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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2007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李 元 熙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1947년 출범한 교총은 초중고교 교사와 대학 교수 등 18만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宗家 교원단체로 전체 회원의 95%가 평교사이지만 32대, 스물 한 명의 회장이 거쳐 간 60년 동안 평교사 출신 회장은 한 명도 없었다.
 대학 총장이나 대학 교수가 하는 것으로 당연시 돼왔던 교총 회장에 드디어 평교사 출신이 首長으로 뽑혔다. 李元熙(국어교육71-80)잠실고교 국어교사가 그 주인공. 제33대 교총 회장 취임식 하루 전인 지난 7월 19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교총 회장실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인터뷰 대상(interviewee)과 대담자(interviewer)가 同期인 관계로 편의상 '너나들이'로 진행했다.


 ― 평기자 시절엔 가끔씩 전화도 하고 그랬는데, 이후로 통 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다시 보게 되는군. 아무튼 18만 교총 회원 대표로, 그것도 60년 교총 역사상 최초의 평교사 출신 수장으로 뽑힌 데 대해 동문의 한 사람으로 축하하네.

 "우중에 오느라 수고했네. 막상 되고 보니 양어깨가 더욱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군. 내일 취임하는데 요즘엔 사실 잠도 잘 안 와."

 ― 이번엔 투표율도 87.4%로 상당히 높았고, 3명의 후보 중 절반 가까운 46.7%, 6만9천3백47표의 지지로 당선이 됐는데 그 요인이 어디 있다고 보는지.

 "시대가 바뀌긴 바뀐 것 같아. 개발연대 시절에 교육자는 존경을 받았지. 하지만 이른바 민주화시대 이후 특히 지난 10년 동안 정권은 '교육 후퇴', '교육 정체', '교육 퇴보'를 외쳐왔거든. 일견 맞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정권과 이 정권이 교육 개혁을 내세우면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판갈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전통을 토대로 변화해야 할 교육계가 너무 휘둘려 왔고. 그래서 힘 있는 교원단체를 바라게 됐고. 그런 면에서 현장과 교육정책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던, 또 실제로 교총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을 선택해준 것 같아."

 ― 교총 회관 들어오면서 보니까, `가고 싶은 학교, 보고 싶은 선생님'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정문에 붙어 있더군. 참 멋있는 구호인데, 오히려 공교육 붕괴를 한탄하는 현실하곤 거리가 상당히 먼 구호이기도 하고.

 "맞아, 우리 교사입장에선 듣기 싫지만 공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 다만 원인은 두부 자르듯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 사회사적 변화로 본다면 우리가 공부할 때는 소수 엘리트가 공부하던 시절이라 가르치는 분도 존경받았고, 또 배출된 교사들이 교육현장에 갈 때도 의미가 있었는데, 70년대 이후 대중교육시대가 되면서 평준화 정책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대량교육을 최소의 효율성으로 하느냐에만 집중했는데, 이젠 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잖아. 그런데 평준화 제도를 포함해서 획일주의가 승하면서 '서울대 죽이기'까지 얘기가 나왔고. 이처럼 제도적인 탄력성이 취약하자 요구가 다양한 교육소비자들은 아예 자꾸만 외국으로 가려고 하고."

 ― 그게 동전의 양면이지. 평준화나 기회균등 원칙,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하향평준화로 인한 인재배출, 그게 결국 국가발전의 장애가 되는 거. 지금 서울대에서 항상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뽑고 싶은 애를 잘 뽑을 수 없다는 거지.

 "학벌은 타파돼야 하지만 명문대라든가 유수한 대학은 반드시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성의 대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학교 현장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어. 천재와 범재가 한 교실에 있으니 선생님은 중간 수준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한쪽은 몰라서 졸고 다른 한쪽은 너무 쉬워서 조는. 좀더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선 학교에서는 그냥 쉬고. 차라리 밖에 나가서 학원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이 낫고."

