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호 2007년 3월] 문화 꽁트
용신이 생각나는 날
용신이 생각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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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1950년 6월 28일 오후 무렵의 일이랍니다. 그러니까 6?25때의 일입니다. 서울 을지로 6가쯤으로 생각되는 어느 골목집에서 북한군에 쫓기는 우리 병사 한 사람을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어떤 아가씨가 살려 주셨습니다. 그 아가씨 덕분에 목숨을 건진 그때의 국군아저씨가 수십 년이 지난 오늘 그때의 그 아가씨를 찾습니다. 죽기 전에 한 마디,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
을지로 6가…. 아가씨…. 북한군…. 우리 병사 - 숙자할머니는 너무나 놀라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내가 아닌가 저건. 나를 찾고 있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의 말이 더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지만 저 것은 분명히 숙자할머니를 찾고 있다는 말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텔레비전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를 찾는 프로가 있는데 요즘은 찾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져서 가족이 아니더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를 찾곤 했다. 그러나 그런 프로에서 숙자할머니, 자기를 찾는 사람이 나오다니! 그런데 6월 28일, 국군병사라는 두 마디만 들어도 숙자할머니는 그날의 그 일이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지만 이름은 현재의 숙자할머니에서 할머니를 떼고 그냥 숙자에다 나이는 열 아홉. 그때 숙자가 을지로 집을 떠나지 않은 것은 약혼자인 용신이 때문이었다.
처절한 전쟁, 그 처절한 전쟁을 만난 사람들이 피해 보지만 숙자는 부모가 있는 시골로 갈 수가 없었다. 용신이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군은 초장에 박살이 났고 용신이는 국군 소위였다.
숙자가 믿었던 대로 용신이가 나타났다. 27일, 6월의 늦은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용신이는 숙자가 기다리는 집의 현관으로 들어섰는데 그의 군복은 흙탕물에서 막 나온 것처럼 싯누렇고 그 싯누런 군복 속에서 두 눈만이 이글거렸다. 잠을 자지 못해서 시뻘겋게 튀어나온 그 두 눈을 보는 순간 숙자는 모든 말을 잃었다. 용신이는 현관에 들어섰지만 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돌아서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만 기다려요. 일주일이면 다시 온다!"
용신이는 갔다. 그 말을 남기고.
敗走하는 국군, 뿔뿔이 흩어져 한강 너머로, 한강 너머로. 피난민과 국군이 엉켜서 뛰고 포소리는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28일, 아군 속인가 적군 속인가. 밖을 내다본다는 것은 죽는 일만 같았다. 숙자는 낡은 철제 침대에다 집안의 모든 이불을 덮어 씌워놓고 그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총알이 날아오면 이불이 조금은 방패가 될까 싶어서. 표옹, 따다다 딱! 대포가 아닌 소총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현관 밖에서 갑자기 후다닥, 하는 발소리가 났다. 현관 밖은 바로 자름자름한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이었다. 발소리는 한 순간 잦아들었는가 싶더니 탕탕탕탕, 판자를 두들기는 소리로 변했다. 그것은 숙자네 부엌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숙자는 숨이 멎었다.
탕탕탕탕, 소리는 더 크게 그리고 다급했다. 누구지! 숙자가 나서지 않으면 소리의 주인공이 박차고 들어오겠지. 그 다급한 소리로 미뤄 보아서. 숙자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부엌문을 가서 열었다.
군복의 사나이가 밀고 들어섰다. 총도 들었다. 숙자는 하얗게 질리는데 어느 쪽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헷가닥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때에 국군보고 인민군 동무, 인민군보고 국군아저씨 했다가는 목숨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이었다.
숙자가 달싹달싹 입을 열었다.
"…. 수, 수고하세요…."
어느 쪽에도 통하는 한 마디였다.
"사, 사복 좀 주세요!"
군인이 말했다. 그도 더듬거렸다.
국군이다! 아, 쫓기는 국군이다! 반가운데, 뒤쫓는 사람은? 숙자는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가서 벽장문을 열었다. 남자 옷이 없었다. 용신이가 오면 간혹 갈아입는 바지가 딱 하나. 러닝샤쓰가 두어 개. 그리고 양말, 남자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숙자는 바지 하나, 러닝 하나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오는데,
"숙자야, 숙자야…."
