의(consensus)가 도출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화해와 타협 및 합의가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부득이 다양하거나 상반된 방책 가운데서 하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선택의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과 상대성의 원칙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 어떤 제도나 방책이라 하더라도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민주권의 민주국가에서 국가적 결정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에 이루어지지만 국민의 선택이 반드시 가장 바람직하거나 최선의 가치를 지닌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경우에 따라서는 현명한 선택이 못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국민적 선택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서 구매력을 가진 수요자에 의해서 선호되는 상품이 자유스럽게 선택돼야 하듯이 정치적 선출이나 정책의 선택에 있어서도 최대로 자유스러운 진입과 제안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국민 각자의 자유스러운 선택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선택의 종합적 결과가 국민 또는 지역민의 대표성을 온전히 지닐 수 있게 되려면 단순한 從多數의 원칙(plurality)에 의하기보다는 超過半數(super majorities)는 못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單純過半數(simple majority)의 지지나 찬성을 요건으로 하는 결선투표제와 같은 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