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호 2007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부딪쳐서 깨져라
| 지난 2004년 봄 3년 예정의 임기로 도쿄특파원에 부임했다. 부임한 뒤 1주일 정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독자취재를 시작했다. 이후 열흘 정도는 전임자의 도움을 받아 본사에서 내려오는 취재지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전임자는 4월말 떠나갔다. 많은 특파원들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 왔다. 5월 중순 당시 본격 회복기에 들어선 일본 경제의 상징 도요타자동차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노사관계 중심으로 취재하라는 본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막막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에서는 명함을 교환했거나, 믿을만한 사람의 소개가 없으면 기업이나 사람을 취재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요타자동차에는 명함을 교환한 사람도 없었고, 마땅히 소개받을 곳도 없는 상태였다. 시일도 촉박했다. .2주일 이내로 도요타자동차의 사용자측과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고 , |
| 공장을 둘러본 뒤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원시적인 방법을 택해 도요타자동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전화번호를 파악, 부딪쳐보기로 한 것이다. 조금 긴장한 상태로 이름도 모른 채 홍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짧은 일본어였지만 귀국한 지금까지도 이메일을 교환하고, 전화통화도 하고 있는 본사 홍보부의 H계장(현재 부장급)은 예상을 깨고 친절하게 응해줬다. 부임 후 첫 본격 취재이니 도와달라고 하자 H는 4일 뒤 도요타자동차 도쿄본사로 오면 도와줄 수 있는지 확답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서 도쿄시내 한복판의 도요타자동차 도쿄본사 홍보실로 가 H와 다른 사원 및 간부들과 인사를 했다. 고 싶은 내용을 설명했다. 뒤이어 도쿄 본사에서 자료를 받고 도요타자동차의 근거지가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가 그곳 본사와 공장을 견학하고, 노조 간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정 등을 협의했다. 그런데 도요타시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나고야역까지 가서, 시간관계상 택시를 이용해 가야한다고 했다. 50분 걸리는 택시비가 당시 환율로 15만원이란다. 신경쓰였지만 어쩌랴. 6월초 도요타시 본사 및 승용차 공장을 견학하고, 노조 홍보국장을 인터뷰하기로 정했다. 며칠 뒤 H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도 기자가 취재를 가는 날 나고야에 갈 일이 있으니 오전 일찍 신칸센 나고야역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약속시간에 가니 운전자가 달린 업무용 고급승용차가 대기 중이었다. 우연을 가장, 해외언론을 놀라게 하는 도요타의 치밀함일까. H와 함께 도요타자동차 본사에가 도요타의 총본사를 견학하고, 근처의 승용차 생산라인도 `혼자' 여성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견학했다. 점심식사도 하고 노조 홍보국장 인터뷰와 노조간부들 인사 및 취재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돌아올 때는 도요타시 전체 취재를 안내했던 H가 총본사에 일이 있다고 해 혼자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업무용차는 제공됐다. 상당히 긴장한 채 시작한 특파원 초년병으로서 첫 독자 취재가 이처럼 싱겁게(?) 끝난 것이다. 취재된 기사는 직후에 1개면 특집으로 보도할 수 있었다. 이후 고마워서 H에게 감사의 식사도 대접하고 1~2개월에 한번쯤은 연락하거나 만나는 인연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명함 교환'이 중요한 일본서도 정면돌파 시, 경우에 따라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분명 명함과 인적보증이 중요하다. 취재요청서를 갖춰 마쓰시타전기산업, 도쿄대의 저명 교수 등을 보증인이나 시간여유 없이 취재하려다 실패한 경험도 부지기수였다.세계적인 기업의 CEO는 아예 인터뷰 신청 단계서 거절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부임초기 H의 환대는 3년간 특파원생활 내내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당시 왜 그렇게 환대했을까. 귀국 송별식 때 H에게 물었다. 도요타자동차는 독자취재하기가 쉽지 않다고 자동차 담당 후배에게 들었는데, 왜 그 때 불쑥 취재요청을 했는데도 응했느냐고. 그 때 H의 답은 "일본 속담에 `부딪쳐서 깨져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특히 도요타자동차는 도전정신을 매우 중시한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양식도 안 갖춘 무모한 취재 요청을 `부딪쳐서 깨지는' 도전정신으로 보고 큰 망설임 없이 취재에 응해줬다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