숨죽인 소리가 들렸다. 옆집의 옥희엄마였다.
숙자네 부엌문을 나서면 바로 옥희네 광이 되고 두 집 사이는 담도 울타리도 없이 터져 있었다. 숙자가 부엌문으로 얼굴을 내밀자 옥희엄마가 광속에서 손짓을 했다. 숙자가 다가가자,
"국군이지"?
옥희엄마는 다 보고 있은 모양이었다.
"네, 사복을 달라고…."
"사복이 있어""?바지만…."
"내가 주마."
옥희엄마가 재빨리 윗도리에 고무신 그리고 수건 하나까지 들고 와서,
"이 수건을 이마에 매게 해, 알았니? 군인이 철모를 벗으면 이마 위는 하얗고 밑은 새까맣다. 우리 민수가 그랬다. 그 얼굴로 나서면 군인이 당장 들통이 나지. 수건을 동여매면 농사꾼처럼 보이니까."
"알았어요."
국군아저씨가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고무신에 이마는 수건으로 가리고. 국군도 숙자도 허둥거렸다.
"숙자야 숙자야."
옥희엄마가 다시 불렀다. 옥희엄마 손에 밀짚모자가 들려 있었다.
"이걸 푹 눌러 쓰래라."
국군은 밀짚모자까지 쓰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일주일이면 다시 옵니다, 꼭 옵니다."
27일에 용신이가 남기고 간 말, 그 말하고 같은 말이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꼭 다시 와서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세 번쯤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나서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군복이며 군화, 총이 널브러져 있었다.
벽장 속에도 총이 있는데, 실탄도 있는데 용신이가 두고 갔다가 다시 가져갔다가 하던 물건들이었다. 숙자는 국군이 남기고 간 물건들도 그 벽장 속에다 옮겼다. 어디 감출 데가 없었다. 그것들이 이제 자기 목을 조를 것이었다. 무기니까.
아니나 다를까 세상이 바뀌고 나서 며칠이 안돼서 밖이 시끄러워졌다. 트럭이 마이크를 달고, 군?경 그러니까 남한의 군인이나 경찰을 숨기고 있는 사람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무기를 隱匿하고 있는 사람도 자진 신고하라. 아무 때까지 신고하면 봐주지만 그때를 넘기면 엄중 처벌한다. 엄중 처벌 엄중 처벌, 마이크는 종일 엄중 처벌을 떠들고 다녔다.
죽이겠다는 것인가. 자진 신고기간이 끝나면 집집을 뒤지고 다닐 것이다.
이번에도 옥희엄마가 살려줬다. 그 물건들을 숙자네 광에다 묻으라는 것이었다.
"우리 민수 보낼께 둘이서 오늘밤에 묻어라."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된다.
"뒷집이 빨갱이다, 빨갱이가 됐더라. 들키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옥희엄마가 시키는 대로 그날 밤 숙자는 옥희오빠 민수하고 둘이서 광 바닥을 팠다. 숙자는 맨손으로, 민수는 꼬챙이로. 누가 누구를 살렸다면 그것은 바로 옥희엄마가 한 일이었다.
일주일이면 돌아오겠다던 용신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청주방면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람들이 서울을 다 비울 때도 숙자는 을지로 집에 남아서 용신이를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서 숙자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식도 낳아서 시집?장가를 보냈다. 얼마 전에는 영감까지 떠나보냈다. 영감까지 떠나보낼 나이가 되었으니 이 기회에 옥희엄마를 찾아보고 싶어도 버얼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숙자를 큰딸처럼 정말 큰딸처럼 챙겨줬던 옥희엄마, 국군아저씨가 만나야 할 사람은 그 옥희엄마인데….
"…. 그래, 나도 생각이 나는 김에…."
숙자할머니가 중얼거린다. 용신이를 찾아볼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옛날, 가슴이 무너지던 그 옛날 숙자할머니는 용신이에게 꼭 한번 다녀왔다. 동작동 국군묘지 `이용신 대위'라는 묘비 앞에서 숙자는 울고 울고 또 울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신 찾아가지 않았다.
"오늘 찾아가면 용신이가 나 너무 늙었다고 할 게야…."
다시 중얼거리는 숙자할머니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