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호 2007년 3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외교통상부 宋 旻 淳 장관
한반도 비핵화.남북관계 진전.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역점
동문을 찾아서
외교통상부 宋 旻 淳 장관
한반도 비핵화.남북관계 진전.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역점
대 담 : 본보 李東官논설위원(동아일보 논설위원)
지난 2월 25일 일요일 오후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 도착했을 때도 宋旻淳(독어독문68-75)장관은 회의 중이었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휴일도 없는 듯 했다. 그런 와중에 특별히 동창회보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고 서면으로 미리 보낸 질문지에는 자필로 깨알같이 답변을 써넣어 돌려주는 자상함까지 보여주었다.
동문들이 보는 신문인 데다 쉬는 날인만큼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본보 李五峰논설위원의 조언에도 불구, `인터뷰를 노타이로 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풀었던 넥타이를 다시 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 최근 유럽순방 중 한 동포간담회에서 盧武鉉대통령이 宋장관을 6자회담 타결에 공이 크다고 칭찬했는데,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한마디로 겸연쩍었죠(웃음). 청와대 안보실장.외교 장관으로서 대통령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천토록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는 게 참모로써 당연히 해야할 일 아니겠어요."
- 차관보에서 장관으로 올라가셨을 때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서 발탁됐다는 시각도 있었는데요.
"대통령과는 개인적 연이 전혀 없습니다.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참모를 거치면서 드러난 저의 외교 안보문제에 대한 시각과 철학 등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것과 맞아떨어진 부분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코드라면 코드겠지요.
현 상황에서 盧武鉉대통령이 갖고 있는 외교.안보분야의 비전이나 철학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미동맹만 해도 미래의 한미 양국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조정돼야 합니다. 이는 우리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기에 대한 합의도 우리만 원해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전 세계적인 안보 구조, 즉 군사적 배치를 조정하는 큰 틀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동전의 양면"
외교관 채용 경로
다양하게 열어 둬
우리 스스로 군대를 통제하면서 미국과 동맹체제를 운영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입니다. 스스로 군대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때로는 미국에 짐이 됩니다. 친구관계도 그렇습니다. 내가 손을 놔도 이 친구가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어야지, 한 사람이 평생 손을 잡아 주어야만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것은 파트너가 아니라 짐인 것입니다. 미국도 그걸 잘 압니다. 무엇보다 세계 8위의 군사력을 갖고 2백60억 달러의 군사비를 사용하면서 자기 군대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평화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90년대 말 제네바에서 있었던 한반도 4자 평화협상에 차석대표로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 군비통제도 하고 자기 군대를 자기가 운영할 수 있어야 평화체제 구축도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 군대도 통제를 못하는 상대와 (북한이) 군비통제 협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지분이 있어야 평화체제 협상도 가능한 것이죠. 작전통제권도 그런 선상에서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문제를 다른 나라들이 해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제 자신 이런 문제의식이 외교관 초년병 때부터 강한 편이었죠."
- 그런 `자주의식' 때문에 코드 얘기가 나온 듯 싶습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이른바 평화체제 이행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쪽으로 가야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들이 가능할지요.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을 보면 한 면과 다른 면을 구분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비핵화가 안 된 상황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없고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진전이 안 된 상태에서 비핵화도 진전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북한이 핵을 개발하려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안보적 이유, 핵 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려는 경제적 이유, 세 번째가 국가의 자존심입니다. 맨 마지막 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경제적 문제는 우리가 중유 등 경제 지원을 통해서, 안보적 문제는 그들이 핵 없이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도록 노력하면 폐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을 포괄할 수 있는 장치가 평화체제입니다. 체제보장을 하지 않으면서 핵만 폐기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접근입니다."
- 일반인들의 시각에선 우리 정부가 반미까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멀어졌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외교관은 국가이익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받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외교관이 어떤 나라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자격이 없는 거죠. 외교는 善과 惡을 넘는 것입니다."
-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실 외교과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이 세 가지에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또 FTA의 균형 있는 타결과 재외국민의 보호 편익, 인정미가 넘치는 영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외교 조직개편과 인력강화에 힘쓸 계획입니다."
