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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2007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정의가 왕따 되는 세상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현역 정치인의 비리문제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汎여권의 한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쌀 도정공장에서 대북 지원용 쌀을 빼돌려 수 억원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 쌀 수 만t을 도정하면서 책임생산량 초과분을 몰래 시중에 내다 팔았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번 사건은 문제의 도정공장에서 수 년간 근무했던 한 간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가 이 회사의 불법을 고발한 것이다.
고발 내용의 진위 여부야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터이지만,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문제의 정치인보다 바로 이 고발인에게 눈길이 갔다.
상세한 증빙서류를 갖춰 회사의 부당이득을 고발했던 이 `내부 고발자'가 돌연 `고발 취하 각서'라는 생소한 이름의 문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다.
이 간부가 스스로의 고발 행위를 부인하는 문서를 작성한 경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취재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간부가 겪었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중압감과 핍박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된다.
이 간부는 형식적으로는 소속 회사와 해당 의원의 부인을 고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 양곡 가공업계 전체의 탈법적인 관행을 고발한 것과 다름없다. 필자가 이 전직 간부를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 `공익 제보자'라고 판단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한 재단의 저술 지원을 받고 최근 수 개월간 이 땅의 `내부 고발자'들을 집중 취재해오고 있다. 공익 제보자로도 불리는 이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어 조직의 불법을 고발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부는 호각 소리는 우리 모두가 딛고 있는 공동체의 이익 수호라는 관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들 의로운 약자들은 세상을 향해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바로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공동체의 이익 수호를 위해, 또는 내면의 진지한 목소리에 대한 응답으로 호각 소리를 낸 이들의 품위나 인격은 불법의 출발점이자 삶의 터전인 일터에서 여지없이 유린당하게 된다.
필자가 만나 본 공익 제보자 대부분은 자신의 조직에서 좌천이나 징계 등을 당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여러 핍박 중 가장 감내하기 힘든 것은 동료들로부터 집단적으로 따돌림당한 경우라고 털어놓고 있다. 징계나 좌천 등 제도의 힘을 가한 보복보다 이에 편승한 동료들의 `왕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이정호(36)씨는 강원도 한 군청의 공무원이다. 그는 해당 군수가 욕심을 내고 있던 자리에 건축허가를 신청한 주민의 민원을 인허가 행정의 원칙을 무시해가면서까지 거절토록 지시한 군청 간부 공무원들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했다. 군청과 동료 공무원들의 보복은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미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죠. 가족들은 못 살겠다고 이사 준비까지 해 놓았어요.?? 이씨는 내부 고발을 하면 조직 내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옳은 일을 해 놓고도 당하는 꼴을 보이고 물러서면 누가 내부 고발을 하려 들겠느냐는 게 이 젊은 하위직 공무원의 변이다.
물론 내부 고발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 우선 조직 내부에서 해결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직 내부에 독자적인 통제 체제가 갖추어져 있고 이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을 때는 안에서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안의 통제 장치를 가동하지 않고 바로 바깥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게 되면 정의로운 내부 고발이 아니라 비열한 `밀고'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공익 수호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보복에 방치하는 것은 이들의 인격과 양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염치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들 `의로운 약자'들을 보호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으리라. 국가와 시민이 이들을 외면한다면 이들은 낙담하고 절망하게 된다. 이들의 낙담과 절망은 마침내 공익의 호루라기 소리를 그치게 한다.
앞의 쌀 도정공장으로 돌아가보자. 전국에 산재해 있는 쌀 도정업계의 탈법적 관행과 정부의 방만한 관리시스템을 두고 볼 수는 없다. 남해안 동부지방의 한 시민이 분 호각 소리에 검찰은 불법 관행 척결이라는 `공익 수사'로 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