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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2007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통계 속에 숨겨진 진실


동문기자 취재수첩

통계 속에 숨겨진 진실

姜 讚 秀(미생물82-87)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물 관리 종합대책 시행으로 한강 등 4대강 수질이 개선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2월 대통령에게 수도권 2천만 주민의 상수원인 팔당호 수질 역시 개선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수치로 1998년 1.5ppm에서 2004년 1.2ppm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강원도청에서는 고랭지 밭의 토양이 침식되고 오염시설이 난립하면서 한강에 오염물질이 갈수록 더 많이 흘러들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하천 오염은 갈수록 심해지는 게 당연한데도 물이 맑아지고 있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쪽이 맞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환경부가 그동안 발표한 수질 자료들을 한데 모아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연도별로 수질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직접 계산하고 비교했다. 환경부가 늘 발표하는 BOD 수치 외에도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나 질소.인,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나타내는 엽록소a 자료까지 비교했다. 1년 단위로 비교할 경우 그때그때 강수량.일조량 변화 때문에 정확한 추세를 보기가 어려워 3년 단위의 평균치를 구해 비교했다.
 그 결과 BOD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항목은 10여 년 전에 비해 더 나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COD는 93~95년 평균 2.3ppm에서 98~2000년 3ppm으로, 2003~2005년에는 3.4ppm으로 높아졌다. 엽록소a도 93~95년 물 ㎥당 13.1㎎에서 2003~2005년 19.2㎎으로 늘어났다.
 며칠 걸려 얻은 것이었지만 필자 자신도 설마 했던 결과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팔당호가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의미고, 환경부가 국민들을 속였던 셈이 된다.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들고 당장 환경부를 찾았다. 부임한지 얼마 안된 환경부 국장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필자는 "1주일간의 시간을 줄 테니 충분히 검토한 뒤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 사이 자문을 구한 수질 전문가들도 "환경부가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데 신경을 썼지만, 농경지나 도로 등에 흩어져 있다가 호수로 들어오는 오염물질이나 축산폐수 등에 대한 대책은 소홀히 해온 탓"이라고 지적했다.
 1주일 가량 지난 뒤 환경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제시한 결과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담당 국장은 "BOD 줄이기에만 치중해온 수질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고, 질소와 인 같은 부영양화 지표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자신 있게 `BOD만 잡으려다 수질 개선은 놓쳤다'라는 제목으로 팔당호 수질이 악화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난해 4월 보도할 수 있었다. 팔당호 1급수를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는 환경부로서는 뼈아픈 기사였음에 분명했지만, 아무런 반론이나 해명자료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환경부는 올 1월 초 또 다시 `팔당호 1급수' 약속을 내놓았다. 2015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약속인데 이번에는 과연 지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환경부 담당 과장은 오히려 "이번이 세 번째입니까"하고 되물었다.
 사실 1991년 환경부(당시에는 환경청)는 팔당호 수질을 5년 내 1급수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고시까지 발표했으나, 1996년 BOD가 1.4ppm으로 나타났다. 약속을 못 지킨 것이다. 1997년 환경부는 다시 팔당호 수질을 2005년까지 1급수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환경부가 1990년대 초부터 4조원이 넘는 돈을 들이고, 개발행위에 대한 온갖 규제를 다 동원하고서도 팔당호 수질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됐다면 2015년에는 1급수를 달성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 부분을 기사로 꼬집은 것은 물론이다.
 사실 환경기자에겐 산과 바다 같은 현장을 돌아다니는 게 재미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 속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내는 게 기자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정부 자료를 이리저리 뒤집고 분석하는 일은 강과 바다로 뛰어드는 것보다 생생하지도 않을뿐더러 한없이 지루한 작업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느 보고서 한 귀퉁이에 적혀있는 다이옥신 농도 0.45ng(나노그램, 10억분의 1g)이란 수치를 단서로 해서 국내 철강업체 굴뚝에서 내뿜는 발암물질의 양이 서울 목동 소각장의 수천 배라는 것도 폭로할 수도 있었다. 또 측정지점별 오염도와 지역별 인구로부터 우리 국민의 85%가 유럽연합(EU) 환경기준을 초과하는 미세 먼지 오염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도 계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