- 지난 2월 6자 회담의 성과를 두고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의 핵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인 데요.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 채택이후 최초의 구체적인 이행합의입니다. 향후 공동성명 이행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죠. 이번 회담 합의문의 특징은 북한의 조치와 상응조치를 연계, `성과가 있는 만큼만 지원'하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즉 북한의 조치가 있지 않으면 지원도 없기 때문에 북한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합의가 6개국 간의 약속인 만큼 이를 어기는데 대한 북한의 부담도 그만큼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합의문에는 60일 내에 영변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 사찰관을 복귀시키기로 돼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북한의 모든 핵 계획을 완전 신고하고 현존하는 모든 핵시설 불능화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이러한 북측의 조치에 상응해 중유 95만톤 상당의 대북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고요.
물론 앞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초기 조치를 과연 이행할지 회의적으로 보면서 소극적 태도를 갖기보다는 우리가 의장을 맡은 경제.에너지 실무그룹 등을 통한 적극적인 역할과 기여를 통해 금번 합의가 신속.원활히 이행돼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건설적인 자세라고 봅니다."
- 6자 회담 이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부차원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작업은 없습니다.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문은 열어 놓고 있지만 정상회담은 고도의 정치적인 사안이어서 회담 개최를 위한 환경이 조성돼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 한미 FTA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사안들이 있는데,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자동차.농업분야 등에서 민감한 문제들은 추가 협상을 요합니다만, 양측의 협상 타결 의지가 확고하고 양측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다양한 절충안이 모색되고 있기 때문에 양측이 서로 융통성을 보인다면 3월말까지 타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 미국 비자 면제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언제쯤 비자없이 미국에 갈 수 있을까요.
"아직 우리나라의 비자거부율이 3%미만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만 최근 미국이 비자거부율(3%미만) 조건을 완화하고 보안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 법률개정을 추진 중에 있고 우리 역시 VWP의 가입요건으로 보강될 전자여권 발급을 위한 제반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지 않아 무비자로 미국 여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국민들 스스로 비자 신청서를 세심하게 기재하고 정확한 서류를 첨부하면 비자 거부율도 지금의 약 3.5% 선에서 상당히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2008년에는 VWP에 가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인정미 넘치는 영사서비스 제공하겠다"
- 해외동포, 해외여행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외교관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영사 민원서비스 등 폭증하는 외교업무 수요에도 불구하고 외교 인력과 예산 등 외교 인프라는 10여 년 전 수준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보다 효과적인 영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해당 지역 정보에 대한 해박한 현지인력을 활용하는 등 현지 인력 채용을 계속 확대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우리 공관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나 우리 여행객 방문이 많은 세계 50개 지역에 `영사협력원'을 두어 재외 국민과 여행객 보호망을 확충하고 있습니다."
- 장관이란 직책이 주는 보람과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권한과 책임을 갖고 본인이 우선순위를 부여해온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의 비정상적인 안보구조를 정상적으로 만들어 후세에게, 국제사회에서 보다 당당하고 바람직한 국가를 물려주는데 실질적 기여를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애로점이라면 개인의 자유가 거의 없고 늘 시간에 쫓긴다는 점이겠죠."
-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조직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 구현을 위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전 중의 하나가 외교 역량강화인데, 말만하고 있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도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등산을 하더라도 만들어진 길로 가기가 싫어요. 옆으로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해외 나가서도 바닷물만 있으면 뛰어 들지요."
- 중.고교시절 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독일 문학에 관심이 많으셔서 독문을 전공하게 되신 건가요.
"고교시절 독일어와 독일 문학에 매력을 느꼈지만 장래 직업에 대한 의지보다는 뭔가 새로운 영역을 찾는데 더 많은 의욕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바닷가에서 자라나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향성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카프카의 `城'
연극공연 추억
"해외 나가면 윈드서핑,
자전거 즐겨 타"
- 고향이 어디시죠.
"경남 진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양. 학창시절은 마산에서 보냈습니다."
