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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문화 꽁트

왕의 눈물









 "왜 안 된다는 거요?"
 왕의 물음에 선지자 나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과 땅이 모두 하나님의 집인데 그분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거처를 정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모세에게는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지 않았소?"
 "그것은… 광야에 나온 백성들이 겁을 내고 있어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겠노라는 뜻으로 성막을 만들게 하셨던 것이지요."
 왕은 그래도 납득할 수가 없는지 나단을 노려보았다.
 "이보시오, 나단. 하나님은 시골의 목동이었던 나를 이끌어 주셔서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소. 그런데 왕이 된 나는 지금 이렇게 안락한 왕궁에 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장막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오."
 그는 농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들은 모두 키가 크고 잘 생겼으나 그는 키가 작고 용모도 그만 못했다. 그는 언제나 형들의 뒷전이었다. 외톨이가 된 그는 들에 나가 양떼를 돌보며 버릇처럼 물매로 돌을 던졌다.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원망을 돌에 실어 날려보내곤 했던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의지할 분은 당신뿐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에도 그랬다. 그가 이새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가 혹시 새 인물을 찾고 있는 것 아니야?"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이 지명해 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삼았다.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한데다가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사울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말렉을 공격했을 때가 그랬다. 아말렉 사람과 가축을 모두 진멸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했으나 사울은 양과 소의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고 남겨 놓았다. 이 일을 알게 된 사무엘이 사울왕을 크게 나무랐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중한데 왕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니 장차 다른 사람이 이스라엘을 받을 것입니다."
 그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와서 그의 일곱 아들을 만났던 것이다.
 "다른 아들은 더 없습니까?"
 "막내가 하나 있는데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막내아들 다윗을 불러오게 해서 만나보고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이새와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사무엘이 말했다.
 "하나님은 키와 용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그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너를 아름답다고 하셨다."
 선지자가 떠난 후 모두 그 일을 잊었으나 다윗은 잊지 않았다. 그는 수금을 켜며 키와 용모를 보시지 않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부친의 심부름으로 전선의 형들에게 갔던 다윗은 키가 6규빗이 넘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았다. 그는 이스라엘 군에 욕설을 퍼붓고 있는 키 큰 사내를 보고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내가 나가서 저 블레셋 장수와 싸우겠습니다."
 당시 다윗은 20살이었는데도 군복이 커서 입을 수가 없었다. 그는 군복을 벗어 던진 채 물매와 돌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과 맞섰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다윗의 돌은 골리앗의 미간에 명중했다. 그가 쓰러진 골리앗의 머리를 베자 이스라엘은 총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뒀다. 사울왕은 개선 장군이 된 다윗을 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다윗의 인기가 너무 올라가자 그를 죽이려 하므로 왕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는 자신을 따라나선 가난하고 억울한 자 4백명과 함께 10년 동안의 도피 행각 끝에 결국 유다 지파의 수장이 되었던 것이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이 12지파의 추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37세 때였다. 두로왕이 그를 겁내어 건축 자재와 기술자들을 보내 왕궁을 지어줬다. 시골의 목동이었던 그를 일으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준 하나님을 위해 그는 성전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왜 안된다는 거요?"
 다윗이 나단을 추궁하자 난처하게 된 그가 말했다.
 "너무 상심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후일 왕의 자손 중에서 하나를 택해 그분의 집을 짓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왕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야?"
 나단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실토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왕은 군인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내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단을 노려보았다.
 "세상에 군인 아닌 왕이 어디 있단 말이오? 또 나는 전쟁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전쟁을 해도 되겠는지 물었고 나가도 좋다고 하시면 출전을 했소. 전쟁을 해도 좋다고 허락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피를 많이 흘렸으니 안되다는 것은 또 뭐요?"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벌떡 일어섰다.
 "결국, 하나님도 나를 인정하시지 않는 거야."
 "그게 아니오라…."
