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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2007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항생제 없는 가축 사육


"어머니, 손에 들고 있는 노란 가루는 뭡니까?"
"응, 이거 병아리 물 줄 때 타 먹일 항생제여."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어린 시절 여름철에 타 먹던 노란 주스가루 같은 항생제가 들어있다.
담양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올해부터는 닭도 키워보고 싶다고 했더니 당신이 키우던 닭 몇 마리를 주시면서 사료도 반 포대를 건네주셨다. 사료 포장지를 언뜻 보니 `000마이신, △△△마이신' 등 항생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항생제가 섞였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머님이 주신 것을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다.
닭을 주말농장으로 옮겨 놓고서 우선은 어머니가 주신 배합사료를 먹이면서 항생제가 없는 사료를 찾다가 마침내 현미 싸라기를 한 가마니 구했다.
아직 병아리 티도 못 벗은 닭한테 현미 싸라기와 대나무 잎을 먹였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는 `동네 사람한테 얘기했더니 항문이 막혀 닭이 다 죽을 거라고 말하더라'며 크게 걱정을 하신다. 하지만 농장의 병아리한테 현미 싸라기보다 거친 볍씨와 왕겨까지 먹였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서 지금은 제법 닭이 되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분들이 만류하는데도 내가 굳이 거친 자가사료로 닭을 키우겠다고 한 것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가 섞인 배합사료로 키운 닭의 배설물은 유기농업 밭농사에 퇴비로 부적합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자연농업과 유기농업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꼭 실천해보고 싶었던 것이 밭농사와 축산을 연계한 유축 복합농이며 유축 순환농업이었다. 소나 돼지 기르기는 당장 실천하기 어렵지만 닭은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에서 닭의 사료 첨가제로 사용되는 Roxarsone이라는 물질로 인해 유기 砒素계 물질이 더욱 독성이 강한 무기 砒素(inorganic arsenic)로 변형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고 한다. Roxarsone(3-nitro-4hydroxybenzene arsenic acid)은 미국에서 가축의 성장을 촉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되는 사료 첨가제인데, 이 물질이 포함된 닭의 배설물이 농경지에 비료로 사용되면서 농경지나 지하수가 발암성 비소에 오염될 가능성이 크고 닭 농장 근처의 먼지에서도 비소가 높게 검출돼 독성 물질이 호흡기로 흡수될 우려마저 있다는 것이다. (Applied and Environment Microbiology 3월호, Feedstuffs 2007년 3월 12일자/ 웹사이트 `자연을 닮은 사람들' 에 인용 게재)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상설 할인점이나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면 무항생제 계란이 많이 나와 있다. 산란기간에 항생제를 먹이지 않았다거나 애초부터 항생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광고문안이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가축과 사람한테 항생제가 남용되면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니 항생제 없는 가축 사육은 건강한 먹을거리 확보와 항생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올해 초 미국 조지아대학교의 연구진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농장에서 사육되는 닭들, 심지어 실험실 수준에서 사육되는 닭들도 일반적인 항생제에 높은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은 농가나 항생제를 사용한 농가가 큰 차이 없이 특정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73%에서 97%나 되었다고 한다. 가금류에 대한 항생제 사용금지만으로는 인간에게 해를 줄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의 비율을 감소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놀라운 연구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닭 몇 마리 키우면서 항생제 없이 현미 싸라기와 야채 등 자가사료로 닭을 키우겠다는 것도 괜한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순박한 노력은 자기 위안은 될지언정 항생제 내성 문제 같은 현실적인 재앙을 되돌리기에는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항생제 내성 문제의 책임을 농장의 항생제 사용 탓으로만 돌린다든가 하는, 한 두 가지 원인에만 혐의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축의 성장 촉진과 질병 치료를 위해 투입하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 화학합성물질의 사용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계속 권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약으로 인한 오염과 비료 과잉 사용으로 인한 질산염 오염 등 환경과 생태계의 질병이 어떤 원인에서 시작되었든지 간에 서로 죽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생명의 고리를 잇기 위해 무언가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