- 외무고시를 보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춘천에서 탄약병으로 군복무할 때 `왜 한창 창의력과 의욕을 갖고 자기 개발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3년씩이나 병영에서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외교를 통해 우리의 안보환경을 개선해서 다음 세대들에게는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복학 후 외무고시를 준비해서 졸업과 함께 외교관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 독문학을 전공해서 외교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당시 문리대에서 독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정치학, 법학 등 다양한 과목의 강의나 서적을 읽었던 것이 외교관 생활에 탄탄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독문학의 실존적이면서도 계몽적인 요소들이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학창시절 영향을 받은 은사님이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姜斗植.池明烈교수님의 넉넉한 인생 가르침이 기억 속에 녹아 있습니다. 졸업 후 자주 뵙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현 동아일보 사장이신 金學俊교수님의 정치철학 강의도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카프카의 `城'을 희곡화해 고향 마산에서 연극 공연을 한 것이 오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당시 감명 깊게 읽은 독문학 책을 한 권 소개해 주시죠.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카프카의 `성'입니다. 카프카의 소설이 난해하잖아요. 많은 해석을 갖고 있는데, 저는 그 소설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성 앞에 서면 인간은 굉장히 왜소해집니다. 과거에 성이라는 것은 지금으로 보면 관청입니다. 성 앞에 서면 일반 국민들은 굉장히 작아지는 거예요. 대민 부서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데, 성 밖에 있는 사람이 성을 볼 때 느끼는 무력감, 왜소감, 위압감 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안에 있는 사람이 잘 알면서 행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독문학과 동기들과는 가끔 모이시나요.
"두 세 달에 한번씩 만나서 학창시절 기분으로 돌아갑니다. 다들 양념치지 않은 국물처럼 맑은 친구들이고 법이 없으면 더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직하고 깨끗합니다."
- 내년이면 환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건강관리와 60대 이후 인생 계획을 들려주세요.
"마음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대 정도의 느낌입니다(웃음). 등산과 수영을 주로 하고 해외 나가면 윈드서핑과 자전거를 많이 탑니다. 60대 이후에는 지위나 보수에 구애받지 않고 그간의 경험을 국가와 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여유 시간이 생기면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요.
"실제로 시간 여유가 거의 없지만 혹 시간이 나면 직업과 직접 연관 없는 역사나 철학 관련 서적을 읽으려고 합니다."
- 가족 중에 동문이 계신가요.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딸이 사회학과 98학번이고, 며느리가 전기공학부 97학번입니다. 아이들이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려해서 밝힐 순 없지만 딸아이는 지금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법학을 함께 공부하고 있으며 며느리는 MIT 석사 후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일하고 있고요. 아들은 미국 코넬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게임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 딸, 며느리… 핵심역량이 서울대 출신이군요.(웃음)
"딸아이가 자유롭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을 3년 반 만에 졸업했는데, 그동안 줄곧 대학신문 기자를 했어요. 현재 매사추세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하버드대에서 철학 박사과정에 있어요. 방학 때마다 미얀마, 방글라데시에 가서 인권 단체의 변호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동창회에 평생회비를 납부하셨더군요. 동창회보는 잘 보고 계시는지요. 조언을 해주신다면.
"서울대 동창회보는 다른 회보와는 좀 다른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워낙 방대해서 국가 사회에 갖는 책임감이 동창의 결속요구를 훨씬 초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특성에 맞는 동창회보로 계속 발전시켜 주기 바랍니다."
- 끝으로 모교와 외교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대는 한국사회의 중심이지만 그 무게와 위상이 갖는 양면성을 늘 유의해야 합니다. 역사에 있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많은 경우 문제 해결의 객체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늘 경계해야할 교훈입니다. 또 대학생의 서가를 보고 그가 무엇을 전공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학창생활 중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지식 섭취를 통해 기반을 닦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외교관은 노력한 만큼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직업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외교부 채용방식을 외무고시 외에도 다양하게 열어 놓을 생각입니다. 각 분야별로 인턴사원을 뽑아 그 중 능력 있는 젊은이를 채용하는 방식을 금년부터 시행하려고 합니다. 뜻있는 후배들이 많이 지원해서 국가 이익에 기여했으면 좋겠군요."
■ 宋旻淳장관 약력
△48년 경남 진양 출생 △67년 경남 마산고졸 △75년 외무부 입부(제9회 외무고시) △89년 안보과장 △91년 북미과장 △92년 주싱가포르 참사관 △96년 북미국심의관 △97년 장관보좌관 △97년 대통령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외교통상비서관 △99년 북미국장 △01년 주폴란드 대사 △03년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 △04년 기획관리실장 △05년 차관보 △06년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사진 = 본보 李五峰논설위원.정리 = 金南柱기자〉