 ― 결국 교육시스템 내지는 교육정책의 문제 아냐.

 "예컨대, 서울대가 수학 영재나 과학 영재를 마음껏 뽑아 기를 수 있도록 거기에 맞는 평가시스템을 부여해야 되는데, 뭐도 안되고 뭐도 안되고 하니 솔직히 변별력이 없어지는 셈이지. 내신 1등급이 4%면, 서울에서 만도 2만4천명인데, 골라낼 시스템이 없으니까 저런 얘기가 나오는 거지. 내가 교총 회장 당선 직후 내신적용 비율의 단계적 상향을 주창한 것도 그 때문이야. 서울대가 지역균형할당제를 운용해 사회적 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듯이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다양한 틀도 만들어줘야 공평한 거지.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 줘야 하고."

 ― 부적격 교사, 무능 교사 퇴출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교원 사기 문제 정말 심각한 데….

 "범죄, 비리, 성희롱에 연루된 부적격 교사나 무능력한 교사의 퇴출 그거 반대하는 선생님 아무도 없어. 그런데 교사들이 무능하다, 그러니 정년 단축하고 연금 축소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막 나가면 정말 안되지. 선생님들 잘못해서 그렇다고 말하기가 제일 쉬우니까, 대국민 선전용으로야 좋지만. 물론 선생님들 급변하는 세상에 사이클 맞추기 쉽지 않아. 선생님의 전문성 제고, 이 부분은 노력해야 해. 누가 뭐래도 선생님은 아이들 잘 가르치고 앞서가야 하니까."

 ― 그러기 위해선 재충전 재교육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하잖아.

 "선생님들 재교육 안 받는다고 몰아치는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순 거짓말이야. 현 시스템이라면 40만 교육자가 연수 한번 받으려면 5년 이상 걸리거든. 3백억원이면 종합연수원 만들 수 있는데 들은 척도 안하고 선생님 평가만 얘기하고 있다고. 선생님들도 최소한 10년에 1년은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고 봐. 해외연수에 대한 폭도 당연히 넓혀야 하고."

 ― 재충전도 재충전이지만, 도대체 요즘 같아서야 어디 선생 해먹겠어? 체벌한다고 학부모한테 무릎 꿇리질 않나, 심지어 학생으로부터 구타당하는 선생도 있으니, 원.

 "선생이란 게 승진해서 존경받는 거 아니잖아. 존경은 못 받아도 최소한 존중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개발연대 30년 동안은 선생님이 교육을 주도했고, 또 존경도 받았어. 그런데 민주화 과정 20년 동안 교사가 비판 대상으로 전락했지. 이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아울러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고 선생님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선생이 존경은커녕, 존중받지도 못해."

 ― 공약으로 내놓은 것 중에 나름대로 획기적인 처방이 있는 것 같던데.

 "가장 다급한 부분은 바로 교권과 학습권 보호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지. 그래서 이번 교총 회장 선거 공약으로 '파워 출동 3HTF'라는 것을 내세웠어. 교권이나 학습권에 관련된 사태가 발생했을 때, 3시간 이내에 교원단체가 현장에 출동해서 사안이 객관적으로 수습되도록 지켜보겠다는 거지. 하지만 이게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어. 중요한 건 선생님이 신뢰받는 분위기의 성숙이야. 민주화, 민주화 하지만 민주화가 이기주의로 왜곡되다보니 학부모가 선생님 멱살을 잡고 무릎까지 꿇리는 사태까지 온 거야. 각자 자기 성찰이 필요해. 그것을 제대로 된 규칙이나 문화로 만들어 내야 되는데…. 먼저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거듭 나도록 반성해야 될 거고, 학부모와 학생도 교육공동체에서 지켜야 될 룰을 지켜야 하고."

 ―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도 상당히 필요할 것 같아. 최근에 학교 청소를 누가 할거냐를 놓고 의견 대립이 첨예한 데 이것도 참 코미디 같더군.

