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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07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좋은 뉴스, 나쁜 뉴스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신문도 소비자(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공급자(언론인)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지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흐르면서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에 자리잡은 특이한 현상들이 있다.
 '좋은 뉴스는 나쁜 뉴스,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good news is bad news, bad news is good news)도 그 중 하나다.
 편집과정에서 키울 수 있는 기사의 대부분은 당사자 입장에서 공개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파헤치거나 비판하는 '나쁜 뉴스'들이다. 취재 대상의 입장에서는 나쁜 소식이 언론인 입장에서는 좋은 기사거리인 셈이다. 긍정적 정보, 밝은 기사 등 좋은 뉴스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덜 환영받는 것이 언론현실이다. 편집국내 직급이 올라가면서 이에 대한 반성이 강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강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석간신문 종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에 가깝다. 매일 출근과 동시에 1면 톱 기사거리를 찾는다. 폭로, 비판 등 `화끈한 기사'들이 많으면 그 날 하루는 신문을 제대로 만든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작더라도 매일 1건씩 감동적 기사나 생활정보 기사들을 1면에 배치하려 하지만 작심삼일도 어렵다. 휴먼스토리를 1면에 크게 보도할 수 있는 날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지만 1년에도 손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기자 생활을 해오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비판하거나 들춰내는 기사를 훨씬 많이 써 왔다. 이 때문에 가장 가까웠던 취재원들이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고, 또 그들과의 소송에 휘말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까운 친척 한 분이 했던 얘기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너 좋은 대학 나와서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남의 뒤나 캐고 다녀서야 되겠느냐, 차라리 내 회사에 와서 일해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조차 기자와 취재원 관계가 되면 `不可近 不可遠'이 된다. 나쁜 기사를 좋은 기사라고 믿고 추적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결코 편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언론인들을 특권집단, 죽치고 노는 인간들로 공격하고 '대못질' 운운하는 사태까지 왔다. 이러한 정부 일각의 언론공격에 일부 공무원들이 맞장구를 치는 것도 '나쁜 뉴스' 피해망상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뉴미디어를 넘어 개인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언론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타직종으로의 이직도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이런 많은 도전적 상황 속에서도 기자들은 나쁜 뉴스에 대한 추적과 보도를 중단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어두운 곳을 파헤치려는 사람들 덕분에 사회가 조금이라도 빨리 진보하고 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