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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2007년 10월] 문화 꽁트

어떤 장례식








 이순구와 윤상렬, 그리고 김기태는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동창 사이다. 어른이 된 뒤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세 친구는 4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직업은 달라도 한결같은 우정을 지켜왔다.
 그런데 얼마 전 순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이천에서 장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가 났다. 순구와 상렬은 가벼운 찰과상으로 그쳤지만, 기태는 깨어나지 않아 급히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일주일이 넘도록 의식도 없이 코에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심장만 가볍게 뛰고 있었다. 가족들은 혹시나 기적처럼 깨어나지 않을까 애를 태우며 기다렸고 순구와 상렬 역시 사고난지 사흘 뒤부터 직장에 복귀했지만 기태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열흘 뒤 기태 형님이 두 친구를 불렀다. 가족들은 벌써 다 모여 있었다.
 "오늘 병원에서 뇌사판정이 나왔어. 뇌가 완전히 다 죽어서 산소 호흡기를 달아도 2주를 못 넘긴대. 벌써 중요 장기도 손상됐고 심장이라도 이식하려면 빨리 결정하래. 산소 호흡기를 뗄지 말지…."
 기태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놀라지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상렬과 순구는 처음 듣는 소리라 놀란 눈으로 멀뚱히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기태 형님이야 그런 소리 할만 했다. 5년 동안 치매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니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죽하면 저런 말이 나올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친구 입장으로서는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그러자고 했네. 제수씨는 반대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나. 기태네 애들이 내년부터 줄줄이 대학에 가야하는데 어쩌겠나. 상렬이나 순구는 식구나 다름없으니까 기탄 없이 말해봐."
 친구라고 해도, 셋이 함께 차에 탔다가 둘만 멀쩡하게 살아남았으니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꼴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친구를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식물인간 중에도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지 않나? 하지만 기태는 식물인간이 아니었다. 식물인간은 뇌의 일부가 살아 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만 뇌사자는 뇌 전체가 죽었기 때문에 사망이나 한가지였다. 병원에서도 여러 의사들이 수없이 반복 검사를 거친 끝에 만장일치로 내린 판정이라니 더 이상 우길 구실이 없었다. 그래도 순구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한마디 토를 달려고 나서는데, 이번엔 상렬이가 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제지했다.
 "이런 나도 괴로워. 미칠 것 같아."
 형님이 울먹였다. 가족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회의는 눈물바다가 되면서 끝이 났고, 그렇게 해서 기태는 산소 호흡기를 떼기로 결정됐다.
 그나마 심장을 기증하면 서운함이 가시련만,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집안 어른들의 극구 반발에 부딪쳐 심장을 기증하는 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또다시 집안 어른들이 기태가 장손이라는 점을 들어 객사하게 놔둘 수 없다고 우겼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30분 안으로 숨이 끊어진다니까 산소 호흡기를 집에 옮겨와서 떼자는 것이었다. 결국 기태는 병원 침대에 누운 채,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집으로 옮겨왔다. 집안에서는 용한 점쟁이로부터 좋은 장례식 날짜까지 받아왔고, 심지어 하관시간까지 잡아 놓은 상태였다. 장례절차도 다 정해졌으니 그에 맞춰 이제 산소 호흡기만 떼면 다 될 판이었다.
 안방에 기태를 뉜 다음, 가족과 친지들은 기태의 주위를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태의 코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 냈다.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가벼운 흐느낌과 곡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는 장의사에서 관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3일장을 치를 계획으로 기태 친구들이 만든 상부계 회원들한테도 부고를 다 띄운 뒤였다. 집안 여자들과 이웃 아줌마 몇이 국을 끓인다, 고기를 삶는다, 전을 부친다 분주하게 집안과 마당을 왔다갔다했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기태가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세상에. 이제 진짜 세상 하직하나 봐요. 쯧쯧. 아직도 한참 좋을 나인데 아까워서 어쩌나."