 "그거 참 좋은 지적이오. 어느 단체에선 '이거 인권 문제다, 왜 아이들보고 청소하라고 하냐?' 그러는데, 어떤 교장선생님은 `화장실 청소도 교육인데 이걸 왜 못하게 하느냐?' 하고. 이것이 인권 문제냐 교육 문제냐는 상당히 난해한 담론이지. 법이나 규정에도 없고. 그럼 하나하나 얘기해 보자고. 선진국 시대라고 내 방 청소 안 할 거냐? 내가 어질러 놓은 쓰레기 안 가져갈 거냐? 청소를 한다면 어디까지 할거냐? 청소에 인권이 중시돼야 하나, 교육이 중시돼야 하나?"

 ― 공교육 붕괴의 문제, 가난의 대물림이 사교육 만연 등으로 악순환이 되고 있는 현실도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말이야.

 "툭하면 특목고고 뭐고 잘하는 애들 세습화하는 거라고 그러는데. 역시 잘못은 단선적 평준화야. 예전에는 본고사 하나 준비해서 공부만 잘해도 서울대 나오고 속된 말로 출세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시스템 아래서는 개천에서 용 날 수가 없어. 국민들이 오랫동안 속으면서 고통 받아온 대목이지. 예를 하나 들어볼까? 盧武鉉 정권이 소외된 계층을 위한답시고 방과 후 교육이라는 것을 했어요. 협조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우리도 어정쩡한 입장이었어. 그런데 가난한 애들을 불러다가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교실은 빌려주고 선생님들은 바쁘니까 수업을 못하고 학원 선생들이 와서 해. 아이들은 밥도 주고 하니까 오기는 하는데, 인풋에 비해 과연 아웃풋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



 ― 사교육을 누그러뜨리고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체적 방안이라도.

 "어제도 고3 선생님들과 대화를 했는데, 예컨대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학교에 수학, 과학이 우수한 지역 학생들을 영재반으로 모아 달라 이거예요. 방과 후에. 그리고 사설 학원의 10분의 1 정도 실비만 받고 가르치는 거지. 현직교사들이 가서 하면 정말 수업 잘해요. 서울사대 동문들 참 많은데, 과학 선생님, 수학 선생님들이 수업하면 애들이 정말 신나서 들을 거야. 방과 후 영재교육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앞으로 개천에서 용 나기도 가능할 거고."

 ― 사회는 발전하는데 학교 자체가 이른바 쌍팔연도식 시스템인 것도 문제 아닌가.

 "사회가 학교 욕만 할 게 아니라 보듬어 주는 배려가 필요해. 특정 신문을 말해서 좀 그렇지만, 최근 조선일보의 '스쿨 업그레이드' 운동 같은 아이디어 얼마나 좋아. 비판하고 고발만 하는 게 아니라 학교의 현실이 어떤지, 정말 자기애들이 화장실 가기도 힘들어하고 학교가 가장 가난한 집단이 되어가고 있는데, 결국 그걸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아닌가?"

 ― 2007년 대선 후보별로 교육정책을 검증을 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정치집단이 세력을 잡느냐에 따라 교육은 확확 달라져. 지난 10년 교사 정년 단축부터 무자격 교장 공모제, 연금제까지 완전히 판갈이 하겠다고 흔들어댔잖아. 그동안 내놓은 수 백가지 정책을 보면 정말 골이 아파. 근본적으로 경제와 교육이 대통령의 최대 과제라고 얘기를 하는데, 막상 盧泰愚후보 때부터 盧武鉉후보까지 토론회를 해보니 모두 교육대통령 되겠다 해놓고 실제론 뻥이야. GDP 대비 6%하겠다고 해놓고 한 사람도 안 지켰고, 심지어 자칭 교육전문가라고 하면서도 얘기해 보면 교육 현장의 용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지. 왜? 교육을 대충대충 아니까. 또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5년 단임제요. 그것도 꼭 12월에 대선을 치르는데, 후보들이 학부모 표를 의식해서 교육제도를 마구 흔들고 입시제도를 바꾸는 원인이 됐어. 어느 대통령은 '내 임기와 함께 교육부 장관은 간다' 그래놓고 너무 바꿔서 교육부 장관만 10명인가를 배출했어. 난센스지."

