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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2007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10년 전 이태원 살인사건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과학수사대 CSI'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이 하나 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가슴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내겐 아주 특별한 사건의 기억이다.
 신문사에 갓 입사해 수습기자로 서울시내 경찰서를 전전하던 1997년 4월 4일 새벽 3시쯤이었다. 용산경찰서에 들렀다가 살인사건 증거물을 수습하고 있는 형사들과 마주쳤다. 전날 밤 10시쯤 이태원의 유명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만 22세의 남자 대학생이 흉기에 난자당해 숨졌다고 했다. 피묻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이 발견됐고 그 속에서 여러 장의 증명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에는 선한 인상의 잘 생긴 청년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적사항을 메모한 뒤 사진 한 장을 얻어 취재수첩 속에 넣어놓았다.
 기초 취재를 끝낸 뒤 새벽 4시쯤 현장을 확인하러 햄버거가게를 찾아갔지만 어이없는 광경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노란색 테이프를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감식반원들이 현장을 샅샅이 조사하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현장을 지키는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밤을 샌 직원들만 매장에 남아 사건현장인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따져 물었지만 "경찰들도 다 철수했고 현장을 보존하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행히 범죄발생 이틀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군범죄수사대(CID)가 제보전화와 탐문수사를 바탕으로 사건당일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이야기한 사람을 봤다는 증인을 찾아낸 것이다. 미군 속의 가족인 만 18세의 P가 범인으로 지목됐고 사건당시 마약에 취해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P는 미국 LA의 '노르데14'라는 갱단의 일원이었고 이 갱단의 범행수법은 이번 사건과 동일했다. 며칠 뒤 P와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갑의 재미교포 L도 검거됐다.
 그 무렵 검찰팀으로 옮기면서 이 사건은 기억 속에서 지워진 듯 했다. 그런데 이듬해 1월쯤 '딱한 사정인데 도와달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 때 내 지갑 속에는 숨진 대학생의 증명사진이 들어있었다. 몇 번인가 버릴까 했지만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왔다.
 그때 비로소 검찰이 CID의 수사결과를 뒤집고 L이 범인이라고 결론지은 사실을 알았다. P가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고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L만 양성반응이 나온데다 L의 초기진술은 일관성이 없었다. 흉기로 찌른 각도를 볼 때 범인의 키가 1백80cm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의학자의 소견도 L에게 불리했다.
 L의 아버지는 생업을 접다시피하고 아들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맹목적 애정만은 아니었다. CID의 수사자료, 현장 사진과 증거물들에 대한 국내외 법의학자들의 소견 등 그동안 모은 다양한 증거를 바탕으로 아들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CID와 수사검사 등에 대한 취재를 거쳐 한국 검찰과 CID가 상반되는 수사결과를 내놓았으며 검찰의 수사내용에 의문점이 있다는 기사를 2심 판결 직전에 출고했다. 현장보존이 안돼 법의학자의 소견이 사진만을 근거로 이뤄진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2심 선고공판에서도 L이 범인라는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미성년자임을 감안해 형량만 징역20년으로 줄었다. P는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장기 1년6월, 단기 1년의 징역형만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같은해 10월 L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검찰이 재상고했지만 1999년 9월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P는 그 전 해 8월 특사로 사면돼 풀려났지만 숨진 학생의 부모가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 직후 살인혐의로 고소해 출국금지가 내려진 상태였다. 검찰은 대법원의 최종확정판결까지 재수사를 미뤘고 담당검사가 실수로 출국금지 연장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이 P는 미국으로 도주해버렸다.
 숨진 학생의 부모는 검사가 직무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지만 아들을 숨지게 한 범인이 법에 따라 처벌받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엉뚱한 사람이 처벌받는 일은 겨우 피했지만 다 잡은 범인을 어이없는 실수로 놓쳤다는 점에서 지금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진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