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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2007년 5월] 기고 감상평

고추장 듬뿍 넣어 비벼 먹자


아들아, 그리고 딸아이야! 축하하는 마음 보낸다. 낡은 세대의 부모입장에서 빼어난 인물로 되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못내 꺼림칙하지만, 핵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아무도 이런 생각을 나누려 하지 않으니 염치없이 이 글을 띄운다. 식탁 위의 고추장에 섞어 먹어 보려무나!
`땅속의 씨앗은 자기 힘으로 무거운 흙을 들치고 솟아 나온다'는 그 힘을 자기는 갖지 못하면서도 자식들은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욕심 아니겠나? 또 그래야 자꾸 진화하는 게지….
누군가 한때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보라고 했다. 정말이지 시야가 확 트인다. 시쳇말로 `TRIZ'방식으로 의식을 바꾸라는 말이고, 움츠리지 말고 펼치라는 말씀이다. 지정학적으로나 시대조류로 보아 한반도 민족은 엄청나게 큰 덩어리의 중국과 약삭빠르고 치밀한 일본과의 틈새에서 지금의 제도적인 개혁이 아니라 근성의 전환이 없으면 참으로 피곤하고 고개 수그리는 삶만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 조기유학이 전염병처럼 번지는게 아닌가 싶다만, 돌아오지 않는 유학이라도 모국이라는 깊은 뜻은 알아야 하리라.
반도 반만년 역사 중 우리가 알고 있는 2천년. 그 전반 천년의 역사에는 기상이 넘치는 광개토대왕이 말 타고 버티고 있었지만, (그 역사마저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백두산과 함께 잃어질까말까 하는데, 속수무책이 상책인양 그냥 그냥은 아니겠지…. 설마?)
그 역사책의 뒷장부터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뭔가에 짓눌렸을 때 살기 위해 꿈틀거린 역사뿐이다. 움츠린 역사다.
천년의 긴 세월 속에서 정말 구한말의 `엽전' 같은 자포자기적인 `사대주의' `노예근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민족성.
과연 어디서 물려받은 유전인자일까?
미국이 강대국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풍부한 인적?물질적 자원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그 옛날 영국과 유럽에서의 삶의 역경으로부터 튕겨 나간 이주민들로 형성된 `도전정신'이 아닌가 싶다.
밝으니 꿈틀거렸고 그게 누적되니 분노하고 Boston항쟁이 되고, 그때 그 뱃전에서의 총성이 독립전쟁의 불길로 솟아, 종래에는 자연과 더불어 조용히 살고 있었던 인디언족마저 싹쓸이 하면서 `New Frontier'를 외친다. 그리고 또 돌아서서는 야누스얼굴로 `인권'을 부르짖기도 한다. 짧은 세월 속에서 강력하게 약동한 미국의 역사이고 미국정신(?)이다.
대체로 동양의 정서는 정적이고 서양은 동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서구의 동적 유전자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의 농경문화와는 달리 그 옛적 유럽은 빈약한 지하수자원으로는 농업이 되지 못했다. 척박한 토양에서 떠돌이 문화(遊牧生活)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삶의 터전이 열악하니 자연과 부딪혀 살아 남아야 했고 움직이는 식량(가축)을 몰고 목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니다보니 텃세의 경계를 넘게 되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와 적게는 싸움으로, 아니면 집단적 패거리 싸움 다시 말해 전쟁으로 살아남아야 했으리라.
맹수 같은 적극성에서 도전적인 행동이 따라야 먹이를 찾을 수 있고 또 종족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 꿈틀거림이 아니라 폴짝 풀쩍 뛸 수밖에 없었겠지.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중동의 사막을 텃밭으로 살았던 유목민의 호전성(한 손에 코오란 한 손에 칼)이 그렇고…. Viking족이 바다가 좋아서 Viking이 되었을까?
이에 반해 풍족한 물맛을 아는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기온을 갖춘 우리네는 절기에 따라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니, `도전'이니 `의식전환'이 `왜' `무엇을 위하여' 있어야 하는지 조차 몰랐으리라. 점잖아 져야만 하므로….
일년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번 자르고, 또 24절기로 토막내어 농사를 지어야 하니, 나무의 나이테가 형성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해 언제나 곡식이 익는 동남아 지역보다 바쁘기는 바쁠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해서 서구의 도전정신이 아니라 `근면정신'이 어느 민족보다 뚜렷한 유전인자로 우리에게 형성되었겠지.
`근면', 참 좋은 것이지, 꾸준하기도 하고. 그런데 초식성 민족이라서 그런지 도전과 같은 `역동성'이 없고 `잔인성'이 없어, 그래서 싸울 줄도 `잘' 모르고 탐낼 줄도 몰랐어.
반도 후 오백년 역사는 이 같은 유전자가 우리로 하여금 움츠리고 도사린 역사를 만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창칼 들고 덤비는 이웃에게 호미 들고 부딪혀 보니 힘은 부족하고, 그러니 ??아이구야??하며 무릎꿇고 ??형님??할 수밖에 없었겠지.
`대국'이니 `형제국'이라 하며 `의리(실은 아부이지만)'를 내세워 민심을 잠재우고 조공을 바쳐온 소수 지배층은 자기 등(背) 따습고 배불릴 재주 있으니 `사대근성' `노예근성' 같은 유전인자를 개량(힘을 키울)할 생각은 아예 접어뒀다고 해야겠지. 이게 우리 반도의 지정학적 역사라 할까. 헌데 이같은 서글픈 역사마저 요즈음 배우려 하지도 가르치려 하지도 않고 제도만 개혁하려하니 어찌 하오리꼬.
오늘의 생명공학에서의 Genom지도를 호미로 파헤쳐 보아도 이 같은 유전인자는 치료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一休唯心造'라 해서 마음에서 오는 형질이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그리고 딸아이야!
지니고 있는 근면의 유전자와 수입되고 있는 도전정신, 그리고 항상 웃을 수 있는 여유(유모어)에 빠알간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벼 먹어 보려무나! 한민족의 대표음식? 그게 우리 고추장 비빔밥 아닐까? -낡은 세대의 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