 ― 어떤 식으로 검증하지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교육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나, 옆에서 써준 교육 공약을 달달 외우다가 나중에 교육판을 흔드는 짓 하지 않을까를 면밀히 살펴보려고 해. 40만 교육자들에게 '이 사람의 공약은 이것'이라고 검증해 주기 위해 후보들을 초청해서 청문회식 검증을 거치는 거지. 그리곤 교육적 대통령의 자질이나 능력을 판별하고 선호도 투표를 통해 적격 후보를 고르는 거야. 물론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 교원단체 중엔 종가 격인 교총 외에 전교조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그쪽과의 관계 설정이랄까, 특히 李동문의 민주화 투쟁 경력과 관련해서 얘기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렇지 않아도 혹시 李元熙가 전교조 성향으로 가는 거 아니냐, 교총 안팎에서 우려하는데. 사실 그쪽에 친구도 많지만 전교조 출발 때 나는 분명히 교육전문가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해 선을 달리 해왔지. 또 尹형 알다시피 내 민주화 투쟁 경력이란 게 그 시절 내가 사범대 대의원 의장이었기 때문에 한 거지, 무슨 이념이나 정치적 야심에 경도돼서 한 건 아니거든. 분명한 것은 최근에 전교조 산파역조차 전교조와 선을 그으려는 입장이라는 거. 이번 선거에서도 예전 전교조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 분들 하나같이 이제 정말 새로운 교육운동이 일어날 때라고 걱정하시더군. 교총도 너무 관변이나 어용 같은 색깔에서 벗어나고 바뀌어야 되지만, 전교조의 일부 강경 지도부(현 지도부는 아니지만)가 이념에 입각해서 고식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교육계에 불안감을 준 점도 猛省할 필요가 있다고 봐. 그렇다고 전교조와 척지겠다는 건 아냐. 공조할 건 공조해야지."

 ― 대한민국 교육이 잘 되려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 얘기 지금 많이 나와. 일면 맞는 얘기지. 특히 간섭과 규제를 능사로 아는 일부 교육부 관료는 타파돼야 해. 관료주의가 교육을 흔들면 교육은 망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 공약 중 눈에 띄는 거 하나. 연극으로 치면 조연이나 엑스트라급 정도로 스쳐지나갈 유아교육, 초등교육, 보건교육, 특수교육에 대해서도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던데.

 "유아, 초․중등 이걸 합해서 보통교육이라고 말하는데, 고등교육, 즉 대학은 경쟁력을 갖도록 자율성을 주면 돼요. 하지만 보통교육은 국가 지원을 강화해야 해. 그런데 지금 대학은 간섭하고 유아, 초․중등 지원은 소홀히 하니까 삐뚤어지고 있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아교육을 정상적인 공교육 범주로 안아야 해. 초등학교 교육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잘 되고 있는데 30시간 가까운 살인적 수업시간이 문제야. 애들이 아침에 와서 갈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하거든. 화장실 가는 것 포함해서 말이야. 전문교과를 전담 교과화해야 해."

 ― 교총 회장 자리 정말 막중하고 막강하지만, 한편으로 그간 교총 수장들의 행태가 그리 본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교총 회장이라는 자리, 국회의원이나 관직으로 가는 정류장이나 징검다리 같은 존재 아니었나? 李회장은 어떻게 할 건데.

