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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2007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신정아 그리고 유진 오켈리



 광주비엔날레 미술감독으로 선임될 뻔했던 신정아 씨의 가짜 학위 사건 그리고 뒤이어 터진 인기 영어강사 이지영 씨의 가짜 학위 실토로 학교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이 사건을 두고 `학위'가 인격과 품성, 실력을 대변하는 학벌지상주의 사회에 제대로 한방 먹였다는 촌평도 나온다.
 신정아 씨 사건을 보면서 '유진 오켈리'를 떠올렸다.
 유진 오켈리는 53세의 나이에 미국 4대 회계법인의 하나인 KPMG그룹의 회장 겸 CEO로 등극, 사회적 성공의 표본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비즈니스의 화신이었고 효율성의 신봉자였으며 스스로 '높은 산꼭대기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독수리 같다'고 느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회장에 취임한 지 3년이 채 안된 2005년 5월, 말기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유능한 회계사이자 타고난 CEO였던 유진 오켈리는 자신에게 남겨진 1백일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차근차근 적은 다음 초인 같은 능력으로 모든 일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먼저 1천명 이상의 지인들에게 편지, 이메일, 전화 혹은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있는 식사자리를 통해 '작별의식'을 치렀다. 장례식 계획을 직접 세웠으며 말기 암 선고를 받은 그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1백일을 책(인생이 내게 준 선물)으로 남겼다.
 그는 현대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동기도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그들의 인생에 정확하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하는 법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18개월 앞까지의 스케줄이 달력에 표시돼 있고 몇 분 후의 일까지 내다보며 살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 60초 후의 일은 60년 뒤의 일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며 '매 순간을 살아라. 단순한 생활을 즐겨라. `현재'라는 완벽한 순간을 음미할 뿐 아니라 스스로 그런 순간을 만들어내라'고 조언했다.
 올 초 외국유학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한 동문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일주일 정도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정말 하루, 한 시간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쁘게 살면서 우리는 삶과 일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고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체계마저 마비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올 여름 휴가 때는 유진 오켈리처럼 삶이 1백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보고 깊은 사유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