 "키나 용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구? 모세도 애굽에 있을 때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성막을 만들게 하셨어.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야? 결국 하나님도 키가 크고 잘생긴 자라야 성전 지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라구."
 나단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왕께서 키가 크고 준수하셨다면 그 오랜 고초를 극복하고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큰 키를 주시지 않았으나 다른 좋은 것을 다 주셔서 여섯 명의 아내와 후궁에 아들까지 두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왕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나는 군인이니까."
 그 후로 왕은 성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쟁에 나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공격해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왕은 모압의 포로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다음 요압 장군에게 자기 키 만한 줄 하나를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저 놈들을 이 줄로 재어 이보다 큰놈들은 다리를 모두 잘라라."
 "두 다리를 다 자르면 출혈이 심해 죽을 것입니다."
 "그럼 목을 자르던지."
 "키가 큰 것이 죄가 됩니까?"
 그가 다시 묻자 왕은 싸늘하게 웃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니까."
 그러다 전쟁에도 실증이 났는지 왕은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요압 장군을 불렀다.
 "장군, 나도 이 정도면 할만큼은 하지 않았어?"
 "그러문요."
 "암몬 쯤은 장군이 나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병력만 주십시오."
 왕은 요압 장군을 전선에 내보내고 왕궁에 남아 있었다.
 "난 군인이 싫어졌어. 나는 왕이란 말이야."
 왕궁에 혼자 남아 있던 왕은 옥상 위로 올라갔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됐다. 알아보니 전선에 나가 있는 요압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였다. 왕은 여자를 불러 그녀와 동침했다. 유부녀와 간음해 이미 십계명의 하나를 범했는데 그녀가 임신한 것을 감추려고 그 남편을 휴가로 오게 해 집으로 보내려 했다.
 "동료들이 전쟁 중인데 저만 편하게 잘 수는 없습니다."
 충직한 군인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의 병영에서 밤을 보냈다. 왕은 다시 그를 전선으로 귀대시키며 요압 장군에게 쓴 편지를 줘서 보냈다. 우리아를 사지로 보내 죽게 하라는 지시였다. 이렇게 해서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십계명 주에서 다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더 어긴 것이었다.
 "왕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왕에게 나아와 아뢰었다.
 "무슨 일이오?"
 "많은 양을 가진 한 부자가 가난한 자의 오직 한 마리뿐인 새끼 양을 빼앗아서 먹기 위해 잡았다고 합니다. 그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난한 농부의 막내로 자란 왕은 늘 자신이 가난한 자이며 자신을 가난한 자의 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 부자는 죽을 죄를 범한 것이오."
 그러자 나단이 말했다.
 "왕께서 바로 그 부자입니다. 왕께서는 이미 여섯 아내와 많은 후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죽였습니다."
 여덟 형제의 막내로 자라 눈치가 빠른 왕은 상황을 빨리 파악했다. 키와 용모 때문에 화를 내다가 그만 죽을 죄를 범한 것이었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으며 고백했다.
 "내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였소."
 왕은 밤마다 눈물과 통곡으로 침상을 적시며 부르짖었다.
 "주여, 돌아와 내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주를 기억하겠습니까? 내가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마침내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왕의 죄를 사하셨으니 왕께서 죽지는 않겠으나 이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큰 비방거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 장차 당신의 자손들이 서로 싸워서 피를 흘리게 될 것입니다."
 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왕의 안색이 밝아졌다.
 "이보시오, 나단."
 "네, 말씀하십시오."
 "성전을 내 손으로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으나 내가 그 건축에 필요한 물자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떻겠소?"
 "그야… 뭐 괜찮겠지요."
 다윗은 크게 기뻐하며 그 때부터 사람들을 모아 성전 지을 돌을 다듬고 두로에서 백향목을 운반해 왔으며 금 10만 달란트와 은 1백만 달란트와 많은 놋과 철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다음 우리아의 아내가 낳은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후일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바벨론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그로부터 다시 6백년이 지나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난 예수는 땅 위에 돌로 성전을 짓지 않고 사람들 가슴속에 복음으로 교회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