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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2007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늑장대응' 경찰의 태도





 법과 정의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말은 진부하다. 그래서 내가 꺼내어 놓으려는 사연도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진부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바로 그 사람들이 바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일 때 시민들은 절망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 3월 14일 새벽 1시쯤. 한 40대 남성과 20대 초반의 여성 둘이 서울 동작경찰서로 달려 들어왔다. 이들은 동작경찰서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사라진 20살 1학년 여대생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남성은 사라진 여성의 아버지였고, 20대 여성들은 각각 사라진 여대생의 언니와 친구였다.
 경찰서를 찾은 가족과 친구는 "함께 있던 친구가 사라진 뒤 곧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낯선 남자가 전화를 받아 지금 데려다 주는 길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며 "성폭행 위기에 처해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은 안내도 없이 스스로 담당부서를 찾아 헤매야 했고 막상 담당부서를 찾았을 때도 10여 분만에야 당직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당직경찰은 사무실에서 불을 꺼놓은 채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잠이 덜 깬 표정, 사무실 바깥으로 완전히 나오지도 않은 채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마침 취재차 동작서에 나가있던 필자는 그 모습을 목격하고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기사를 썼다. 왜냐면 경찰이 신고자들을 이리저리 떠넘기며 늑장대응을 하는 사이에 여대생은 4명의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CBS의 보도가 나간 뒤 수사에 나선 경찰은 피의자들을 붙잡았고 나름의 조사를 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결국 기각되고 말았다. 소명(혐의사실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런데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난 뒤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사무실에서 잠을 자던 경찰이 들고 일어섰다.
 "거봐라…, 성폭행이 아니라지 않느냐"며.
 사건을 수사해서 영장을 신청한 경찰이 영장이 기각되자 쌍수를 들고 반기는 형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열심히 수사를 해 영장을 신청한 경찰이라면 영장기각에 아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준강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사건 당시 술에 취해 있었던 피해자가 심신상실의 상태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경찰이 빨리 출동해 현장을 포착만 했더라도 영장이 기각됐을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영장기각을 자신들의 늑장대응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하고 있다. "그 날 일어난 사건이 현행법상 성폭행이 아니니까 늑장대응이 성폭행을 불러왔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그러므로 경찰의 대응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늑장대응 경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는 방식은 지능범들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담당검사는 "솔직히 피의자들이 정말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 실정법상 처벌을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담당검사 말이 바로 법과 정의의 괴리를 말하고 있는데, 경찰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데 무슨 상관이냐'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능범들의 행동을 '합법과 불법 사이의 줄타기'라고 표현한다. 지능범들은 사회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지만 현행법상 처벌이 안 되는 짓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늑장대응 경찰의 논리가 지능범들의 논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술 취한 여성을 데려다가 네 명이 '합법적으로' 성폭행 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고 늑장대응도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은 셈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술 더 떠 애꿎은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몰아간 피해자가 잘못이라는 둥 원래 그런 애가 아니냐는 둥 하는 말을 해 2차 성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이것도 물론 현행법으로 처벌은 안되겠지만)
 피해자는 지금도 병원의 치료를 받고 있고, 너무 억울한 피해자 가족들은 없는 형편에도 수백만원을 들여 변호사를 구해 피의자들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성폭력 관련법에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든 것은 '늑장대응' 경찰의 태도였을 것이다. 피의자들의 처벌이 어렵더라도 피해 여성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는 그런 경찰의 모습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 '지능' 경찰들이 법과 현실의 괴리를 이용하고 있는 사이 20살 대학교 신입생과 그 가족들은 절망적인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처럼 너무 진부해 가슴 아픈 이야기가 계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