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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아프가니스탄 한 달 단상


 


"네, 저는 분당 샘물교회에 나와 있습니다.
 피랍 00일째, 가족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며…."
 새벽 6시가 되면 밤을 샌 방송사 기자들이 유령 같은 얼굴로 마이크를 들고 중계를 하기 시작한다. 표정은 비장하게, 목소리는 엄숙하게, 가족들의 슬픔을 내 얼굴과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1분30초 남짓한 방송중계를 마치고 나면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김밥이나 전날 사놓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죽겠네."
 지난 7월 20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진 뒤 며칠 째 벌어진 풍경이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가족들 눈에선 피눈물이 날 듯 하고 외교부 공무원들 얼굴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한 달 째 취재 전쟁을 치르는 기자들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피랍자 가족대표를 맡은 청년은 며칠만에 얼굴이 그야말로 잿빛으로 변했고 줄담배를 피우는 횟수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며칠 지나면서 눈물이 다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 있노라면 세면대에서 남몰래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아내는 피랍자 어머니의 절절한 흐느낌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이틀 걸러 한 번 꼴로 야근을 하다보니 기자들은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피곤에 몽롱한 상태로 참았던 말들을 꺼낸다.
 "아니, 솔직히 선교하러 간 거 맞잖아. 재작년 아프가니스탄 갔다 온 교회 봉사단의 동영상에도 선교라고 명시돼 있던걸. 종교적 이념 때문에 무리해서 간 거라면 국가 차원이 아니라 기독교 차원에서 해결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야."
 하지만 이쯤에서 누군가 "그래도 스물 셋 목숨이 달린 일이야"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피랍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교회', `선교'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가족들의 요청을 언론이 순순히 따라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 피랍사태의 배경에는 아프간에서 선교활동을 먼저 시작한 통일교를 견제하기 위해 개신교 측에서 최근 몇 년간 의료 봉사팀을 활발하게 운영해 탈레반을 자극해 온 사실이 있다는 건 묻혀버리고 말았다. 종교가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이슬람 사람들을 개종시키겠다고 나서다니, 그들의 눈으로 봤을 때 해외봉사단원들은 이슬람의 종교나 종교관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몰이해의 극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논쟁도 수그러들고 답답한 협상상황에 무기력감이 느껴졌다.
 전 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우리정부 대표가 무장단체와 대면협상을 벌이게 된 건 알고 보면 무척이나 치욕스러운 상황이라고, 갈팡질팡 외신보도가 쏟아지는 건 그들이 구경하기에 신난 제3자이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그러다 한 달을 넘기니 이런 상황마저도 일상이 돼 버렸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가족들의 태도와 모습.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피해 다니기만 했던 이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성명서 발표며 입장 발표며 카메라 앞에 제 발로 선다. 며칠에 한 번씩 UCC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들의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충격, 절망, 분노…,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이 시간을 견뎌 온 가족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객관적 관찰자의 위치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피랍자들이 돌아오면 내가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순식간에 남아있던 19명이 돌아와 버리자 맥이 `탁' 풀렸다.
 쓸데없는 감정이입이라 스스로 질타하기도 하지만 아, 내가 사람 사는 이야기 전하려 기자하고 싶었구나,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