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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2007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왜 레이스에서 탈락하는 걸까?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고 많은 이들이 묻는다.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묻는 이가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답을 한다. '대선은 1년 동안 나라 전체를 하늘로 휙 던졌다가 내려놓는 것'이라고…. 먹던 밥상을 들어 천장으로 던지면 밥그릇도 국그릇도 김치종지도 숟가락도 젓가락도 제자리에 있을 리 만무하다. 하물며 나라 전체를 들었다 놓는 대선이야 오죽하랴.
 연초의 선두주자는 집중포화를 맞고 패가망신하기 십상이고, 뛰어들기만 하면 게임 끝이라던 다크호스는 "애걔걔" 비웃음만 산 채 퇴장하기 다반사다. 바야흐로 대선은 5천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온갖 욕망이 표출되는 場이고, 그 과정에서 부모자식도 갈라놓는 편가르기가 벌어지기 일쑤다. 온갖 폭로전과 거짓말과 권모술수는 이렇게 꿈틀대는 욕망의 한 자락 그림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대선 과정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대선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대선은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의 홍수 속에서 누가 살아남느냐의 게임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2002년의 경우를 보자. 당시 盧武鉉후보는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없어 보였던 당내 경선, 지지율 추락으로 인해 당 내부의 후보 흔들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후보단일화 등 숱한 우여곡절을 돌파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조건이 훨씬 좋았던 李會昌후보가 '병풍' 하나를 돌파하지 못한 점과 대비된다. 어느 쪽의 난관이 더 어려웠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매순간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이 있느냐 없느냐가 승부를 갈랐다.
 역대 대통령들을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한 번쯤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초대 李承晩대통령은 망명 독립운동가 출신이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 前대통령은 쿠데타라는 死線을 넘었다. 金泳三, 金大中 前대통령도 민주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현직 盧武鉉대통령은 남들이 죽는 길이라는 선거구를 찾아다니다시피 했다. 반면 그런 과정 없이 권좌에 올랐던 張 勉 前총리나 崔圭夏 前대통령은 허망하게 물러나고 말았다.
 올 대선과정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어김없이 목격된다. 범여권의 가장 강력한 잠재후보였던 高 建 前총리나 鄭雲燦 前서울대 총장의 낙마가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권력의지의 부족'이라고 말하는데, `권력의지'는 '죽더라도 권력을 얻겠다는 마음가짐'에 다름 아니다. 두 사람의 경우 꽃가마 태워주기를 기다릴 뿐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은 찾기 어렵다. 겉보기엔 대통령이 될 만한 조건들을 누구보다 잘 갖추고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 출신들이 보장된 길만 쫓고, 위험이 수반된 길을 가는 데는 머뭇거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그렇지 않다면 서울대 출신들이 다른 분야에선 정상급 성공을 거두면서 유독 정치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정치는 예측가능하고 보장된 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헤겔의 '認定鬪爭'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데,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인정받기를 바라고, 어떤 사람들은 인정받기보다는 목숨을 구하기를 바란다. 목숨을 아낀 後者는 굴복해 奴隸가 되고, 목숨을 건 前者는 主人이 된다. 시대에 따라 양태는 다르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주인들 가운데서도 頂點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올 대선에서도 많은 서울대 출신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온갖 우여곡절에 맞닥뜨릴 테고 매순간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뜻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부추기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죽어도 좋다고 덤비는 열에 아홉은 진짜로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될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이 선택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