 "과거 총리, 부총리,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이 교총의 힘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분들이 우리나라 교육이나 교원들을 위해선 기여한 바가 거의 없어 배신감만 안겨준 것 또한 사실이거든. 더욱이 교육이 이렇게 고통 받을 때 정말 동병상련해 해주었느냐 생각하면 실망이 크지. 내 소명은 현장을 지키는 거야. 선거기간 동안 李元熙는 정치 성향이 있어 나중에 그 쪽으로 갈 거라는 마타도어가 나오기도 했는데, 나는 아무튼 3년간 현장만 보고 일한 뒤 현장으로 돌아갈 거야. 그것만은 확실해."

 ― 누구든 말할 수 있는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건강이니 잘 챙기소. 하지만 한숨 돌린 후에 소주 한 잔은 해야겠지.

 "오늘 먼 걸음 해주신 李五峰선배님 하고 尹형, 업무 정리되는 대로 한번 뭉칩시다. 내가 동문으로서 기여한 바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제부터라도 동창회에도 적극 관심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 총동창회에 꼭 전해주소." 〈사진 = 李五峰논설위원〉

 李元熙와 민주화 투쟁

 李동문이 교총 회장에 당선된 직후, 그의 민주화 투쟁 경력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교총의 의식화(?) 내지는 좌경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李회장은 사대 재학시절인 1973년 학생대표(대의원 의장) 자격으로 몇 번의 데모를 주동한 바 있다. 그러다가 민청학련으로 분류돼 수감생활을 했다. 그로 인해 동기보다 5년 늦은 1980년에야 졸업해 늦깎이로 평소 꿈꿔 온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그는 민주화 투사나 민주화 유공자로 불리는 것을 꽤나 부담스러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스스로 밝혔듯이 유신시대로 불리는 1970년대 초반 누구보다 성실하고 소심한 국어교육학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반정부 투쟁 논의를 위해 과대표로 구성된 대의원 회의의 구심점을 위해 대의원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어교육과 대표였던 그가 의장에 선출되면서 곡절은 시작된다. 엄혹한 유신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학생세력은 훌륭한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하고 있던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투쟁 수위를 조정하고 타 단과대학과 연대투쟁 방안을 논의하면서 시위를 주도하던 그는, 어느 새 투사가 되어 있었다. 결국 당국에 체포돼 李 哲(사회69-88)코레일 사장, 李海瓚(사회72-85)열린우리당 의원 등과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는다. 李 哲은 사형, 李元熙는 징역 15년, 李海瓚은 징역 12년이었다.
 얼마 후 풀려난 그는 아이들과 뛰놀려던 소망을 유보한 채 대학 제적생 신분으로 세상에 던져진다. 다행히 선배들이 경영하는 수출업체에 취업해 몇 년을 지낸다. 무역사 자격증도 땄고, 영어 회화도 열심히 배웠다. 순박한 국어교사 지망생이 독재정권이 가열차게 추진하던 수출현장의 역군으로 변신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교사는 접을 수 없는 꿈이었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복교해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평생의 꿈인 국어교사가 된다. 공립 중학교와 공립 고교 현장에서 일선교사로 봉직하던 그는 80년대 이후 EBS방송에 국어 및 언어영역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9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교육분야의 자문과 교총 활동을 통해 교권 향상과 교원 권익 옹호에 앞장서 왔고 드디어 제33대 교총 회장으로 입신했다.
'함께하는 교총'을 기치로 △회원 25만명 확보 △공무원사학연금 개악 저지 △'한국교총공제회' 설립을, '자랑스런 교총'을 기치로 △영향력 신뢰도 10위권의 명품 교총 △학생, 학부모와 함께 뛰는 사랑 교총 △교원 선호도 1위의 종가 교총을, '파워있는 교총'을 기치로 △07년 대선 후보 공개지지 △교원, 교총의 정치 활동 보장 △파워 출동 '3HTF' 구성을 내세운 `李元熙 號'가 앞으로 3년간 어떤 항해를 할 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