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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2007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시모노세키 사람들



일본에서 한국과 관련한 역사적 흔적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 바로 시모노세키(下關)다. 한반도로 통하는 바닷길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통신사가 시모노세키를 통해 왕래했으며 구한말부터는 정식으로 관부연락선이 개설됨으로써 일본의 조선 침략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일본과 청나라가 맞붙은 청일전쟁이 끝난 뒤 강화조약이 체결된 곳도, 우리의 남녀 젊은이들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곳도 또한 이곳 항구였다.
그러나 최근 며칠간 둘러본 시모노세키 일대에서는 지난날 양국간에 얽히고 설켰던 미묘한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바다 건너 큐슈(九州)가 해저터널과 다리로 연결되면서 후쿠오카(福岡)에 교통?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내줌으로써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이 퇴색한 탓일까. 다만, 항만을 드나들며 부산과 오가는 페리호만이 희미한 옛 자취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만난 사람들도 한국과의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필자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세계바둑교류협회와 현지 바둑계의 교류를 위한 친선방문이었기에 만난 사람들이 제한됐던관심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며칠 전 야스쿠니 신사에 화분을 보낸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듯했다. 껄끄러워서 일부러 피하는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심이없는 모습이었다.그곳에 머무는 동안 줄곧 안내를 맡았던다나카(田中正則)씨도 마찬가지였다.
독문학 교수 출신으로 지금은 은퇴해 노년을 즐기고 있는 그는 바둑 얘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야구, 온천, 음식 얘기를 화제에 올렸다. 때마침 일본 참의원에서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의 표결을 앞둔 시점이었으나 아무런 언급도 없이 지나갔다. 흔히 일본인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해변을 안내하면서 `동해'나 `일본해'라는 대신에 `한국 방향'이라는 재치있는 표현으로 난처한 상황을 비켜가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시모노세키에서조차 과거사 문제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그들의 얘기만은 아니다. 현지 관광길에 마주친 우리 젊은이들도 대부분 복잡한 문제는 염두에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우리 가슴속의 쓰라린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시모노세키 여정은 짧았지만, 상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