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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기고 감상평

玄武煥 인문대 77학번 동기회장




인문대 77학번 동기들이 지난 5월 26일 토요일 입학 30주년을 기념해 모교 방문행사를 개최하고 동기회(회장 玄武煥 독문77­81)를 결성했다. 李泰鎭학장님도 축사에서 “오늘 참 해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벅찬 감동을 표현했듯이 이번 모교 방문행사와 동기회 결성은 인문대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 방문

우리 모두는 그날 참 행복했다. 졸업한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처음 보는 친구들을 껴안으면서 행복했고, 30년 전 5월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를 맞아주는 자하연의 향취를 다시 느끼면서 행복했고, 8동 대형강의실에서 모교에 재직하고 계신 옛 은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행복했다. 李明賢교수님(철학과)과 李成珪교수님(동양사학과)의 강의를 들으면서 어느덧 50대 초반에 들어선 우리들은 모두 30년 전으로 되돌아가 밤늦게까지 봉천동 옛 일미집 근처의 여러 술집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동기회 결성…
장학금 전달

그날은 또 가슴 뿌듯한 날이었다. 동기들의 정성을 모아 인문대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장학금으로 학업에 전념할 귀여운 어린 후배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우리는 그날 밤 술자리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건배를 하며 인문대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만나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지역별로 지회도 결성했고, 경조사가 있으면 찾아가고, 등산모임, 테니스모임, 골프모임 등도 만들어 서로의 건강도 챙겨주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더 소중해진다고 하는데, 동기회가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 평생 잊고 지내게 될지도 모를 소중한 옛 친구들을 만나 다시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동기회를 멋지게 꾸려 나가야겠다.

                                                     “인문대 동창회 결성이 꿈”

나에게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이번 77동기회 결성을 계기로 다른 학번들의 동기회도 결성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처럼 결성된 기별 동기회를 토대로 인문대 동창회가 결성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77학번 동기회가 결성된 이후 동기들 사이에서 인문대 동창회를 결성해 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목소리가 인문대 동창회 결성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자하연, 서울대인에게 친근한 이름이다. 관악캠퍼스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면서도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이 연못 이름은 조선시대의 이곳 지명에서 유래한다. 관악캠퍼스는 본래 시흥군 자하동(紫霞洞)이었다. 이곳의 지명을 호로 쓴 조선시대 유명인이 있다. 紫霞 申緯(1769~1845)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시․서․예 三絶’이란 평을 들은 문인이다. 시 짓기, 서예, 그림 이 세 가지에서 당대 최고봉이란 평을 들은 사람이다. 저 유명한 秋史 金正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그를 들었다. 
자하 신위는 지금 규장각 건물이 있는 감골에서 살았다. 서울 장흥방(長興坊 : 현 종로구 적선동과 내자동 일대)에 본가가 있었지만 이곳에 향제(시골집)가 있어서 어린 시절 이곳에서 뛰놀고 청년시절에는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자연을 읊다가 아예 자하란 호를 썼다. 그는 정조대왕이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 : 왕으로부터 독서 휴가를 받는 우수 문신)으로 부를 정도로 문명이 높았다. 관악캠퍼스에 이런 인물이 살았다면 기릴만하지 않은가. 
인문대학은 신 자하와 함께 낭만에 젖어보고자 이 연못가에 그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다.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어느 중국 멋쟁이 선비가 그려준 ‘자하소조’(紫霞小照 : 자하를 그린 소품)가 최근 공개돼 입상의 근거를 얻었다. 세월이 수상할 때 관악 골짜기에는 도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평시에는 이규보, 이색, 유성룡 같은 선비들이 산사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던 곳이다. 관악캠퍼스는 이처럼 학문의 향기가 피어오른 지 오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