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호 2007년 9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李泰鎭 모교 인문대 학장
우리처럼 반세기만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예는 서구 역사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인문학의 이름은 없었다. 모두가 공학, 과학, 경제학, 경영학 등에 매달려 인문학 같은 것은 뒷전이었다. 그러나 OECD에 가입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이 무렵부터 문화란 단어가 신문 지면을 덮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OECD 수준에서는 경제와 과학기술은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 대열에서는 문화적 역량으로 창조,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 지위를 지켜낼 수가 없다. 생존을 좌우하는 이 창조, 창의성은 인문학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인문학은 인류의 지혜와 경험의 집적으로 형성된 학문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방향이나 창의적 대안은 여기서 모색하거나 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한국은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뛰어들어 그 입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입지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튼튼한 입지 획득을 위해 서둘러야 할 과제 중 인문학의 육성은 시급한 것이다. 선진국의 주요 대학들은 어느 경우나 인문학의 튼튼한 기반을 자랑한다.
서울대학교가 세계 대학평가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하려면 인문대학의 육성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인문대학은 이제 사회적․국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문대학의 육성, 그것은 이제 서울대학교 전체가 시급히 달성해야 할 과제가 됐다. 동문 제현의 깊은 관심과 애정 어린 지원을 바라마지 않는다.
지난 8월말, 모교 인문대 6동 3층에 있는 학장실을 찾았다. 소파가 있어야할 것 같은 자리에 놓인 회의탁자, 수북히 쌓인 책과 서류들….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학장실 분위기였다. 컴퓨터 테이블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李泰鎭학장이 일어나 회의탁자로 기자를 안내했다.
다음은 인문대학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앞으로의 계획을 중심으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요즘 사회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대학 캠퍼스 안으로 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장님께서 취임하시고 인문대학도 많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중론인데, 학장님께서 추진하시는 변화의 주된 목표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인문학 교육의 내실화’, ‘인문대학의 국제화’, ‘인문학과 사회의 소통’이 그것입니다.”
-‘대학의 국제화’나 ‘인문학과 사회의 소통’은 요즘 사회에서 대학에 요구하는 것인데요. 인문대학의 국제화라는 목표를 향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고 계시는지요.
“우선 모교 인문대학의 국제화를 위해서, 영어가 부족한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집중코스를 언어교육원에 2개 반을 개설했습니다. 가난한 인문대 예산을 할애해서 무료로 했습니다. 수료식에 가 봤더니 세상에 그렇게 행복한 얼굴이 없어 보이더군요. 적은 돈으로 정말 큰 효과를 봤다는 생각입니다.
또 이번 겨울계절학기에는 고급수준의 제2외국어 수업을 각 언어권 현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기초교육원의 지원을 받았죠. 1백여 명의 학생이 다양한 외국어 능력을 배양하고, 현지 문화 체험을 통해 국제적 감각을 기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작년에 북경대, 동경대에 인문학 정기학술회의를 하자고 했더니 금방 하자는 응답이 왔어요. 2008년 3월 말에 ‘PESETO 인문학 학술회의'를 서울대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한ㆍ중ㆍ일 최고 대학간의 교류를 통해서 우리 인문학의 위상을 점검하게 될 겁니다. 물론, 동북아 학문의 교류와 발전에 기여하는 계기도 되겠죠.”
- 이번에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을 열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고전 공개강좌’도 10개 강좌가 10월초에 열린다고 들었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인문학과 사회의 소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인문대학에서 일반사회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여는 것은 처음이죠.
“그렇습니다. 인문학이 이제 상아탑에서 나와 일반인들과도 호흡을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 왔습니다. ‘사회와 동떨어진 학문’, ‘비생산적 학문’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죠. 그 전에도 인문대학에서 여러 번 공개강좌를 기획했는데, 이번에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호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이젠 인문학도 학생교육을 넘어 사회 전체와의 대화 기회를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앞서 ‘인문학 교육의 내실화’를 말씀하셨는데요. 언급하신 외국어 교육 강화도 인문학 교육의 내실화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즘 인문대 학생들이 고시나 취직시험 준비로 전공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학장이 되기 전에는 학생들이 전공 선택의 시기를 늦추고, 전과도 그렇게 많이 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냥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2008학년도 입학생부터 전공 선택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대신, 학교 당국과 제2전공 의무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복수전공, 부전공, 연합전공, 연계전공, 학생설계전공, 심화전공 중에서 한 가지를 의무적으로 하자는 내용이죠.”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 인문대학도 세계적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인문대학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최상위권으로 나옵니다. 모든 교수님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이제 대학의 경쟁력 향상은 대학 구성원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펀드가 33조라고 하는데, 서울대학교는 그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죠. 인문대학의 재정은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가장 열악한 축입니다. 동문들과 사회,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대담=安興燮편집장>

인문대는 30여 년이 지난 건물의 리모델링 계획을 최근 수립했다. 인문대학의 교육환경은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은 물론 새로운 시대의 인문학이 추구하는 학문적 요구를 수용하기에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계획은 낡은 건물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8동을 재건축하고 나머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는 인문대학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하고 있다. 이 계획에는 학문의 중심인 인문학과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심장부에 위치한 현재 인문대학의 상징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번 계획안은 인문대학, 환경대학원(원장 金基浩)의 환경계획연구소, 그리고 국내 캠퍼스 마스터플랜의 대표적 업체인 삼우건축사사무소와 간삼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수립했다. 인문대는 건물 리모델링에 필요한 총 공사비가 3백50억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