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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다크호스? 찻잔 속 태풍?





 文國現 前유한킴벌리 사장이 지난 8월 23일 `동북아 CEO'를 표방하며 대권 출사표를 던졌다. 20명 안팎에 달하는 범여권 대권주자 리스트에 1명이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범여권 안팎에서 文 前사장의 대권 레이스 합류는 단순히 1명이 더해졌다는 산술적 의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부 인사 출신의 `제3의 후보'격인 文 前사장의 가세로 기존 정치권 출신 후보들이 고만고만한 `도토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범여권 대선 구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서다.
 33년간 몸담은 기업을 뒤로하고 '국민의 숲'을 향한 새로운 진군을 시작한 文 前사장의 대권도전은 그야말로 '모험'이다. 65세까지 재직하면 받을 수 있는 수십억원대의 스톡옵션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시절 유한양행 창업자인 柳一韓박사의 전 재산 사회 환원 사실에 감동받아 74년 유한킴벌리에 평사원으로 입사, 고속승진 코스를 거쳐 95년 46세 나이로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며칠 전 이사회에서 사표가 수리되기 전까지 12년간 CEO로서 장수했다. 2003년부터는 킴벌리 클라크의 북아시아 총괄사장도 겸임, 전세계 곳곳을 누볐다.
 IMF 사태 직후인 98년 도입한 4조2교대 등 노사상생, 평생학습, 윤리경영 모델은 대표적 경영혁신 사례로 두고두고 재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는 환경운동 등 NGO 활동에서도 활약상을 보여줬다. 생명의 숲 공동대표, 서울 그린트러스트 재단 이사장, CEO 지속가능경영포럼 회장, 한국 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 이사장, 서울대 환경대학원 초빙교수 등 `본업' 외에도 수십 개의 `명함'을 가졌다.
 연봉의 절반을 매년 시민단체 등에 기부해 왔다는 점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몸을 낮추며 미소를 짓는 `겸양지덕'의 자세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는 鄭雲燦 前서울대 총장과 함께 일찌감치 범여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다. 대권 도전 요청에 수개월간 확답을 피한 채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던 그지만 23일 대선 출정식에서는 평소의 조용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출마선언문을 읽어 내리는 동안 간간이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으며 `취업을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다'고 하소연했다던 한 청년실업자와의 만남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는 등 그야말로 격정을 토해냈다.
 한나라당 李明博후보를 겨냥, 이번 대선을 `건설, 재벌 중심 가짜 경제'와 `성장․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 중소기업 중심 진짜 경제'의 대결구도로 규정하는가 하면 "후보는 정신적으로 이미 패자이며 온 국민에게 기업인의 이미지를 나쁘게 부각시킨 죄가 굉장히 크다." "땅투기, 가족 부자 만들기에 여념 없던 재벌 종사자가 어떻게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며 거침없는 비판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문턱을 절감한 채 중도하차한 鄭雲燦 前총장의 학습효과 때문일까. 文 前사장은 얼마 전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하지 않고 일단 독자세력화를 통한 `마이웨이'를 택했다. 섣불리 기성 정치권에 몸을 실었다 `원오브뎀'으로 전락하느니, 차라리 독자조직 구축으로 생존기반부터 탄탄히 다지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진 文 前사장의 `선택'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정책 개발에 힘을 쏟으며 내공을 쌓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중심 발전 전략, 한반도․동북아 주변 구조 재편 등 21세기형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범여권의 `신상품'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같은 CEO 출신이자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클린 CEO'의 이미지를 내세워 각종 의혹이 제기된 李明博후보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기본 구도도 갖췄다.
 하지만 히트 상품에 랭크될지, 아니면 수많은 다른 제품에 묻혀 조기단종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文國現이 누구야?'하고 되묻는 이가 적지 않고 기존 정치권 출신 후보들에 비해 조직에서 턱없이 힘이 달리는 게 현주소이다.
 출마 선언 행사에서 취재진의 질문 세례에 "뒤늦게 시작했지만 국민만을 바라보고 열정을 다하겠다. 국민들이 알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답한 文 前사장의 얼굴에는 불확실하고 녹록치 않은 미래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희미한 불안감이 교차했다.
 정치권은 文 前사장이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이날 "하루빨리 합류하라."(대통합민주신당), "진짜 경제를 하겠다면 국정실패세력의 간판은 되지 말라."(한나라당)며 아전인수식 공방을 벌였다.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난관의 전조인 듯 느껴졌다면 지나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