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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자발적 사회의 이상




 지금부터 만 20년 전, 1987년은 한국사회가 획기적인 역사의 분수령을 넘은 해다. 그 변화의 핵이 민주화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커다란 변혁의 흐름이 있었음을 보아야 비로소 1987년의 진정한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그에 수반한 사회적 자유화(societal liberalization)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직접선거와 지방자치의 실현, 그리고 그 여파로 사회 각 부문의 기관단체 대표자의 직접 선출을 두고 민주화라 여기게 됐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민주주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의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이념도 정책도 없는 패거리 중심의 철새정당, 취약한 의회, 특권의식, 독선, 이권 독점, 부정비리의 잔재로 허덕이는 뒷골목 이전투구다. 민주주의는 선거만능이 아니라 민주적 의식과 행위가 따라야 하며 선거문화 자체도 선진화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사회적 자유화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언론자유의 신장은 물론 시민사회의 활성화가 특히 눈에 띄는 변화다. 자유화 이후 겨우 10여 년 뒤인 2천년에 이미 비정부기구(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수가 2만을 넘겼다는 통계가 나왔고 일부 시민운동단체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의 자유화에도 부작용이 따랐다. 1987년 한 해만 노사분규 건수가 3천7백을 넘겼다는데, 평소의 열 배가 넘는 수치다. 최근에는 시민운동단체의 지나친 정치화가 시빗거리가 됐고,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아냥도 있다. 자유에는 반드시 자율도 따라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데서 연유한 문제점들이다.
 시민사회는 본래 권리 및 이익 주창(advocacy) 기능과 책임 및 의무를 중시하는 자발적 봉사(volunteering) 기능, 이 두 기둥이 균형 있게 떠받들고 있어야 건전하다. 지금까지는 민주화의 이름으로 권익추구에 시민운동이 치중했으므로 이제는 시민사회의 균형을 되찾아 자발성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생겼다. 사회의 약자와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베푸는 봉사활동과 국민전체의 복리를 위한 과업에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닌 시민사회의 자발적 부문(voluntary sector)이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자발적 사회(voluntary society)의 이상은 공공선 혹은 공익적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헌신하는 자발적인 봉사정신의 발로에 있다. 정치도 근본적으로는 공익을 위한 자원봉사의 한 유형일 뿐인데 거기서 이권을 챙기고 특권을 누리려다 보니 정치의 퇴영을 초래한 것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정치의 계절을 맞이해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이러한 자발적 사회의 이상 실현에 총매진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특히 서울대 동문은 사회의 엘리트답게 noblesse oblige의 솔선수범에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