 마당에서 일을 보던 여자들이 저마다 일손을 놓고 안방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채 2~3분도 안 돼, "아버지!" "여보!" "기태야!" 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서 일제히 방 쪽을 향했다. 숨이 끊어졌던 기태가 다시 숨을 몰아쉰다고 했다.
 "의사들이 그러는데, 한 시간 반이 지나야 숨이 끊어진다고 했다는구먼."
 안방에서 나온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토요일이라서, 기태 친구들이 연락을 받자마자 득달같이 모여들었다. 마당에는 텐트가 쳐지고, 조화 다발까지 도착했다. 갑작스런 기태의 죽음에 관해 그 간의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친구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저마다 한마디씩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의 부고를 띄우고 산사람 코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 내다니. 너무 한 거 아냐?"
 "말이 좋아 뇌사지. 이건 완전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나이든 친척이 끼어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말조심해야지. 가족들이 들으면 어쩌려구 그래? 오죽하면 그랬겠나?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면 안 되지."
 친구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방안에서 "아이고…여보" "아버지" "기태야!" 하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제야 진짜 가나보네.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방안을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기태 친구들도 마지막 가는 친구를 하직하려는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일제히 안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5분도 안 돼 또다시 방안이 소란해졌다. "아니? 세상에 숨을 쉬네. 여보…" "아버지. 아버지." "기태야!" 숨을 멈췄던 기태가 또다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새 한 낮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좁은 마당은 불어나는 문상객들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부지런히 밥상을 마련했다. 그 사이에도 기태는 몇 번이나 숨을 멈췄다 쉬었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문상객들 역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점차 문상객들은 차츰 방안의 동요에 별로 개의치 않게 됐다. 소리가 들리면 습관적으로 잠깐 고개들 돌릴 뿐이었다. 기태의 죽음을 애도하러 온 문상객들이 반대로 기태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는 저승사자 꼴이 되었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한마디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윽고 밤이 다가왔다. 마당엔 전등이 대낮 같았다. 문상객들은 기태가 숨을 쉬든 말든 개의치 않고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한쪽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죽을 듯 죽지 않는 기태를 두고 누군가는 명이 질기다고 했고, 누군가는 40중반에 비명횡사하는 건 파리 목숨보다 더 허망하다고도 했다. 한편에선 기태의 어릴 적 무용담이 한창이었다. 자기 물건에 손만 대도 눈에 독을 품고 덤비지를 않나, 홍수 나서 엄청나게 물이 불어난 다리 위에서 혼자 뛰어 내리지를 않나, 아무튼 보통 독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죽을 리가 없다고 했다.
 한편 순구와 상렬이는 사이좋게 나란히 기태의 관을 깔고 그 위에 걸터앉아 술잔을 주고받다가 술이 거나해지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화풀이할 상대를 찾아 시비를 거는 사람들 같았다.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상렬이가 산소 호흡기 떼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는 걸 트집 잡아 순구는 혹시 기태한테 꾼 돈 때문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천만원은 커녕 단돈 천원도 꾼 적 없다. 기태가 한 달 뒤에 빌려준다고 했는데, 일주일 뒤부턴가 주식이 올라서 몇 배로 뻥튀기 해 갖고, 없던 일로 했는데 무슨 소리야?"
 이번엔 반대로 상렬이가 순구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기태에게 가게를 넘겨주면서 권리금까지 다 받아 챙겼다며 꼬투리잡고 나선 것이다.
 "임마. 그건 기태가 장사가 잘 되니까, 나한테 미안해서 준거야. 내가 싫다는 데도 준거라고…."
 순구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상렬이는 계속 이죽거렸다. 마침내 두 사람은 멱살까지 잡고 바닥을 뒹굴기에 이르렀다. 친구들이 몰려와 둘을 떼 낸 다음에서야 간신히 싸움은 끝이 났다.
 아침이 되었을 때, 두 친구는 기태의 관 옆에 뒤엉켜 잠이 들어 있었다.
 기태는 모두가 피곤에 지쳐 곤히 잠든 새벽에 혼자 숨을 거뒀다. 방안에도 마당에도 가족들과 친구, 문상객들이 꽉꽉 찼지만, 아무도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기태는 그렇게 혼자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